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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설애

이 책 사진만 올려놓고 도망치고 싶었다.

읽어보세요.라는 단 한 줄만 남기고

책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여운이 길었다.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소개해야 한다.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자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그에게 닥칠 불행을 같이 걱정해주어야 한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펄롱은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팔았고, 추위가 닥쳐와 바쁜 시기에는 배달을 했다.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빈주먹만도 못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해서,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그 집에서 아이를 낳아 일했다. 미시즈 윌슨은 그녀를 내쫓지 않고 그녀의 아이 펄롱도 같이 보살펴주었다. 펄롱이 열두 살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지금은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과 함께 시내에 살고 있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수녀원으로 배달을 간 펄롱은 자신들을 강에 데려가 달라는 수녀원 아이들을 만난다. 그 이야기를 아일린에게 전하자, 아일린이 답한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착하게 반듯하게 살면 그런 곳으로 가지 않는다고.


일요일 아침, 수녀원으로 배달을 간 펄롱은 석탄 창고에서 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는 자신이 낳은 아기를 데려갔다고 했다. 그 아이를 다시 수녀원으로 데려다주고 나오자 안에서 열쇠로 문을 잠근다.




아일랜드의 수녀원이 운영하던 [막달레나 세탁소]의 이야기다.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운영되었으며, 젊은 여성을 갖가지 이유(심지어 예쁘다는 이유로도)로 수용하여 착취하였다. 막달레나 세탁소'들'을 운영하여 수녀원은 금전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했으며, 어느 세탁소에서는 시신이 암매장된 집단묘지가 나오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를 짐작하면서도 입 다물고 모른 척한다.


그들이 마을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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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펄롱은 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걸어간다.

크리스마스다.

모두가 선물을 주고 받는데, 선물은 꿈도 꿀 수 없는 아이들.


다 한통속이야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은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들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이 책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는 2024년 개봉되었다.

영상은 느리고 조용한데, 소리가 유독 크게 표현되는 영화였다.

일상은 조용한데, 마음의 일렁임이 큰 것처럼.

엄마의 이름과 같은 세라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마지막 장면 뒤에 울리는 종소리

종은 누구를 위해 울리는가




보호, 교화를 명목으로 한 수용과 착취

그것이 한 세기를 넘어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도 수녀원에서... 종교의 탈을 쓴 악마의 조직으로 보이는데, 집단적 합리화가 없이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펄롱의 용기를 응원하며,

<책의 미로> 다섯 번째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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