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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덧없는 사랑에 대해

시 예순셋

by 설애

나팔꽃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鐘)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8월에는 나팔꽃이 핍니다.

나팔꽃 전설은 좀 애달픕니다.

꽃말은 '기쁜 소식', '덧없는 사랑'입니다.

왜인지, 볼까요?



옛날 중국의 어느 마을에 빼어난 미모의 아내가 있는 화공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새롭게 부임해 온 원님이 화공의 예쁜 아내를 탐냈습니다. 그래서 누명을 씌워서 아내를 성으로 잡아들였습니다.

그 죄는 "너무 예뻐서 동네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라네요. (여기서 떠오른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 원님은 수청을 들면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노라고 몇 날 며칠 화공의 아내를 회유해 보았지만,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답니다.

화가 난 원님은 아내를 성곽 제일 높은 쪽방에 가두어 버렸다고 합니다. 아내가 너무 그리웠던 화공은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아내의 그림만 그리다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그동안 그려 놓은 그림들을 아내가 갇혀 있는 성벽 아래에 묻고서,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편이 죽고 난 이후부터 화공의 아내는 매일 밤 남편이 나오는 같은 꿈을 꿉니다. 매번 같은 꿈이 반복되자 이상하게 여긴 아내는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요.
성벽을 열심히 타고 올라오는 꽃 하나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꽃이 남편임을 깨닫고서 꽃이 성을 다 오를 때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해가 떠 햇빛이 따가워지면 꽃은 성을 다 오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렸어요.

다음날 아침에도 성벽을 내려다보았지만, 역시나 꽃은 성벽을 다 오르지 못했는데요. 때문에 아내는 하는 수 없이 꽃이 성벽을 오르는 새벽에 남몰래 성벽 아래 꽃을 내려다보며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꽃은 아내의 작은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꽃잎이 나팔 모양으로 벌어졌다고 합니다.




나팔꽃은 매일매일 자라고 오르는 의지가 있는 꽃, 죽어서도 포기를 모르는 꽃이군요.

나팔꽃보다는 나은 사람이기를 바래봅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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