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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혜 May 08. 2023

타고난 기질과 건강불안

기질 및 성격검사(TCI)에 대하여


나와 다르게 동생은 언제나 건강에 신경을 썼다.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에도 민감했다. 동생은 나보다 4살이나 더 어리지만 1년에 한 번씩 꼭 건강검진을 받았다. 항상 나에게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언제나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내가 건강에 둔감했던 이유는 타고난 나의 기질 덕분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 기질은 환경(후천적인 경험) 만큼 중요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사람의 기질을 태어난 직후부터 짐작할 수 있다. ‘아기가 참 순하다’ 거나 ‘키우기가 까다롭다’는 말들로 기질은 표현된다. 임상심리사들은 기질을 평가하기 위해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라는 기질 및 성격검사를 사용한다. TCI에서 기질은 4가지로 구분된다. 


(1) 자극추구 Novelty Seeking

(2) 위험회피 Harm Avoidance

(3) 사회적 민감성 Reward Dependence

(4) 인내력 Persistence


네 가지 기질은 외부에서 자극이 입력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빛, 소리, 맛과 같은 기본적인 감각 자극뿐만 아니라 길을 가다가 어정쩡하게 친한 사람을 만나는 것, 아이들이 새로운 유치원에 가는 것,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 등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자극이다. 네 가지 기질은 낮음 / 중간 / 높음 수준으로 구분되고, 기질들의 조합에 따라 한 사람의 행동 경향성을 추측할 수 있다. 



위험회피는 부정적인 결과(자극)에 따른 행동(반응) 경향성을 보여주는 기질이다. 부정적인 결과는 대개 위험하거나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운전을 예로 들어보자. 운전을 하다가 과속으로 사고가 나거나 단속에 걸려서 벌금을 내는 일은 모두 부정적인 결과이다. 사고가 나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일로 위험한 자극이며, 벌금을 내는 것은 위험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언짢은 감정들(사람에 따라 짜증, 억울함, 화남, 슬픔, 자책감,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을 느끼게 하는 혐오적인 자극이다. 


부정적인 결과가 예상되거나 그런 자극을 경험할 때, 위험회피가 높은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하고 움츠러들거나 얼어붙는 모습을 보인다. 행동이 억제되는 것이다. 위험회피가 높은 사람들은 미리 닥칠 위험이나 처벌(다른 사람들에게 혼이 나거나 비난을 받는 부정적인 결과도 포함된다)에 대해 걱정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도 염려하고 대비한다. 그래서 위험회피가 높은 사람들은 불안을 더 잘 느낀다. 


앞차가 정규 속도 미만으로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위험회피가 매우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사고가 나는 것이 무서워 섣불리 악셀을 밟지 못한다. 사고가 날 바에 기어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위험회피가 낮은 사람이지만, 그날따라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목적지가 없이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행동에 다양한 원인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 채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로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기본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내 동생이 위험회피가 높은 것은 아마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타고나기를 위험회피 기질이 낮다. 병에 걸렸거나 혹은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해로운 결과이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프면 아픈 거지. ”, “그때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들이 나에게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 닥칠 위험에 대해 남들보다 덜하게 생각한다. 내가 건강검진에 소홀한 이유가 전부 기질 때문은 아니겠지만,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맞다. 타고난 나의 기질은 나의 건강불안을 부추기지도 않고,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것일까. 슬슬 아이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에 회사에서 가족들에게 비용을 지원해 준다며 동생이 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단순히 ‘한 번 받아볼까?’하는 마음(동생의 잔소리를 듣기 싫었다)으로 간다고 했다. 특히 내시경은 처음이라 혼자 갈 용기는 없었지만 엄마와 동생도 함께 검진을 받는다는 말에 따라갔던 것이다. 


 (계속)



* 안타깝게도 TCI는 MBTI처럼 인터넷에서 무료로 실시할 수 없다.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만 검사를 구매하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TCI 검사를 받고자 한다면  정신건강임상심리사1, 2급 혹은 임상심리전문가가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심리 관련 센터를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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