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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티브이 밖에 보여 줄 수 없던 엄마가 더 불쌍하네

#16

 “서울엔 무슨 일이야?” 


 광화문. 퇴근 시간 북적이는 인파에서도 승환은 진오를 단박에 찾아냈다. 둘은 악수보다 친근한 하이파이브 자세로 손을 맞잡고 한참을 환하게 웃었다.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반가웠다. 


 “근처에 출장 왔다가 마침 너네 회사 근처여서 전화했지. 밥이나 먹자.” 


 승환은 평소 자주 간다며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찌개 집으로 진오를 데려갔다. 저녁만 먹을 요량이었는데, 반주를 곁들이다 보니 어느새 술자리가 되었다. 


 “이 근처에 우리 자주 가던 만둣집 기억나?” 


 진오의 질문에 승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딜 이야기하는지 되물었다.


 “저기 모퉁이 돌아서 지하 1층에 있었잖아. 국물 심심하고 평양식으로 소문났던.” 


 진오의 설명에 승환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 진오는 오늘 오랜만에 가 볼 걸 그랬다며 아쉬워했지만 승환은 이제 입맛이 변해 싱거운 건 싫다고 했다. 


 “나랏일 한다고 고생이 많다. 근데, 솔직히 공무원들 세종까지 내려가서 뺑이 치는 거 보면 나 같은 사람은 고시 떨어지고 취직한 게 오히려 나은 것 같아.” 


 승환의 말에 진오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입학 때부터 친했던 대학 동기. 고시촌을 같이 누볐지만 연습 문제마다 승환이 답안지를 더 잘 썼는데도, 결국 진오는 붙고 승환은 떨어졌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전 일이었으니, 승환의 자격지심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진오는 ‘요즘 너네 회사는 어떻냐’고 화제를 바꿨다. 


 “회사는 좋아. 미래가 불안할수록 보험 파는 회사가 잘나가지. 52시간 전에는 매일 야근에 회식이었는데 이제 그것도 거의 없어졌어. 무조건 정시 퇴근. 처음에는 6시만 되면 컴퓨터도 끄고 불도 다 끄면서 쇼를 하더니 조금 지나니까 임원들부터 알아서 집에 가더라고. 회식도 연말에 법인카드 가져다가 비싼 데 가서 터는 정도고. 근데 문제는 신입 사원을 안 뽑아. 일 안 하면서 월급만 많이 가져가는 대머리 부장만 많아지고. 내가 아직도 우리 팀 막내라면 믿겠냐. 위에서는 혁신만이 살 길이라고 지랄하는데 고인물들 데리고 무슨 놈의 혁신을 해.”


 “네가 지금 대리인가? 과장 승진은 언제 해?”


 “몰라. 관심도 없어.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들 관심이 없어. 직장은 대충 현금흐름이나 뽑아 먹자는 생각들이고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코인이니.. 다들 회사에 앉아 있어도 정신은 밖에 있어. 공무원들은 어때?”

 

 짐작과 다른 친구의 대답에 진오는 사뭇 놀랐다. 진오의 기억 속에 승환은 항상 열심히 노력하고 그 대가로 원하는 게 많은, 욕심 많은 친구였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승진에 목매지, 나부터도 그렇고. 승진을 포기 못하니까 야근에 회식도 못 빠지고. 공무원 사회에서 직급은 유일하게 노력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신분이야. 승진 못하면 고시고 뭐고 다 개털이라고.” 


 “아직도 왜들 그러고 살아. 승진한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라며. 철밥통들이 대충들 좀 살지. 재테크들은 잘 하나? 공무원 월급으로 이래저래 쉽지 않잖아.”


 공무원들 사이에서 돈 이야기는 대부분의 경우 화제에 오르지 못했다. 공직자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 세종의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인 집이 많아 경제적 수준이 엇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살림살이 수준을 뻔히 아는 비슷한 형편끼리 돈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었다.

  

 “세종에 있으면 부족한 것도 못 느껴. 돈 쓸 데도 별로 없고. 민정이는 연이 학교 가기 전에 맨날 서울로 이사 가자고는 하는데, 모르겠다. 그나저나 너는 집 샀냐?”


 “우리 엄마가 압구정에서 유명한 복부인이잖아. 벌써 몇 년 전에 내 명의로 옥수동에 갭투자하셨더라. 그 아파트가 지금 딱 3배 올랐어.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엄마 너무 속물 같다고, 제발 정직하게 좀 살자고 모진 말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저 죄송하고 고맙고 그렇지, 뭐.”


 “부럽다. 집도 있는데 결혼은 왜 안 해?” 


 “몰라. 그냥 엄마 집에서 사는 지금이 편하기도 하고 괜찮은 짝도 없다. 자만추는 불가능이고 결정사는 싫어.”


 “금수저 새끼. 네 맘대로 알아서 살아라, 인마.”


 진오와 승환이 술잔을 부딪히며 웃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 벌써 9시, 내일도 평일이니 이만 자리를 정리하자며 둘은 일어섰다. 계산은 승환이 했다. 진오는 네가 계산할 줄 알았으면 소고기라도 먹을 걸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 문득 찌개 집 카운터 뒤에 혼자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책가방을 방석 삼아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반주를 걸친 아저씨들의 욕지거리와 음담패설로 시끄러운 가게에서도 아이는 무심하게 동공만 바빴다. 


 “애가 저렇게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도 되나. 요즘 부모들 진짜 문제 많다.” 


 계산을 마치고 카드를 돌려받으며 승환이 힐난했다.


 “우리 엄마가 어릴 때 빵집 했었다고 내가 이야기했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광화문 광장 방면으로 걸어 나오며 진오가 승환에게 물었다.


 “첨 듣는 이야기인데. 빵집 아들이었어? 네가 밀가루 먹고 이렇게 키가 컸구나.” 


 “방학 때는 진짜 하루 종일 빵집에 있었거든. 할머니랑 집에 있는 것보단 그게 나았으니까. 조그만 평상이 있었는데 거기 앉아서 방학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심부름도 하고, 졸리면 낮잠도 자고. 그래도 가게 끝날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매일 티브이를 봤어.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스포츠도 보고. 빵이 쉴까 봐 엄마는 아침 일찍 시작해서 12시가 다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았거든. 아까 식당에서 스마트폰 하던 애를 보니까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어릴 때는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고 있던 평상의 내가 불쌍했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먹고 사느라 바빠서 하루 종일 티브이 밖에 보여 줄 수 없던 엄마가 더 불쌍하네.” 


 진오의 말이 끝나자 승환은 멋쩍은 얼굴을 했다. 진오는 금수저는 원래 세상을 잘 모른다며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그들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지나 경복궁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우리 고시 공부할 때 슬럼프에 빠지면 동기부여하겠다고 여기 와서 청사 구경했잖아. 노무현만 아니었어도 너도 여기서 일했을 텐데.” 


 승환이 광화문 광장 왼편으로 높게 솟은 정부서울청사를 가리켰다. 


 “정부종합청사가 원래 나상진이라는 사람이 설계한 건물이거든. 총무처는 기껏 설계공모까지 해서 뽑아 놓고는, 우리나라 건축가가 이렇게 높은 건물을 설계해 본 적이 없으니 안전이 우려된다고 시공 중간에 미국 설계 회사랑 다시 일을 해. 그 회사가 청사 앞에 있는 미국 대사관도 설계해서 여길 잘 알았거든. 당연히 국내 건축계는 들고일어났지. 왜 우리를 못 믿냐고. 그런데 사실은 두려운 마음도 컸을 거야. 노가다 십장이 적당히 돌려 막는 느슨한 설계만 해봤지, 공장에서 나오는 철골 재료를 사용하는 치밀한 설계는 처음이었을 테니까. 오히려 나중엔 그 사람들도 총무처에 약간은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갑자기 뭔 개소리야.”


 “자발적으로는 절대 서울을 떠나지 않았겠지만 세종으로 쫓겨나고 보니 서울은 늘 아름답더라고. 나의 근심은 세종에 있고 서울엔 추억만 있으니 그렇겠지. 나의 고향을 늘 아름답게 기억하도록 도와준 노무현에게 약간은 고마운 마음도 있다는, 그런 말이야.” 


 진오의 장황한 이야기가 끝나자 어느새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3호선을 타러 내려가던 승환이 진오에게 물었다.    


 “뭐 타고 내려가? KTX? 고속버스?”


 “KTX. 어차피 세금으로 타는 건데 더 비싼 거 타야지. 크크.” 


 진오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승환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짙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진오는 오송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들 자다 깬 눈에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버스정류장 방면으로 직진했다. 오송역은 분명 청주에 있는데도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세종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송역에서 세종 시내까지는 간선급행버스로 20분 남짓. 차창 밖은 어두운 논밭 사이에 이따금씩 밝혀진 가로등 불빛이 전부였다. 서울의 찬란한 네온사인과 비교돼서 그런지 오늘따라 고요한 풍경은 더 서글펐다. 


 세종청사 정류장에 곧 도착한다는 버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탈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우르르 같은 곳에서 내렸다. 진오는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회색 메스의 청사 유리창 사이사이로 사무실 불빛이 새어 나왔다. 자정이 가까운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당연하게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진오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정 과장이 진오와 도 사무관을 급히 회의실로 불렀다. 김 국장의 방을 나온 직후였다. 모두 도착하자 그는 회의실 문을 잠그고는, 상기된 얼굴로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갈세라 목소리를 낮췄다.  


 “국장님이 보조금 통합관리단체 신설 관련해서 업무 분장을 바꾸라고 지시하셨어요. 이 사무관 업무를 도 사무관님이 맡으시라고. 혹시 여기 두 분 중에 국장님한테 업무 분장 변경을 건의하신 분 계세요?” 


 진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라고 했고, 도 사무관 역시 그럴 리가 있냐고 대답했다. 


 “두 분 다 동의하세요? 국장님은 아무래도 업무가 국회랑 많이 엮이니까 젊은 고시 사무관 보다 노련한 승진 사무관이 일을 맡아서 의원실하고 좀 더 긴밀한 콘택트를 원하는 것 같은데.” 


 정 과장은 ‘긴밀한 콘택트’에 유난히 힘을 주어 말했다.


 “국장님이 시키시면 해야죠.” 


 도 사무관은 고민 없는 목소리로 시원하게 대답했다. 진오는 의원실과 ‘긴밀하게 콘택트’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김 국장의 질책인가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당장은 골치 아픈 업무를 떼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국장님 지시도 있고 두 분도 동의하셨으니 업무 분장은 오늘부로 변경합시다. 그런데 도 사무관님 하나만 물어볼게요.” 


 정 과장은 도 사무관의 눈을 명징하게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눈에선 어떤 두려움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과원들 업무분장은 과장 권한이죠? 인사과 출신이니까 사무 분장, 위임 전결 규정 빠삭하시잖아요.” 


 정 과장의 질문에 도 사무관은, 업무 분장은 당연히 과장의 권한이라고 답했다. 규정까지 갈 것도 없이 상식적으로 과원을 통솔하는 건 국장이 아닌 과장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요. 도 사무관님은 먼저 나가 보세요. 이 사무관은 잠깐만 남아.”


 도 사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했다. 회의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정 과장은 한층 더 목소리를 낮췄다.


 “도 사무관이 국장한테 가서 딜한 거야. 지저분한 일이니까 자기한테 맡겨달라고. 지금도 안 늦었어. 네가 업무분장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 다시 엎을 수 있어. 어떻게 할래?” 


 진오는 그날 밤의 사건이 떠올랐다.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도 사무관이 김 국장을 찔러 얻어 낸 일이 분명한 상황에서, 어차피 자신의 뜻은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국장님 지시인데 제가 차마 못 하겠다고 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과장님 뜻은 혹시 어떠신지..” 


 진오가 말을 흐리며 공을 정 과장에게 넘겼다. 


 “아무리 국장이라도 과장 권한인 업무분장까지 침범하는 건 무례하지. 다만 둘 다 동의하는 상황에서 내가 뭘 어쩌겠어. 그럼 이대로 가자.”


 정 과장이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진오는 마지막으로 의자를 정리하고 회의실 불을 껐다. 진오가 자리로 돌아왔을 땐, 도 사무관이 벌써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 비서관하고는 통화했어요.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났던데?”


 “우리가 뭉갠다고 자꾸 성질을 내는 게 완전 양아치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재촉해도 법안 내용 잘 보셔야 해요. 단체 하나 만들어서 낙하산 아무나 꽂고, 나중에 책임은 우리가 지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관련 단체들도 옥상옥 구조를 만드는 데 반대하는 기류고요.” 


 “판단은 정치인들이 하는 거고 공무원은 실행하는 사람이잖아요. 손발이 주제넘게 머리의 역할까지 고민해 봐야 좋은 수가 있나요. 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안 할 용기도 없잖아요. 버텨봐야 윗분들한테 불필요한 부담만 주지.”  


 도 사무관에게 넘어간 법안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법안 소위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입법 조사관도, 야당도, 언론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진오의 기우일 뿐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도 사무관이 오랜 대사관 파견에도 불구하고 일솜씨가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물론 미문의 많은 경우가 그렇듯 소문의 출처는 본인 스스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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