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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미 Oct 17. 2023

코미일기5 <괜한 걱정>

걱정은 이제 그만




파양 된 지 얼마 안 된 터라 혹시나 이전 반려인을 잊지 못해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코미는 기죽지 않고 마치 원래부터 이 집에 살던 아이처럼 잘 지냈다. 밥도 잘 먹고 장난감 가지고 신나게 놀고 옆에 와서 아는 체도 잘했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배변패드에 볼일도 봤다. 이렇게 기특한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오다니. 나는 참 복도 많지.


코미와 나는 역시 운명의 짝이라며 우쭐해하기가 무섭게 불안감이 찾아왔다. 코미가 산책길에서 젊은 여성만 만나면 이상한 소리를 내고 두 발로 서서 아는 체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강아지가 가던 길도 멈추고 반갑게 인사를 하니 “너 날 아니?”라면서 당황해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 쯤부터 나의 불안이 시작되었다. 코미의 파양인 또한 젊은 여성이었는데 혹시나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코미는 나를 임시 보호자로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이 불안감으로 인해 한동안 똑같은 내용의 악몽을 자주 꾸게 되었다. 당시 파양인의 직업이 연예인이었는데 TV에 나오는 그녀를 보며 코미가 우는 꿈, 그리고 파양인이 코미를 다시 데려가는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이 불안은 오래 지속되다가 참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인해 깨끗하게 사라졌다. 예고편이 재밌어서 찜해 둔 영화를 보고 있던 날이었다. 얼굴이 익숙한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에 그녀가, 코미의 파양인이 등장했다. 심지어 예고편에 얼굴 한 번 나오지 않는 역할인데도 대사가 꽤 많았다. 나와 남편은 너무 놀라서 서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굳어버렸다. 그런데 웬걸. 코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도 아무 반응 없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나의 악몽과 전혀 다른 상황에 그저 웃음이 났다. 괜한 걱정을 해서 스트레스만 받았구나. 코미는 과거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구나. 자기를 구조하고 보호해 준 사람도, 길에서 마주치면 칭찬해 주는 사람도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자를 좋아했던 것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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