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을 맞추려고 부지런히 공항에 가는 길에 차들이 모두 양보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는 앞차가 아주 느리게 가거나 먼저 가려고 끼어드는 일이 많았는데 오늘은 웬일로 다들 길을 터주었다.
신나게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 읽을 책을 꺼내고 주변을 둘러보니 옆좌석이 비어 있었다. 평소 옆에 앉은 사람과 닿지 않도록 최대한 창문에 붙어 앉는데 오늘은 편히 앉아서 갈 수 있다니. 가방을 의자에 올려두는 여유도 생기다니. 기분이 아주 좋았는데, 맙소사.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두 좌석이 모두 비어 있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구나. 마치 세 좌석의 비용을 모두 결제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발도 뻗어보고, 기지개도 펴보고, 양쪽 팔걸이에 양팔을 걸어도 보는 작은 호사를 부렸다.
어느 지역이든 대학병원은 참 예약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서울에 있는 병원은 환자들이 전국에서 모일텐데 당연히 많이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내가 원하는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6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다른 교수님에게 진료를 볼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3주 뒤에 예약했던 사람이 취소를 했다는 것이 아닌가! 예약을 잡아주던 선생님도 나도 기분이 좋아져 한껏 들뜬 목소리로 인사한 뒤 전화를 끊었다.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수술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오늘은 갑상선암으로 확진된 것을 빼고는 참 운수가 좋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