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묘비명: 나는 누구인가?

로맹 가리(에밀 아지르), 데카르트

by 설애

나는 누구인지, 생의 끝까지 묻는다.


그의 이름은 로맹 가리, 그리고 에밀 아지르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콩쿠르 상은 생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상을 두 번 받은 유일무이한 인물이 있다. 로맹 가리(1914-1980).

1956년에는 본명으로, 1975년에는 에밀 아지르라는 가명으로 수상해 역사상 공쿠르 상을 2회 수상한 인물이다. 나는 로맹 가리를 [자기 앞의 생]의 작가 에밀 아지르로 만났다.

로맹 가리는 유명한 작가였으므로, 그는 그의 이름 탓에 책이 유명한 것인지 글을 잘 써서 유명한 것인지 궁금해서 에밀 아지르라는 가명으로 책을 쓴다. 그의 나이 60세에 이르러 벌인 일이다. 그 책이 [그로칼랭], [자기 앞의 생]이고, 이 책들은 다시 인정받는다. 그래서 [자기 앞의 생]을 쓴 에밀 아지르는 콩쿠르 상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다음에 벌어진다. 이미 유명한 로맹 가리가 상을 받으러 나설 수 없어 상을 거부하는데, 수상은 회수되지 않는다. 결국, 대리인을 내세우게 되고, 나중에는 로맹 가리가 "가짜" 에밀 아지르를 표절했다는 오해를 받기에 이른다. 로맹 가리 사후에 에밀 아지르와 동일 인물임이 밝혀지게 되며, 사람들이 경악한다.


나는 이 일화에서 로맹 가리라는 사람이 가진 의문, 즉, '나의 글은 내가 썼기 때문인가, 글이 좋아서인가'라는 글쟁이의 존재론적 질문을 보았다. 브런치의 라이킷은 '들른다는 인사인가, 글이 좋다는 것인가'라는.


로맹 가리는 6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의 아들 디에고가 니스(Nice) 근처 카프 페라(Cap-Ferrat)에 뿌려 묘가 없다고 한다. 묘비명은 아니지만, 그의 유서의 한 문장을 옮긴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표현했다.
Je me suis enfin exprimé.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프랑스의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어렸을 때는 '꼬마 철학자'였으며, 대학을 졸업 후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을 배우기 위해 길을 나서는 모험자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명제를 소거해 나가는 방법으로 하나의 명제를 찾는다. 그것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데카르트는 1649년 스웨덴에서 사망한다.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철학 강의를 새벽 5시에 일주일에 3번 해주기 시작한 지 2주 만의 일이다. 새벽에 다니느라 폐렴이 걸리고,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되었다. 하지만 독살설이 공공연하게 퍼져나갔다.


새벽 5시의 강의가 무리였을까,

계획된 독살이었을까.


데카르트는 1666년 프랑스 정부가 사후 귀국을 추진하여 파리의 상제르맹데프레 교회에 그를 묻었다. 그러나 1791년 데카르트를 팡테옹으로 이전하기 위해 묘지를 발굴하면서, 시신에 두개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두개골은 1878년 스웨덴에서 경매에 붙여져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이 두개골은 파리 인류문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두개골의 분리.
그가 전하려고 했던 진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그의 묘비명이다.


​데카르트, 유럽 르네상스 이후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이성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보한 사람이다.
Descartes, who first after the Renaissance vindicated and established the rights of reason for mankind.


[참고]

뉴스

시민사회신문




삶의 많은 의문 앞에서 고개 돌리지 않은 사람들.

나의 글을 의심한 자

명제를 소거한 자


내 앞에 놓인 질문들은 무엇이며,

나는 진지하게 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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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