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게 생겨버렸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만에 좋은 기회가 찾아와 다시 베트남으로 가족과 함께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2004년부터 사업을 해왔고 고생을 좀 했어도 좋은 현지 파트너들과 함께 제법 큰 기업까지 키운 후로 좋은 인연을 맺고 있어 앞으로 이 아이와 와이프와 함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 큰 마음을 먹고 넘어갔지요.
베트남으로 가서 집을 먼저 계약하고 첫 해외 생활을 하는 와이프를 위해서 단지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위치를 잡았어요. 그리고 당시에 저는 아이와 함께 단지 내 수영장을 정말 자주 갔습니다. 베트남의 경우는 일 년 중 한두 달 빼고는 언제든 야외에서 수영하기도 좋고 하니 아이가 물과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냥 나갈 수 있으면 가서 놀고 비가 오면 실내 수영장으로 가서 놀고 너무 더우면 지하에 아이스링크로 가서 스케이트를 타고 그랬어요.
그렇게 잘 지내던 어느 날
그날따라 핸드폰이 말썽인 거어요. 전원이 켜지지도 꺼지지도 않고 핸드폰이 제멋대로 작동하다 꺼졌는데 그 이후로 충전을 해도 뭘 해도 켜지질 않는 거예요.
사업을 하다 보니 전화가 꺼진 건 저에게 너무나 불편을 떠나 지옥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투자건에 대한 연락도 수시로 주고받고 여러 곳에서 계속 연락이 와서 아이랑 놀아줄 때도 전화는 항상 옆에 두고 있었거든요.
이날도 저는 아이랑 물에서 놀아주고 와이프가 옆에서 핸드폰을 검색해 가며 만져보고 수리할 곳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날따라 아이들이 엄청 많아서 베트남은 조금 큰 아이들이 더 작은 아이들을 잘 봐주니 와이프에게 핸드폰을 물어본다고 잠시 고개를 돌리고 여전히 전원이 안 켜진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아마 한 1-2분 내외였을 거예요.
어떤 아이가 물에 둥둥 떠서 수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물에 떠있는 아이의 수영복은 어디서 많이 보던 수영복이었어요.
정말 그 10초도 안 되는 찰나에 "어!" 하며 아이를 물에서 꺼내어 들어 올리고 등을 팍 때렸습니다.
등을 맞는 순간 마셨던 물들이 입 밖으로 "컥컥"하며 뿜어져 나왔고 잠시 후에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옆에서 잠수를 하는 오빠들을 따라 해 본다고 엎드려서 물 위에 뜨는 거 까진 했는데 혼자 물에서 발이 떠보고 물 위에 떠본 적이 없으니 어쩔 줄 모르고 버둥대고 있었나 봐요. 제가 잠시 고개를 돌린 그 잠깐 사이예요. 정신을 차린 뒤에는 정말 너무 소름 끼치고 무서웠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날부터 아이가 1년 정도는 수영장은커녕 세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안 씻길 수 없으니 울더라도 억지로 시키고 하긴 했지만 너무너무 무서워하는 아이를 억지로 시킬 수가 없더군요. 모두 다 제 책임인 것 같았고 그날 이후로 저도 '이 아이가 없으면 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결론은 '없다.'입니다.
다시 수영장에 데려가서 벌벌 떨고 물에 겨우 다시 들어갔는데 경끼하며 우는 아이를 보니 당시에는 정말 제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머리라도 감기려면 정말 힘으로 억지로 씻겼지만 내내 우는 아이가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고 그러다가 우연히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게 된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잘 감고 울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매일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감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연습해서 집에서 아이 머리를 미용실처럼 세팅해서 감겨주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22년도에 코로나의 타격으로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서 고마운 친구가 자기 아이들과 함께 수시로 키즈 펜션등 실내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주고 어린이집에서 생존수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후에 지금은 물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지금에서는 저에게 이런 자랑을 합니다.
"나 머리에 물 뿌려서 혼자서 감았다.", " 나 오늘 생존 수영 가서 잠수도 했어!"
누구나 다 하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에요.
오늘도 무탈하게 아무 사고 없이 살아가는 아이를 보며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아직도 제가 머리 감겨주는 걸 좋아해요. 이 사건으로 아이 머리 감겨주는 스킬 하나는 확실하게 터득했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고 아이가 커도 한 번씩 머리를 제가 감겨줄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