Karu's Story #18
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저는 공동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필연적으로 '학교'라는 공동체가 생깁니다. 또 그 안에 2-8반, 동아리, 창의 진로 프로젝트 등등 수많은 공동체 부분집합이 있을 거고요.
공동체와 개인은 많은 상호작용을 합니다. 한 사람이 특출 나게 잘한다고 그 역량이 모두 발휘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요. 대신, 누군가가 특별히 못 따라오는 부분은 다른 구성원들이 함께 받쳐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단점들을 메워주는 겁니다. 힘들 때는 서로 도와주고,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가는 그런 모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에는 저마다의 절차와 규칙이 있습니다. 고양국제고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입학하려면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들어와야죠. 무력 침투는 안 됩니다. 대표적인 규칙은 뭐가 있을까요? 학교 생활 규정입니다. 기숙사 벌점 관련 규칙도 있겠군요. 벌점 10점이면 퇴사. '나 가기 싫어!'하고 버티면, 안 나갈 수 있나요? 안 됩니다.
학교 내부의 공동체들. 이것들은 모두 학교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인문학 울림, 창의 진로 프로젝트, 정규/자율동아리 등 종류도 다양하죠. 이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나요? 그 리더들은 학교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뒷일 하느라,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중요한 결과물을 제출한다든지, 기타 결재를 올린다든지, 그럴 때는 항상 공동체의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도 꼭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죠. 분명 여러분들도 공동체에서 리더를 맡는다든지 하는 기회가 생길 겁니다. 그냥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척척 진행이 잘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지 않으니까 문제지.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낙오자들은 점점 더 많아집니다. 이것은 링겔만 효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1인당 기여도가 낮아지는 현상이죠. '나 하나쯤이야' 하고 발 빼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냥 다른 조원들이 조금 더 일하면 되니까. 편의상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으나 해당 공동체에 기여를 하지 않는 사람'을 X라고 부르겠습니다. X가 하지 않는 건 그냥 나머지 조원들이 나눠서 하면 됩니다. 그리고 X는 제명하면 되죠. 처음부터 우리 구성원이 아니었다는 듯이.
이 X가 과반을 넘어서면 조직은 와해됩니다. 이끌어갈 사람이 없으니까. 특정 공동체 내에서 X가 많아지다 보면 다른 구성원들도 결국 X가 되어버립니다. 똑같아요. 탈진하는 겁니다. X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구성원의 사기를 꺾고 있던 공동체마저 무너뜨린다는 점입니다. 그럴 거라면 공동체에는 왜 있는 걸까요? 차라리 나가서 혼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지.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제 실수로 인해 공동체에 피해를 끼친다면, 이 공동체가 향유하는 역사와 문화를 망친다면 그건 너무나도 큰 잘못이니까. 그래서인지 남들을 볼 때도 똑같이 엄격한 기준이 내려지곤 해요. 이런 작은 개별 공동체가 모여 국가를, 세계를 이루니까요. 규모가 작다고 해서 규칙을 무시한다면, 법률은, 헌법은 왜 필요한가요?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지 마라. 알고 있어요. 제가 여러분께도 자주 하는 말이니까. 그런데 왜 저는 유독 제가 한 말들을 지키지 못할까요. 머리로는 분명 아는데,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해요. 이게 무슨 미련한 짓입니까.
저는 제가 맡은 일에 대해 굉장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사진부 부장이라든지, 창진프 셰어텍의 앱 개발자라든지. 제가 어떠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한, 그 안에서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 신념입니다.
저는 어느 공동체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까요? 제가 애착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해당 공동체에서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고양국제고 사진부 FLIP입니다. 제가 동아리 부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변화하는 대입에 맞춰 동아리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자 저 밑바닥에서부터 진짜 고생했으니까요.
공동체란 여러 개인들의 집합. 제가 늘 얘기하지만, 방향성이 같은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죠. 그 방향, 화살표들이 잘 정렬된다면 정말 예쁜 공동체가 만들어지겠지만, 모두가 각자대로 행동하면 그 공동체는 찢어집니다. 개인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이 반드시 집단 전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니까요.
공동체가 사라지면, 그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개인도 사라집니다. 더군다나 그 공동체에 가졌던 애착이 클수록, 그 상실감은 더 크게 다가올 겁니다. 공동체의 소멸은 우리가 지금까지 일궈왔던 노력과 우리가 땀 흘리며 이뤄낸 결과물, 그리고 다른 구성원과의 연대 의식까지 한 번에 부숴버리는 일입니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란 얘기죠.
그런데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도 많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정부의 특목고 폐지가 있겠네요.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애착을 가진 공동체가 소멸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그다지 달가운 소식은 아닐 겁니다. 막을 수만 있다면 막고 싶겠죠. 특히나 내가 대표로 있으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까지 유지해왔던 공동체가 내부 분열로 인해 파괴된다면, 그 상실감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 정도가 심각하면 번아웃이 같이 찾아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결과가 이거야?
리더가 다른 구성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맞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끌고 가자고 리더가 있는 건 아니죠. 이런 사람들은 칼같이 잘라내야 합니다. 리더에게는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쓰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그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혹은 공동체 자체가 와해된다? 환장하는 일입니다. 저라도.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습니다. 내가 왜 별 고생을 다 하면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Loonshot>에서도 그러죠. 역동적인 분자 하나가 전체 물질의 모습을 바꿀 수 없다고. 결국 저도 그 한계를 직감하는 겁니다. 그리고 좌절하죠.
이건 내 능력 밖이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건 중요합니다. 열정이란 이름으로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포장해봤자 결국 좌절과 상실감만 돌아올 뿐이에요. 여러분의 기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바닥날 테니까요.
공동체를 이끌어나간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꾸려간 공동체가 누군가에 의해 와해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요. 여러분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거,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거든요. 마음고생 심하게 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애착을 갖고 운영하던 저의 동아리, 사진부 FLIP은 결국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그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이 글은 소설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며, 사실을 각색한 내용입니다.
"너희 동아리 사라지는 거 다들 동의하는 거지?"
"네?"
심장이 덜컥했다. 동아리가 사라진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전혀 알고 있던 게 없다.
"너희 부원들이 동아리를 그만하고 싶다는 것 같더라고. 너랑 전체 부원 모두가 동의하는 거 맞지? 최종 결정이 나면, 폐동 신청서를 줄게. 그걸로 결재를 올려서 이후 작업을 진행할 거야."
"아니 선생님, 잠시만요. 저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인데요...?"
무슨 일이었을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 동아리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부원들의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대표라는 역할이 이렇게 힘들었던가? 비난의 화살은 다 나에게 쏘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분명 FLIP의 부장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동아리의 의견을 합치시키는 것이다.
"넌 가만히 있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니, 나도 갈 거야. 마냥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잖아."
"지금까지 손 놓고 지켜본 게 누군데?"
나는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동아리 폐지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고, 유지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물론 내가 동아리에 가진 애착이 있고, 특히 나는 부장이기에 폐지 의견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그래서 더 골치 아파진다. 그리고, 일부 부원들의 의견을 따라 내가 폐지에 손을 들면 다른 부원들에게 비판을 받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까지는 내 안에서 고민하고, 선생님들과 상담하러 다녔던 게 전부였다. 실질적으로 뭘 한 게 없다. 어쩌면 내가 욕을 먹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1학년은 동아리를 폐지시키길 원했고, 2학년은 동아리를 존속시키길 원했다. 골치 아프다.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설령 존속을 시킨다고 해도, 이미 폐지로 마음을 기울여버린 1학년 아이들이 내년 활동을 이끌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순히 폐지를 받아줄 것인가? 그럼 우리는 뭐가 되는가. 우리도 작년에 그런 고생을 하며 1년을 버텨왔다. 그리고, 단순히 운영하기 힘들어서 폐지하고자 한다면 다른 동아리는 어째서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는가.
'아, 그냥 내가 운영을 잘못했나 보다. 그저 너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부장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부장 짓을 하고 다녔으니 이 사태가 일어나지.'
'난 진짜 왜 되는 게 없는 걸까. 나도 행복한 동아리 꾸리고 싶었다고... 그랬는데....!'
순간 울컥했다. 남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들어가 마스크를 벗었다. 눈앞이 뜨거웠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목에서 무언가가 나오려고 하는데 계속 걸렸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계속 쏟아졌고, 손과 발은 크게 저려왔다. 창백해질 정도로 오열했던 건 이번이 2학기 들어서 두 번째였다. 어쩌면 내 감정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걸지도 모르겠다.
진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그렇다. 어쩌면 이게 번아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1년을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왔다. 나 혼자 이 동아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코로나 때문에 활동도 제대로 못한 1학년 아이들을 위해 동아리를 완전히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에. 무리를 하면서까지 동아리를 탈바꿈시켰다. 그게 역효과가 난 거다. 난 그동안 뭘 한 건가. 내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나 싶더니, 차츰 자학과 자기혐오로 변해갔다. 나도 운영 잘하고 싶었는데, 선후배 관계 돈독한 동아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운영을 하지 않았다면, 내 욕심 때문에 동아리를 망가뜨리지 않았다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왜 나는 이런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가.
이대로라면 화장실 안에서 울다가 지쳐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만 멈추고 교실로 어기적거리며 기어갔다. 손발이 크게 저려 손을 펴지도 못하고, 걷는 건 다리를 다친 사람처럼 그저 다리를 질질 끌었을 뿐이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저를 꺼내 주세요. 속으로 절규를 하면서 교실로 갔다. 정신을 조금만 놨으면 지난번처럼 발작을 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일단 교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크게 놀라시더니 복도로 데려가 진정시키셨다.
"... 네 잘못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상황이 이런 걸. 넌 잘못한 거 없어."
"그래도.. 왜 저희만 이렇게 분열되는 걸까요..."
"너희만 그런 것 같지? 괜찮아. 다른 데도 다 그래."
선생님 말씀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적어도 폐동이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만큼 나에겐 충격이었다. 난 뭘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왔던 건가. 너무 죄송하다. 이 동아리를 지금까지 유지시켜왔던 선배들에게. 나를 믿고 지지해주셨던 우리 동아리 담당 선생님과, 총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시간 끌지 말고, 이번 주까지 동아리 존속 여부 결정해라."
"네, 알겠습니다."
담당 선생님과의 대화도 끝났다. 부장이란 직책은 가혹하다. 밖에서 쏟아져오는 화살을 대신 맞고, 안에서 터지는 폭탄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아니, 그런 사람을 만들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내 잘못이다.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난 누굴 탓할 사람도 없다. 나를 탓해봤자 자학만 심해질 뿐이다.
거의 매일같이 교무실에 불려 갔다. 내가 간 건지, 불려 간 건지. 담당 선생님께서는 늘 메신저로 나를 부르셨다. 거의 30분에서 1시간 가까이 면담을 하곤 했다. 많으면 하루에 다섯 번씩 교무실을 오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동아리는 고양국제고에서 중요한 공동체다. 내가 이렇게 불려 다니는 것도, 부원들은 모른다. 내가 얘기를 안 했으니까. 더 이상 나 때문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내면, 나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할 게 뻔하지 않은가.
동아리를 존속시켜라. 그게 나의 임무다. 담당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내게 주어주신 과제다. 나는 꼭 그걸 이루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폐지를 원하는 1학년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약해진다. 화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 친구들 입장도 이해가 된다. 나는 어느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너희를 존중해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동아리를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악물고, 나도 강경한 태도로 나아갔다. 1학년 아이들을 소집해서 회의를 했다. 최대한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가벼운 이야기도 던지고 그랬다. 의견 수렴은 좋았다. 그런데 그 수렴된 의견이 '폐지'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나는 겉으로는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렇다. 대체 왜? 왜 나는 이렇게 중간에서 껴서 고생해야 하는가. 이것도 인과응보인가.
다음날, 마지막 회의를 개최했다. 전날 담당 선생님께 또 불려 가 1시간 가까이 상담을 들었다. 상담을 '받은'게 아니라 '들은' 이유는, 진짜 그냥 한 시간 가까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만 했기 때문이다. 동아리를 존속시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도 이 점에 크게 공감한다. 부디 폐지파 친구들이 내 뜻을 이해해줬으면 했다. 내 진심을 담아, 마지막으로 설득시키기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다음 날 회의를 했다.
'이판사판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이미 와 있었다. 그리고 회의 결과는..
예상했듯이, 동아리를 없애기로 결정되었다.
총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찾아갔다. 이제 우리 동아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행사, 우리의 추억, 대대로 물려오던 소품들과 행사 물품들, 모두 이제 우리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라는 정체성조차 상실한 상태다. 나는 누구인가. 더 이상 우리 동아리의 부장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무너졌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렇다.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나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사회에는 이런 억울한 일이 넘쳐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이 사태로 뒤통수를 몇 번이나 맞은 지 모르겠다. 사람에게 지친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너무 상처다. 언제부터였을까...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동아리를... 없애기로 했구나. 선생님도 조금 당황스럽네."
"...."
"괜찮아. 너희 동아리만 사라진 것도 아니니까."
"동아리 폐부 신청서를 줄게. 그걸 작성해서 내면, 선생님이 결재를 올려서 폐부 절차가 진행될 거야."
내 손으로 내 동아리를 없애는 순간이 왔다. 내가 없애고 싶어서 없앤 게 아니다. 나는 도저히 신청서를 작성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는 분명 폐지하겠다는 친구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터. 사전에 제대로 협의도 되지 않았다. 분명 본인들끼리 이야기했던 것들이 훨씬 자세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허수아비였을 뿐이다. 이름뿐인 부장.
"너 탁구채 내려놓고 잠깐 나와봐"
"... 알겠습니다."
방학식 날, 마지막 체육시간이었다. 체육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사실, 이분도 총동아리 담당 선생님 중 한 분이시다. 선생님께서는 나와 학교를 산책하시며 동아리에 관한 얘기를 하셨다.
"선생님은.. 너희가 결정을 보류했으면 좋겠거든? 쟤네가 겨울방학 지내면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OT 전까지는 시간을 주고 싶어."
"...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다시 부른다고 돌아올까요?"
회의적이다.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를 붙잡아봤자 역효과만 날 뿐이다. 난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지켜봤으니까. 회의를 하면서 그 친구들의 의견과 생각을 들었으니까. 이미 우리 동아리에 대한 마음은 꺼졌다. 열정조차 찾을 수 없었다.
2학년은 동아리를 유지하길 원한다.
1학년은 동아리를 없애길 원한다.
선배들은 당연히 동아리를 존속시키길 원한다.
담당 선생님께서도 동아리를 유지시키길 원하신다. 그런데, 폐지를 반대하진 않으신다.
총동아리 선생님께서는 중립적이시며,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신다.
그리고 체육선생님께서는 결정을 보류하길 원하신다.
도망치고 싶다.
난 이 중간에서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나는 이제 부장 역할이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갈려나가야 한다. 서로 다른 여섯 개의 톱니바퀴가 나를 중심에 두고 내 살을 조금씩 뜯어내고 있었다. 완전히 갈려서 뼈가 으스러지고, 형체까지 사라지면 이제 그만 갈겠지. 내가 저 정도로 망가져야 이제 날 그만 괴롭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