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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가볍게, 인도를

홀로 배낭을 메고, 인도로

by 론리포토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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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현관 앞에 선 배낭을 내려다보는 그 순간은 언제나 특별한 의식과도 같다. 그것은 단순한 배낭 짐 싸기가 아니다. 다가올 시간들을 향한 나의 다짐이자, 세상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었음을 스스로에게 선언하는 엄숙한 절차다. 특히 그곳이 뜨거운 활기와 끝없는 혼돈이 매력적인 인도라면 더욱 그렇다.

여행의 초심자 시절, 나의 배낭은 욕심과 불안의 집합체였다. '혹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꾸역꾸역 채워 넣은 옷가지들,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챙겨 넣은 두꺼운 책 몇 권,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수많은 비상용품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 세트를 보조용 백에 넣어 앞으로 메고, 배낭의 무게를 등 뒤에 짊어진 채 뉴델리역에 내렸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역을 나서자마자 나를 덮치던 낯선 열기와 소음, 그리고 수많은 릭샤꾼들의 호객 소리 속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단순히 물리적인 고통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아직 떠나온 곳의 관성과 미련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는 증거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틈 없이 나만의 성벽을 견고히 둘러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릭샤를 잡아탈 때마다 무거운 배낭을 구겨 넣기 위해 쩔쩔맸고, 좁은 기차 칸에서는 그 묵직한 배낭이 다른 이들의 길을 막는 방해물이 되기 일쑤였다. 나는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나의 집을 통째로 이고 고행을 하고 있는 순례자처럼 보였다.

진정한 변화는 모든 것을 비워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찾아왔다. 바라나시의 어느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배낭 속의 그 많은 물건들이 아니라는 것을. 필요한 것은 오히려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을, 황홀한 풍경을, 마음을 뒤흔드는 깨달음을 담을 수 있는 '여백' 말이다.

그 이후 나의 짐 꾸리기는, 다음번 여행을 위해 무엇을 가져갈지보다 무엇이 없어도 괜찮을지를 생각하였다. 땀과 먼지로 얼룩져도 금방 마르는 가벼운 옷 서너 장, 성스러운 사원에 들어갈 때 몸을 가려줄 긴 바지 한 장, 수많은 길을 함께 해야 할 간편하고 발을 보호할 값싼 운동화. 그리고 소중한 현지 순간들을 기록해 줄 소형 카메라 한 대, 그리고 나의 생각과 사진 작업을 위한 작은 노트북. 그렇게 배낭의 무게는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머지 절반 이상의 공간은 텅 비워둔다. 그 텅 빈 공간이야 말로 인도에서 얻게 될 가장 값진 경험과 추억을 담아 올 자리이기 때문이다.

배낭이 가벼워지면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거운 짐은 나의 발걸음뿐만 아니라 마음의 유연함까지 앗아갔던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짐에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가볍게 여행하는 법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배낭을 꾸릴 때, 물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채운다. 현지에서 산 편한 바지를 입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가능성. 라다크의 고요한 밤하늘 아래, 가진 것이라곤 침낭 하나뿐인 상태로 온전히 별빛에만 집중할 가능성. 읽으려고 가져온 책 대신, 살아있는 사람들의 눈빛과 이야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낼 가능성.

우리가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곧 우리 마음의 무게와 같다. 그러니 나는, 그리고 우리는 바람처럼 가벼워져야 한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통과하며, 가장 자유롭게 춤추는 바람처럼. 인도라는 거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텅 비어 가벼워진 나의 배낭과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와 비로소 온전한 나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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