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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정혜신

당신이 옳다, 비밀의 화원

by 설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치유자(작가 스스로 치유자라는 말이 더 좋다고 한다.)인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에 나오는 심리적 CPR(심폐소생술) 행동 지침서를 [비밀의 화원]을 예시로 풀어보고자 한다. [당신이 옳다]의 책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은 이해하기에 적절하다.

굳이 [비밀의 화원]을 가지고 온 것은 심술쟁이 메리와 병약한 사촌 콜린의 심리 치유 과정 또한 동일한 과정이고, 대표적 외부 사례로 우리 삶에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만의 증명이다.




경계 세우기

경계 세우기는 공감은 하되 선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이 하나의 성을 쌓고 스스로가 경계를 지킬 뿐 아니라, 타인의 경계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비밀의 화원>

메리는 인도에서 하녀들에게 모든 것을 시키고 옷도 혼자서 안 입는 꼬마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영국 고모부댁(크레이븐)으로 와서 시중드는 마사라는 하녀가 온다. 마사는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메리의 거만함에도 기죽지 않는다.

“네가 내 하녀가 되는 거니?” 메리는 여전히 인도에서 하던 대로 거만하게 물었다.
마사가 다시 장작받침대를 문질러 닦으며 딱 잘라 말했다.
“난 메들록 부인의 하녀여요. 메들록 부인은 크레이븐 쥔님의 하녀구요. 그래두 내가 여기 일을 거들구 아가씨 시중두 좀 들 거여요. 근데 아가씨는 시중들 일이 많진 않겄네요.”

울음소리를 따라가 콜린을 만난 메리가 그 다음날 마사와 이야기한다. 마사는 고모부가 없는 집에서는 콜린이 주인이니, 그가 부르면 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메리는 본인의 경계를 명확하게 세운다.

“나한테 한 번이라도 화를 내면 난 다시는 콜린을 만나러 가지 않을 거야.” 메리가 말했다.
“도련님이 부르믄 아가씨두 갈 수밖에 없어요. 그건 미리 알아두시는 게 좋을 거여요.”


충조평판 하지 않기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 없이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말만 해주는 것도 공감이 아니다. 가끔은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에 기반한 충고, 조언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메리가 늙은 정원지기 벤 웨더스태프를 만난다.

“난 친구가 하나도 없어. 전에도 없었고. 내 아야는 나를 싫어했고, 난 누구랑 같이 놀아본 적도 없어.”
요크셔 사람들은 생각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벤 웨더스태프도 요크셔 황무지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아가씨는 나허고 굉장히 비슷허네요. 우린 같은 부류요. 둘 다 생긴 것두 별루구, 생긴 거마냥 성격도 심퉁스럽지. 성질 고약헌 것두 똑같구, 보나마나요.”
솔직한 말이었다. 지금껏 메리 레녹스는 자신에 대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원주민 하인들은 메리가 무슨 짓을 하든 언제나 고개를 조아리며 복종했다.

아픈 콜린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콜린에게 메리는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난 황무지에 못 가.”
메리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용기 내어 말했다.
“나갈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콜린이 깜짝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황무지에 간다고! 내가 어떻게? 난 죽을 건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메리는 동정심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콜린이 그런 식으로 죽음을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략)
“있잖아. 죽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난 그런 이야기가 싫어. 사는 이야기를 하자. 디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거야. 네 그림책도 같이 보고.”
그건 메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메리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나가고, 콜린은 메리가 오지 않자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만해! 멈추라고! 지긋지긋해! 모두 다 너를 싫어해! 전부 다 이 집에서 도망가고 너 혼자 소리 지르다 죽게 내버려두면 좋겠어! 넌 혼자 악쓰다가 일 분 만에 죽을 거야. 그렇게 되면 좋겠네!”
착하고 동정심 있는 아이라면 이런 말을 입 밖에 내기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아무도 감히 말리지 못하고 맞설 생각조차 못했던 이 히스테리증 아이에겐 이런 말을 듣는 충격이 가장 좋은 약이 될 수도 있었다.
콜린은 엎드려 누운 채 두 손으로 베개를 때리면서 거의 펄쩍펄쩍 뛰다가 분을 삭이지 못한 작은 목소리를 듣고는 홱 고개를 돌렸다.
(중략)
콜린이 목이 멘 듯 간신히 말을 이었다.
“혹이 만져져. 내가 만져봤어. 그럴 줄 알았어. 이제 곱사등이 될 거고 그러다가 죽겠지.”
콜린이 다시 몸부림치면서 얼굴을 돌리고 엉엉 울었지만 악을 쓰지는 않았다.
메리가 무섭게 반박했다.
“혹 같은 거 없어! 혹이 있다면 히스테리 혹이겠지. 히스테리 때문에 혹이 생기는 거야. 진저리 나는 네 등하고 아무 상관 없어……. 문제는 히스테리라고! 엎드려 봐. 내가 볼게!”


공감의 외주화가 아닌 내재화

일상에서 공감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병원이나 전문가에게 가는 것은 '공감의 외주화'다. 그전에, 가까운 사람에게 공감받을 필요가 있다.



메리와 이야기하며 희망을 가진 콜린에게 주치의와서 주의 사항을 전한다. 말하지 마라, 창문 열지 마라, 나가지 마라, 아프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크레이븐 박사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보모가 들어오자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콜린에게 몇 마디 주의를 주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 아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쉽게 지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메리가 듣기에도 콜린이 잊으면 안 되는 불편한 사실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린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검은 속눈썹이 난 이상한 눈을 크레이븐 박사의 얼굴에서 떼지 않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잊어버리고 싶어요. 이 애는 그걸 잊게 해줘요. 그래서 메리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
크레이븐 박사는 썩 유쾌하지 못한 얼굴로 방을 나갔다. 나가면서 커다란 의자에 앉은 작은 여자아이를 당혹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질문하기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공감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질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공감이다.


곱사등이되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저주 같은 말들의 올가미에 갇힌 콜린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걸 싫어한다. 메리는 왜 그런지 묻는다.

하루는 메리가 물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왜 그렇게 화가 나?”
“원래부터 싫었어. 아주 어릴 때부터 쭉. 어느 날 나를 바닷가로 데려가서 무개 마차 안에 누워만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전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여자들은 내 보모한테 와서 말을 거는 거야. 그러고 나서는 서로 소곤거렸지만 내가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살지 못할 거란 이야기인 걸 나는 알았어. 그 여자들은 가끔 내 뺨을 쓰다듬으면서 ‘불쌍한 것’이라고 말했고! 한 번은 어떤 여자가 또 그러기에 내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면서 그 여자 손을 물어버렸어. 그랬더니 기겁하고 도망가 버리더라.”
“그 여자는 네가 개처럼 미친 아이인 줄 알았겠다.”
메리가 감탄과는 거리가 먼 말투로 대꾸하자 콜린이 이마를 찌푸렸다.
“그 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알 게 뭐야.”


+ 움직이기

[비밀의 화원]을 택한 것은 이 마지막 조언을 더하기 위함도 있다.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움직이게 하는 일상의 공감도 중요하지만,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메리는 줄넘기를 하고, 정원일을 하며 건강해진다.

메리는 운동을 한 데다 기분도 좋아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메리가 한껏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매일매일 살찌고 있어. 메들록 부인이 나한테 좀 더 큰 옷을 만들어줘야 할걸. 마사는 내 머리카락도 더 굵어지고 있대. 이젠 그렇게 힘없이 축 늘어지지도 않는대.”

콜린은 침대를 벗어나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

콜린은 상록수 쉼터에 앉기도 하고 한두 번 풀밭에 앉거나 몇 차례씩 걷던 길에 멈춰 서서 디콘에게 기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화원 한 바퀴를 끝까지 다 돌았다. 나무 차양 아래로 돌아온 콜린은 두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중략)
콜린은 의기양양하여 얼굴이 빨갛게 상기됐다. 콜린 스스로도 자신이 건강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본인은 미처 몰랐을지 몰라도, 그것으로 이미 반 이상은 이긴 싸움이었다.


마음이 아플 수 있다.

그 병이 깊어지기 전에

주변의 관심과 이해로 나을 수도 있다.

그 방법을 바르게 알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심리적 심페소생술 행동 지침서

<책의 미로> 여덟 번째 책,

[당신이 옳다]를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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