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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샤르의 시

시 백팔

by 설애

엄격한 분할 中


28

시인은 단방향의 항구적 복원력을 지닌 인간이다.


35

시인은, 의도를 계시받은 행동으로 옮기고 일련의 피로를 희생의 운임으로 바꾸면서, 의기소침의 창유리에 난 모든 모공을 통해 냉기의 오아시스를 불러들이고, 그대의 입술을 지혜로 삼고 내 피를 재단으로 삼아, 경이, 엄정함, 홍수, 노력의 히드라인 프리즘을 창조한다.


39

중력의 한계점에서, 시인은 거미처럼 하늘에 제 길을 낸다. 자기 자신에게는 부분적으로 은폐되어 있지만, 타인들의 눈에는 교묘하기 짝이 없는 그 속임수의 빛살들 속에서 시인이 치명적으로 드러나 있다.


42

시인이 된다는 것은 불안에 대한 욕구를 갖는 것이고,

그 욕구의 수행은 존재하는 것들과 예감되는 것들의 총체적 소용돌이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 지극한 행동을 유발한다.


44

시인은 측량할 수 없는 비밀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 샘물의 형태와 목소리를 괴롭히고 학대한다.


48

시인은 이렇게 권고한다. "몸을 숙이세요, 좀 더 몸을 숙이세요." 자신이 쓴 페이지에서 매번 무사히 빠져나오는 건 아니지만,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올리브 한 알의 영원불멸을 활용할 줄 안다.


49

증표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시인은 미래의 축포로 대응한다.


르네 샤르(Rene Char, 1907~1988)는 프랑스 시인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알베르 카뮈, 프랑스 현대시를 대표하는 르네 샤르는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지요. 이 두 사람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냈는데, 까뮈는 르네에게 이런 내용을 보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편지를 모은 책도 출간되었습니다.


르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내 안에 깃든 빈자리가,
공허가 오직 당신의 글을 읽을 때 채워집니다.

카뮈와 르네, 출처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71125/87445298/1

[격정과 신비]는 그의 여러 시집을 모아 출간한 것으로 그중 시인과 관련된 짪은 메모 같은 시들을 골라 소개합니다. 르네는 초현실주의였다가 레지스탕스의 시인이 되었다는데, 아마 그의 인생을 따라가며 읽으면 시의 변화가 느껴지겠지만 한 번에 읽어버린 저의 총체적인 평은, 농축적인 시라는 것입니다. 농축액을 바로 마시지 않고, 좋아하는 농도로 희석해 마시듯이 르네의 시는 희석과 같은 해석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인에 관한 그의 시들은 시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시에만 몰입하는지, 시로서 해결하려고 드는지 보여줍니다.


그대의 입술을 지혜로 삼고
내 피를 재단으로 삼아,
경이, 엄정함, 홍수, 노력의 히드라인
프리즘을 창조한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시로 창조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까뮈의 공허를 채운 시를 조금 맛보았습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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