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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나 엄마가 맡긴 돈 쓸 거예요

#15

 “IMF만 아니었어도 벌써 착공했을 텐데. 공사비는 정해져있는데 집값이 떨어지니까 조합원들 분담금이 늘어나잖소.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거지.”


 목동공주맨션재건축정비사업조합. 미자는 부동산을 수소문한 끝에 삼거리 시장 앞 회색 간이 컨테이너 박스에 위치한 조합 사무실을 찾아냈다. 외벽의 군데군데는 칠이 까지고 녹이 슬었고, 컨테이너가 만든 그늘에선 할머니들이 좌판을 깔고 몇 가지 나물을 팔았다. 좌판을 비집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60대로 보이는 조합장이 미자를 반겼다.


 “말이 맨션이지 여긴 한강맨션 같은 고급 아파트는 아니야. 박정희 때 김포공항에서 국빈들 눈에 공항대로를 타고 시내로 가는 길에 보이는 게 죄다 논밭에 초가집이니까, 부끄럽다는 거야. 그래서 공항대로에서 보이는 목동, 염창동, 화곡동에 외국 사람들한테 깔끔하게 보이려고 5층짜리 맨션을 많이 지었어. 공주맨션도 그 바람을 타고 주택공사가 70년대 초에 지은 건데, 그 당시엔 이 일대에서 최고로 높은 건물이었어. 그러고는 바로 옆에 신동아파트를 지었고. 오다가 봤지? 신동아파트도 재건축한다고 써 붙인 거. 근데 거기도 지금은 올 스톱. 일제강점기 때는 여기가 새말이라고 뻘을 농사지으려고 개간한 땅인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브리핑을 했는지 조합장은 자료 없이도 막힘이 없었다. 동네에 대한 역사 강의가 이어졌다. 인내심 있게 듣던 미자도 일제강점기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자 지루함을 감출 수 없었다. 사무실 벽면에는 K 건설에서 만든 아파트 조감도가 붙어 있었다. 주변 건물보다 도드라지게 표현된 15층짜리 새 아파트는 이 세상의 중심처럼 보였다.


 “조합은 설립된 거죠? 재건축은 언제 다시 진행되나요?”


 해방 이후를 떠돌고 있는 조합장의 역사 강의를 미자가 드디어 끊었다.


 “젊은 양반이 성격이 급하구먼. 천하의 김대중이도 미래는 모를 거요.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다시 한번 잘 들어봐. 와우 아파트가 70년도에 무너지면서 아파트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소문이 났어. 여기도 다 짓긴 지었는데 들어온다는 사람이 없어서 애 좀 먹었지. 지금으로 따지면 미분양이니까 주택공사에서 이사비도 지원해 주고 그랬다고. 그런데 들어와 살다 보니 양옥 주택보다 살기 좋거든. 그렇게 하나둘씩 집이 채워져 나갔지. 그러다가 80년대에 전두환이가 안양천변에 신시가지 아파트를 쫙 지었는데 거지들 살던 데라고, 여기 살던 사람들이 잘 안 갔어. 이거 팔면 신시가지 아파트 분양가는 충분히 나왔거든. 근데 지금은 보라고. 거기가 한 4억 하지? 근데 여기는 아직도 2억이야. 차 타면 10분 거리인데 말이야. 그래서 여기 사람들도 눈이 돌아가서 재건축 추진을 시작했지. 수도관에서 녹물도 나오고 다시 지을 때도 되었으니까. 조합까지 다 설립하고 건설사도 내정했는데 글쎄 일이 안 되려는 모양인지 갑자기 IMF가 빵 터졌어.”


 조합장의 설명은 한참을 더 이어졌다. 공항 대로로 지하철이 생기면 목동 내에 드문 역세권 단지가 되며 신동 아파트도 재건축이 완료되면 이 부근도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촌이 될거라고 거대한 희망을 주입시켰다.


 “남들이 하는 대로 돌아보기만 하면 늦는 게 투자야. 앞을 보고,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치고 나갈 줄 알아야지.”


 미자는 자신의 신혼 시절을 떠올렸다. 남가좌동 반지하 단칸방에서 진현에게 젖을 물린 채 목동에 신시가지 아파트가 생긴다는 팸플릿을 가져와 한 글자씩 읽던 지난날의 자신을. 그렇게 허망하게 팔아버릴 의정부 땅이었다면, 그때 어떻게 해서든 그 땅을 팔고 비집고 들어가 볼걸. 후회는 불쑥불쑥 밀려왔고 매번 뭔가 하려고 하면 반대만 하는 태평이 더없이 미웠다.   


 조합장은 설명이 끝나자 미자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앞면에는 ‘목동공주맨션재건축정비사업조합’ 번호가, 뒷면에는 ‘공주 부동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미자가 명함을 뒤집어가며 비교해 보니 이름만 다르고 번호는 똑같았다.


 “하여간 생각 있으면 부동산 번호로 연락하셔. 지금 가격이 아무리 못해도 나중에 분양가보다는 훨씬 싸단 말이요. 조합원들은 분담금을 줄이려고 분양가를 최대한 높이려고 할 테니까. 돌아가는 원리만 이해하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닌 걸 알 수 있을 거요.”


 미자는 공주맨션이 끌렸다. 전세를 안고 구입하면 당장 화곡동 빌라를 팔지 않아도 되었고 경기만 회복되면 재건축 진행도 빠를 것 같았다. 비록 신시가지 ‘목동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서울에서도 손 꼽히는 목동 학원가에 마을버스로 10분이면 닿는다는 점도 미자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세기말, 화곡동에는 큰 길가마다 전에는 볼 수 없던 모텔이 들어섰다. 김포공항 근처 고도제한에 대한 반대 급부로 구청에서 모텔 허가를 내준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어느 누구도 영문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진오가 새로 생긴 모텔의 형형색색 주차장 가림막을 가리키며 이런 건물에는 누가 사냐고 물었을 때 미자는 지키고 있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 고생을 하고도 왜 아직 여기 사느냐고 어린 아들이 묻는 것 같았다.      


 미자는 태평을 데리고 주말마다 공주맨션 근처를 서성였다. 보면 볼수록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 보였다. 약간의 언덕 위에 있었지만 산이 많은 서울에서 그 정도는 흠도 아니었고, 재래시장이 바로 붙어 있어 살기도 편해 보였다. 공항대로와 접해 있어 도심으로 나가는 버스도 많았다. 어차피 화곡동에서 버스를 타도 여의도나 광화문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 공항대로였으니, 변두리에서 한 발짝은 중심으로 더 다가서는 셈이었다.


 태평은 세를 끼고 사면 지금 당장 집을 팔고 이사할 필요가 없다는 미자의 말에, 알아서 결정하라며 한 발 슬쩍 물러났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리저리 있는 돈을 모두 당겨도 3천만 원이 모자랐다. 은행도 망해 나가는 시국이라 집을 담보로 해도 돈은 빌리기 쉽지 않았다.


 “어머님이 의정부 땅 판 돈 좀 갖고 계시지 않을까?”


 미자가 태평을 슬쩍 떠봤다. 부부는 1층으로 내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말없이 장롱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는 시어머니를 보자 미자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천만 원. 그들의 예상보다 턱없이 작았다.


 “이 돈이 내가 죽을 때까지 쓸 돈이야. 의정부 땅 판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걸 찾누.. 나라가 망한다는데 왜 자꾸 일들을 벌이는지 원.. ”


 미자는 시어머니의 통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먼저 일어났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1층에선 큰 소리가 새어 나왔다. 땅 팔고 받은 돈이 얼만데 그동안 다 어디다 쓰셨냐며 태평이 따지는 내용이었다.


 미자는 과거에 매여 있을 시간이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내긴 했어도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단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 미자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빵집을 시작하며 주변 상인들과 시작했던 곗돈을 순서보다 일찍 타기로 했다. 은행보다 이자율이 좋아서 순서가 다 되면 돈을 받는 게 이득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련된 돈이 천만 원쯤. 이제 부족한 돈은 단, 2천만 원이었다.


 



 가양동 도시개발 아파트. 버스를 타는 대로변에서 봐도, 자동차를 타고 올림픽대로에서 봐도 등촌동과 가양동의 민영 아파트와 구분되지 않았지만 사실 이곳은 천세 대가 넘는 모든 가구가 저소득층, 장애인, 새터민 같은 소수자들로 구성된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였다. 곧게 뻗은 도로 바로 앞 블록에 까르푸 같은 외국계 마트가 즐비해도 엄연히 이곳은 사회가 지정한 현대판 게토였다.


 미자는 버스를 타고 가양동 도시개발 아파트로 갔다. 아름드리나무가 즐비한 단지 내는 깔끔했지만 건물 계단에 오르자 복도엔 담배꽁초와 소주 병이 나뒹굴었고, 바닥은 입주한지 5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껌 자국이 가득했다.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마주한 확 트인 바람은 청량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빼꼼하게 한강이 보였다.


 “엄마, 또 문 열어 놨어? 누가 들어올 줄 알고 함부로 막 열어 놓고 그래. 여기 무서운 사람들도 많이 살잖아.”


 맏딸의 목소리가 들리자 엄마는 끙-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새벽 기도를 다녀왔는지 눈에는 피곤이 몰려 있었다.


 “왔니. 여기 사람들 다 착해. 원래 없는 사람들이 더 착하단다. 사과라도 주랴? 애들은 학교 갔어?”


 엄마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냉장고로 향했다. 미자는 본인이 깎는다고 앉아 계시라 했지만, 엄마는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작은 소반 위에 손가락 2개 크기로 정갈하게 잘린 사과가 놓였다. 10평짜리 임대 아파트에는 거실이 따로 없어 소반을 두고 안방에 둘러앉았다. 그 집에선 가장 큰 안방이 거실과 침실의 역할을 모두 했다.


 엄마가 미도에게 빌려준 돈은 결국 받지 못했다. 미자가 아버지의 합의금이라고 생각했던 그 돈은, 엄마가 살던 단칸방의 보증금이었고 빌려준 액수도 원래 알고 있던 천만 원보다 훨씬 컸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동시에 모실 여력이 없던 미자는 그 사실을 알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가양동 영구임대 아파트를 알아본 건 태평이었다. 평생 사시던 동네 근처에 새로 지은 아파트라 위치도 익숙했고 관리비도 저렴하여 완벽한 조건이었지만 딱 하나, 재산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 문제였다. 그리하여 엄마의 수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돈은 미자의 통장에 보관하기로 했다. 미자는 엄마가 남에게 돈 빌려주는 일을 원천 차단할 수 있어 좋았고 임대 아파트가 원래 살던 단칸방보다 환경이 쾌적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난 어릴 때만 해도 우리 집이 잘사는 줄 알았어. 큰아버지 땅에서 아버지가 마름처럼 일만 하면서 얹혀사는 줄도 모르고. 오빠가 신학대학 간 것처럼 나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 갈 줄 알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그러는 거야. 미자야, 미안한데 대학은 못 보내줄 것 같다고. 그래도 난 괜찮았어.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잘 아니까. 집안에서 큰소리도 한 번 안 내고 우리들 야단 한 번 안쳤잖아. 그런 거 보면 엄마 결혼 참 잘했어. 동네에 마누라 패고, 노름이나 하는 아저씨들도 많았는데.”


 미자는 사과를 하나 집어 오물오물 씹었다. 엄마는 별 대꾸도 없이 맏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오빠가 목사 되고 나보다 어린 새언니 데려왔을 때, 나도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은 했어.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봤지만 엄마가 없어서 그런가, 늘 위축되어 보였거든. 새언니가 결혼하자마자 대학 보내달라 했을 때, 난 아버지랑 엄마가 호되게 혼내고 말 줄 알았어. 오빠 목사 월급으로는 감당 안 될 텐데, 그런 생각도 했지. 그때 나랑 엄마랑 신발 장사할 때잖아. 올케 2년제 대학 등록금을 아버지가 대줬다는 이야기 듣고 혼자 어찌나 울었던지. 아버지랑 오빠가 교통사고로 차례로 그렇게 되고 나서 큰 집 사람들이 우리 싹 외면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났을 때, 엄마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았어. 어차피 아버지랑 엄마는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줬으니까.”


 미자는 지난 몇십 년을 단 몇 문장으로 술술 풀어냈다. 내용은 격정적이었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 엄마 역시 맏딸의 말을 함부로 끊지 않았다.


 “나 엄마가 맡긴 돈 쓸 거예요. 목동에 아파트를 사기로 했는데 돈이 좀 모자라.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어차피 이 서방이랑 내가 엄마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잖아.”  


 미자의 통보에 엄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인데도 오히려 돈을 빌리는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미도가 곧 결혼을 한대. 사십이 훌쩍 넘어서 못 할 줄 알았더니 그래도 마음에 맞는 놈을 찾은 모양이야. 미자야, 네가 쓰고 남는 돈으로 미도 혼수 좀 해다오. 불쌍하고 못난 막내딸만 애 낳고 잘 살면 늙은이가 더 이상 무슨 소원이 있겠니. 나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 생각이니까 돈도 필요 없단다. 그저 너네들이나 행복하게 잘 살면 그만이야.”


 계약은 공주 부동산에서 했다. 미자와 태평은 아파트 명의 문제로 또 한참을 다투다 결국 공동명의로 타협했다. 아파트 매도인은 부모님 뻘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조합장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입금까지 완료하자 태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근데 집은 왜 파시는 거예요? 곧 재건축되면 살기 편하실 텐데.”


 “재건축이 언제 될지 알고. 나는 이제 기다릴 시간이 없어. 재건축되어봐야 자식들만 노나는 거지 중늙은이가 누려 볼 수나 있겠나. 모든 건 시간의 문제야. 돈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시간의 문제라고.”


 노인의 말을 듣는데 미자는 눈물이 찔끔 났다. 태평이 벌써 갱년기라도 왔냐며 슬쩍 놀렸다. 계약이 끝나고 미자와 태평은 녹이 다 슬어 적색으로 변한 철제 의자에 앉아 공주맨션을 한참 쳐다보았다. 초여름의 맑고 광활한 하늘을 배경으로 세상의 중심처럼 우뚝 솟은 15층짜리 아파트가 벌써 손에 잡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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