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by 생각잡스 유진

이심전심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달된다.

말하지 않아도 진심은 통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진심이 알려지기까지는.


가장 가깝다는 부모자식 간에도 말하지 않으면 그 속을 알아봐주기 힘들다.

하물며 부부 사이는 어떻고 지인들과의 관계는 말을 하나마나이다.

얼핏 알아봐주는 듯 하기도 하지만 이내 내 마음과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묵묵히 내 길을 가다보면 누군가는 나의 진심을, 참모습을 알아봐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고등학교 때의 일화가 잠시 기억난다.

중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 둘 사이에 또 다른 친구가 끼어들었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기로 소문이 나 있던 친구여서 반갑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 해온 시간이 있기에 내가 너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 친구인지 충분히 알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가 널 얼마나 생각하는지 말하지 않으니 알리가 없었다. 살갑게 다가오는 친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었을까. 그건 나같아도 힘들었겠다.

그 친구와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배는 아팠지만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고 '너가 진정한 친구였다'고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늦은 저녁 친구의 아버지께 전화한 통이 왔다. 친구의 가방에서 담배가 나왔는데 그게 내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비행을 저지르다 아버지께 들통나니 내 핑계를 대기 시작한 것이다.

엄격한 집안에서 밤늦은 외출은 커녕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쉽게 나갈 수 없었던 내가(?) 그런 엄청난 짓을 하고 다닌다고는 우리 부모님은 애초에 믿지도 않으셨다. 그럼에도 친구의 아버지가 전화로 따지시는 것을 꿋꿋하게 다 받아주셨다. 친구의 아버지는 다시는 우리 00와 유진이가 못 어울리게 해달라는 으름장을 놓고선 전화를 끊으셨다. 억울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에 화를 내면 더 우스운 꼴이 된다는 것을 나와 부모님은 잘 알고 있었다. 주변의 학부모님들에게도 좋지 않은 말씀을 하셔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서먹하게 되었다.

그 친구와의 사이는 말로 표현 못하는 내 성격탓에 그렇게 멀어져갔고 상황이 악화되었다. 그 때의 일은 잊을 수 없었고 친구와의 관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회복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대학을 가고 1학년 여름 방학 기간동안 아버지 친구분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을 때다. 나와 못 어울리게 해달라고 큰 소리치시던 친구의 아버지셨다. '세상에.' 나를 알아보시고는 계산대로 다가오셨다.

그런데 갑자기 두 손을 꼭 잡으시며 흐느껴 우시는게 아닌가.

"유진아, 미안하다. 내가 그때 오해를 했다. 너가 우리 00이 한테 가장 좋은 친구였는데, 내가 그걸 미처 몰랐어. 이렇게 사과하마."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예상밖의 만남, 그리고 뜻밖의 사과를 받은 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3년간 억울한 마음은 있었지만 잊은지 오래된 일이라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아저씨, 다 잊었는데요."

그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진심의 말을 했다면, 그리고 내가 아니라는 변명을 당차게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진심이 알려지기 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걸렸다.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꽤나 있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아 주변에서 알아봐주길 바라다가 때를 놓친 경우 말이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알아봐주길 바란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묻혀버리는 지금의 시대에 이런 마인드가 먹히기는 할까.


남편은 이따금씩 이렇게 말한다.

"말을 하지 그랬어.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알아."


그러게 말이다. 말을 하지 않는데 속내를 알아봐주길 바라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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