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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여전히 버릇이 없다

시 백삼십칠

by 설애

도마의 구성


마경덕


나무도마에게 딸린 식구는

혼자 사는 여자와 칼 하나

닭집 여자는 칼에게 공손하고 칼은 도마를 얕본다

서열은 칼, 여자, 도마

도마는 늙었고 칼은 한참 어리다

칼받이 노릇에 잔뼈가 물러버린 도마는

칼 하나와 애면글면

둘 사이에 죽은 닭이 끼어들면 한바탕 치고받는다

내리치는 서슬에 나이테가 끊어지고

이어 찬물 한 바가지 쏟아진다

닭이 사라져도 도마를 물고 있는 칼

칼은 언제나 도마 위에서 놀고

도마는 칼집투성이다

이 조합은 맞지 않아요

도마가 애원해도 여자는 늘 도마를 무시하고

칼은 여전히 버릇이 없다

어디서 굴러온 막돼먹은 칼을 여자는 애지중지 받든다


* 애면글면: 약한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온갖 힘을 다하는 모양.


도마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식구는 셋이에요.

도마, 여자, 칼

나이는 도마 > 칼, 서열은 칼 > 여자 > 도마

도마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겠어요.

이 어린 칼이 자꾸 여자 손을 빌려서 나를 괴롭히는데,

이 조합은 맞지 않다며 애원해도 칼은 나에게 꽂혀요.

닭을 썰때는 그렇다고 해도 다 썰었는데도 칼은 꽂혀있어요.

여자가 닭을 써는 장면으로 나이와 서열을 떠올리고,

도마의 편을 든 시인은,

물건 하나 허투루 보는 법이 없었겠죠.

그래서 이 시인의 시선을 며칠간 따라가 볼까 합니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요?

또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지!


마경덕 시인의 시집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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