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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바람 Oct 04. 2021

아무개 모두의 이름,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 할 때

04.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 의병과 무명독립군

<미스터션샤인>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완익(좌)과 모리 타카시(우) 

“조선인들은 다루기 쉬운 종자요. 배만 안 곯리면 알아서 꿇고, 사탕이라도 하나 물리면 알아서 기고, 나머지는 매가 약이지.”     

“조선은 왜란 호란을 겪으면서도 여태껏 살아남았어. 그 이유가 뭔지 알아? 그때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내놓지. 누가? 민초들이. 그들은 스스로를 의병이라고 부르지.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은 을미년에 의병이 되지. 을미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난 임진년 내 선조들이 조선에게 당했던 수치를 반복할 생각이 없어. 의병은 반드시 화가 돼. 조선인들 민족성이 그래.”     


<미스터션샤인>에서 유진과 미국에서 함께 수학했던 일본군 대좌 모리 타카시. 그가 조선에 들어와 친일파 이완익이 처음 마주하는 자리. 조선놈들 다루는 일은 쉽다는 이완익의 장담에 모리 타카시가 정색하며 어눌한 조선말로 내놓는 대사죠.     


전쟁이 일어나 성이 함락되면 패배한 성의 백성들은 당연히 새로운 성주에게 복종하는 일본의 문화. 개전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임금은 도망쳤건만, 살면서 혜택은 고사하고 멸시와 천대만 받던 백성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들고 일어서니, 왜군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조선을 침략하며 계산에 넣지 못했던 의병이라는 변수에 발목이 잡혀 왜군은 고전을 하게 되죠. 300년 후 다시 조선을 집어 삼키려 건너온 모리 타카시는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의병은 조선시대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쳐들어와 30년간 항쟁을 벌일 때에도 모든 백성들이 나가 싸웠다죠. 심지어 화적떼까지 나섰다고 합니다. 


국난을 당했을 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외세에 맞서 싸우는 의병의 전통. 무어라 설명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그러나 실체가 분명한 한국인들의 DNA입니다.         



<미스터션샤인>에서 의병을 취재하는 종군기자 맥켄지

이미 나라가 망하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빈약한 무기를 들고 죽으러 나서는 사람들이 한 서양인의 눈에도 신기하게 보였을 겁니다. 더군다나 청나라와 러시아를 연달아 격파하며 아시아 최강의 군대로 발돋움한 일본의 정규군을 상대로 싸우겠다니... 더욱 호기심이 발동했겠지요. 1907년 가을, <Daily Mail>의 영국인 종군기자 맥켄지는 취재를 위해 의병을 직접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어렵사리 경기도 양주의 어느 산골에서 그들을 만나게 됩니다.     


맥켄지가 유진의 도움으로 의병을 만나 취재하고 사진을 남기는 <미스터션샤인>의 장면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죠.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싸우다 죽겠죠. 그러나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싸우다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라는 드라마 속 의병의 대사는 맥켄지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맥켄지가 처음부터 조선에 호의적인 건 아니었답니다. 오히려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의병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큰 충격과 감동을 받습니다. 그는 대한제국에서 머물면서 2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엮어 1908년에 <대한제국의 비극>(Tragedy of Korea)라는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맥켄지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힙니다.     

“한국인들은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무심하지도 않다. 한국인들은 애국심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 맥켄지가 남긴 실제 의병 사진 / (아래) <미스터션샤인> 드라마에서 재현한 의병 사진

의병의 실제 사진은 흔치 않습니다. 맥켄지가 남긴 한 장의 사진은 귀중한 사료입니다. 이 사진을 통해 당시 의병의 상황과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죠. 허름한 차림에 낡은 무기, 지쳐 있는 듯 보이나 매섭게 살아있는 눈빛. 몸집이 작은 사람은 미성년자이거나 여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사내에게 특히 눈길이 갑니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었던 1907년은 의병투쟁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시기입니다. 


<미스터션샤인>에서도 군대가 해산되면서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죠. 시위대 대장이었던 장포수(최무성)는 어린 병사들을 피신시키며 반드시 살아남으라고 명령하고 전투 끝에 최후를 맞습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의병부대에 합류합니다.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하여 일어난 1895년 을미의병, 빼앗긴 외교권에 분개하여 일어난 1905년 을사의병. 의병이 일어나면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는데, 같은 동포끼리 총을 겨누어야하니 의병측이나 군인들에게나 모두 고약한 상황이었겠죠. 그런데 군대가 해산되고 일제와의 전투 끝에 살아남은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게 되니, 이제 상대는 일본이라는 적(敵)으로 선명하게 정리가 됩니다.     


더군다나 그 이전까지의 의병부대가 대체로 유생 의병장을 중심으로 꾸려졌다면, 근대적 군사교육을 받은 정규 군인들의 합류는 의병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의병투쟁이 ‘의병전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이죠.     


일제 자료를 보면 1907년 8월에서 12월 사이에만 의병부대와 일본군의 교전이 323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병들이 얼마나 전국적으로, 조직적으로, 치열하게 싸웠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처음에 언급한 모리 타카시의 대사처럼 일제는 의병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의병부대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에 들어갑니다. 이른바 ‘남한대토벌’입니다. 1909년 9월부터 10월까지 의병활동이 특히 활발했던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일제는 토끼몰이식 진압을 벌입니다. 의병뿐만 아니라 의병이 활동할만한 마을과 민가를 모조리 불태우고 민간인들까지 잔인하게 학살합니다.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일제와 싸우다 희생된 의병의 숫자는 사망자 17,779명, 부상자 3,706명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기록이니 실제 숫자는 훨씬 많겠죠. 보통 전투가 벌어지면 부상자의 수가 사망자보다 몇 배는 많게 나오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사망자가 부상자보다 다섯 배나 많죠. 의병들의 투쟁이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병은 모두 사라졌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미(丁未)년의 자식들’은 다시 독립군으로 부활합니다. 만주와 연해주로 무대를 옮겨 싸웠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독립군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지휘관이거나 간부들 혹은 일제에 붙잡혀 수형자료에 이름이 남은 경우입니다. 대다수 독립군은 '전투 중 아군 사망자 00명, 부상자 00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무명 독립군'이라 부릅니다.    

 

조선왕조의 몰락을 두고 제대로 전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망한 무능한 나라라고 말합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무능은 호의호식하던 왕과 관료들에게는 충분히 적용되지만, 이 땅을 떠받치고 살던 의로운 이들의 몫은 아닙니다. 국가가 제대로 하지 못한 임무를 의병과 독립군이 대신하였습니다. 그들의 불꽃같은 삶과 죽음은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속 버티며 싸울 수 있는 이유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빛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는 광복을 위해 싸웠던 무명 독립군을 추모하는 국가시설이 없습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 깊은 곳에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가 아니라 광복회에서 세운 것이죠.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지키는 군인도 없고, 향로도 없고, 찾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미국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무명용사 묘가 있습니다. 어느 국가의 정상이든 미국을 방문하면 꼭 참배하는 곳이죠. 미국인들의 성지(聖地)입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옆에 있는 이른바 ‘꺼지지 않는 불꽃’ 또한 무명용사를 추모하는 성지입니다. 프랑스 파리 개선문 옆에 있는 무명용사 묘, 영국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있는 무명용사비,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높게 세워져 있는 인민영웅기념비도 마찬가지죠. 모두 사람들이 자주 찾는 상징적인 장소에 무명용사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자신들의 현재를 만든 주역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의병에서부터 무명 독립군으로 이어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역사, 그들을 추모하는 시설 하나 정도는 이제 국가에서 제대로 만들어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스터션샤인>에서 다른 의병들의 존재에 궁금증을 갖는 애신에게 장포수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의 공통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듣고 잊어라.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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