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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도 세상에 그런 건 없더라

#23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진 할머니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진오였다. 할머니의 의식은 또렷했지만 거동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진오는 침착하게 119를 먼저 부르고는 태평과 미자에게 차례로 연락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내내 진오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검사 결과는 고관절 골절이었다. 노인들은 장기간 누워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며 의사는 하루빨리 유합 수술을 하자고 했다. 부부는 수술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될 때까지 교대로 간병했다. 수술은 그런대로 잘 끝났지만 전신 마취의 후유증을 할머니는 좀처럼 극복하지 못했다. 폐렴이었다.


 중환자실 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입주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목동의 아파트로 할머니를 모시는 문제를 두고 기싸움을 하던 부부는, 이제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문제를 가지고 싸웠다. 미자는 2차 병원에선 한계가 있으니 대학병원을 알아보자는 쪽이었고, 태평은 대학병원에 간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며 기다리자는 입장이었다. 논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빠르게 상황이 악화되었고, 병원에선 딱히 좋아질 기미가 없으니 그나마 환자가 의식이 남아 있을 때 정리할 시간을 드리라고 했다.


 “혹시 보고 싶은 사람 있으세요? 있으면 불러 드릴게.”


 태평의 질문에,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힘겹게 호흡하던 할머니는 세 사람을 불러달라 했다. 의정부에 사는 동생, 그리고 태평의 이복 누나 둘. 세 사람이 차례로 왔다가자 태평은 진현과 진원, 진오를 모두 소집했다. 이미 그땐 의식이 혼미하여 할머니는 손주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의사는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자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태평은 이틀 밤을 새우며 중환자실 앞을 지켰지만 아침 이른 시간, 집에 잠깐 옷을 갈아입으러 온 사이 일이 터졌다. 위독하다는 중환자실의 전화를 받은 태평은 재빨리 병원으로 돌아갔지만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진 못했다. 유언도, 사랑한단 속삭임도 없는 죽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옮길 봉고차가 도착했다. 태평은 병원 일을 처리하느라, 미자는 집에서 짐을 싸느라 경황이 없었다. 유족 중 한 명은 장례식장까지 봉고차로 동행해야 한다는 말에, 태평은 진오를 급히 불렀다. 진오가 어디에 타냐고 묻자 운전기사는 뒷좌석을 가리켰다. 봉고차는 시신 운반용으로 개조되어 보호자 한두 사람이 앉을 자리를 제외하고는 뒷좌석이 탈거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시신을 넣은 검은색 운반용 가방과 함께 진오는 봉고차 뒷좌석에 탔다. 코너를 돌 때나 급정거를 하여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진오는 발을 뻗어 할머니의 시신이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로 구급차를 탄 지 꼭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장례식장 앞은 썰렁했다. 태평의 회사와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보낸 2개의 근조화환이 전부였다. 미자는 조문객들이 오기 전에 급히 꽃배달 집에 5개의 근조화환을 주문했다. 리본에 쓸 이름을 쥐어 짜내는 것도 고역이었다. 태평과 자신의 출신학교 동문회, K건설 등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따로 상조회사를 쓰지 않은 탓에 음식을 차리고 치우는 모든 일은 가족의 몫이었다. 조문객들은 상복을 입은 채로 왔다 갔다 하는 삼 남매를 보고 언제 이렇게 컸냐며 놀랐고, 셋은 어색하게 웃기 바빴다. 시어머니 상이란 사실이 무색하게도 조문객은 미자의 손님이 많았다. 사람들은 호상으로 받아들였고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장례 이튿날, 염습이 시작되었다. 염을 하는 도중 유족 중 한 명이 시신의 머리를 잡아야 한다는 장의사의 말에 태평은 또 진오를 불렀다. 진오는 장의사가 망자의 복을 비는 동안 하얀 천장갑을 끼고는 베이지색 수의를 입은 할머니의 관자놀이 주변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잡았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장갑을 껴서 그런지 이렇다 할 온도가 느껴지진 않았다. 진오는 염을 하는 내내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화장을 해서인지 생전보다 오히려 고와 보였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미자가 왈칵 눈물을 보였다. 그러자 태평의 이복누나들도 덩달아 울음을 보탰다. 몇 분 정도 꺼이 꺼이- 눈물이 계속되었지만 염이 끝나자 세 사람의 눈물은 여배우의 촬영이 끝난 것처럼 딱 멈췄다.


 “무섭지 않았어?”


 일을 마치고 나온 진오에게 미자가 물었다. 진오는 할머닌데 뭐가 무섭냐며 살짝 웃었다. 미자는 우리 아들 다 컸다며 진오의 엉덩이를 몇 번 팡팡 두들겼고 진오는 질색하며 자리를 피했다.


 장례가 모두 끝나고 부부는 할머니의 방에서 고인의 유품을 정리했다. 장롱에선 생전 부부에게 보여주었던 천만 원짜리 통장과 함께 이천만 원이 든 다른 통장이 발견되었다. 태평은 노잣돈으로 쓰려고 숨겨두셨냐며 혀를 찼다.


 “그래도 법적으론 자식들인데 남은 재산 중 얼마라도 당신 이복누나들한테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니야?”


 “생전엔 생신 때도 연락 한 번 없던 사람들인데 무슨 재산을 나눠 줘. 게다가 엄마랑은 피도 한 방울 안 섞였는데.”


 남편의 대답에 미자는 어머님이 이복 누나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생전 연락도 한 번 제대로 안 했겠냐며 되묻고 싶었지만, 이번엔 입을 다물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문제로 더이상은 남편과 싸우고 싶지 않았고, 싸울 이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화곡동 집도 제값에 잘 팔았다.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새 천년이 시작된 이후 계속 활황이었다. 이제 그 돈으로 아파트 잔금만 치르면 입주였다. 진오는 중학교 3학년.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가기 전에 목동으로 가겠다는 미자 자신의 목표를 이룬 셈이었다.






 주변이 전부 5층짜리 다세대 주택인 덕분에 ‘목동 K스위트팰리스’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막힘이 없었다. 미자가 분양받은 최상층 거실에선 평상시엔 여의도, 맑은 날엔 남산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면 옆집에서 거실이 훤히 보일세라 커튼을 치기 바빴던 날들은 이제 안녕이었다. 지하 주차장도 넓었다. 차단기가 달려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고, 비나 눈이 와도 한 방울도 맞지 않고 차를 탈 수 있었다. 화곡동 골목에서 매일 주차전쟁을 치르던 태평도 이제 해방이었다. 목동 학원까지 30분을 넘게 학원 셔틀을 타고 오가던 진원과 진오도 이사 후엔 마을버스 10분이면 학원가에 닿았고, 몇 번이나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신촌을 오가던 진현도 버스 한 번이면 학교 앞까지 안착했다.


 주변에선 단지가 고급스럽지 않아 이름만 바뀌었지 기존의 ‘K아파트’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도 있었고, 변두리 목동 아파트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미자는 가볍게 무시했다. ‘목동 K스위트팰리스’는 그녀에게 자부심의 원천이자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였다. 세상에 더 좋은 아파트는 있을지언정 미자에겐 지금 여기가 최선이자 최고의 아파트였다.


 진원은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수업 시간에 필기도 열심히 했지만, 시험을 특출나게 잘 보거나 경쟁을 즐기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래도 미자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대학의 간판만 걸면 된다고 생각했다. 둘째에 대한 기대는 딱 그만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진원이 할 말이 있다며 엄마를 찾았다.


 “나, 지금부터 미대 입시 준비하면 안 될까.”


 미자는 하라는 공부나 열심히 하지 무슨 놈의 미대냐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진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일이었다.


 “내가 알아봤는데 학원비도 얼마 안 들어. 지금 다니는 수능 대비 학원들 보다 오히려 미대 입시 학원이 더 싸더라고. 학교 미술 선생님도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재능 있으니까 한 번 준비해 보라고 하셨어. 어차피 나는 공부로 좋은 대학 못 가는 거 엄마도 잘 알잖아.”


 둘째의 손재주가 유난히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미술로 대학을 가고 나아가 업으로 삼는 일은 재능이나 선호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미자는 생각했다. 태평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는 중간만 해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지만 예체능은 1등이 아니면 밥벌이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된다고 반대했다. 돈도 그랬다. 부부는 당장의 학원비보다 미대의 비싼 등록금을 앞서 걱정했다. 그들의 생각에 미대는, 부모의 재력이 평생을 책임질 수 있는 부잣집 자식들이나 선택할 수 있는 진로였다. 그 와중에 오직 진현만이 동생에게 힘을 실어줬다. 미대를 간다고 꼭 순수 예술만 전공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디자인같이 생각보다 다양한 진로가 있다고. 오히려 공부를 어정쩡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자매가 합심해도 부모의 생각을 바꾸는덴 역부족이었다.


 “진원아, 대학은 한 번 가면 바꿀 수가 없으니까 일단은 공부로 대학을 가서, 취미로 미술을 해 보는 게 어떠니. 취미로 하다가 정말 잘 하면 그땐 직업을 그쪽으로 가질 수도 있잖아.”


 진원은 의외로 순순했다. 하지 않겠다는 고집은 얼마든지 부릴 줄 알았지만, 부모의 세계관을 뚫고 자신의 미래를 관철 시킬 배짱은 없었다. 진원은 그래도 다른 형제들보다 나은 편이었다. 애초에 진현과 진오는 부모가 설정한 공부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했으니까. 부모가 만든 틀의 바깥을 꿈꿨다는 측면에서 진원은 삼 남매 중 가장 멀리까지 가본 셈이었다.


 그날, 미자의 꿈엔 오랜만에 아버지가 나왔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건강한 중년이었고, 미자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뙤약볕에도 하루 종일 논밭일을 하신 아버지는 몸의 열기가 다 식지도 않은 채로 미자에게 말했다.


 “미자야, 아버지가 못나서 딸내미까지 대학에 보내 줄 돈은 없구나. 내 땅 같으면 논밭을 팔아서 등록금이라도 대주련만.”


 19살의 미자는 ‘알겠다’고 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는 큰 딸이 우는 게 가여운지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일단은 고등학교부터 졸업하고 취직을 하든 장사를 하든 돈을 좀 번 다음에, 정말로 미련이 남으면 시집가기 전에 대학을 갈 수도 있지 않겠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도 세상에 그런 건 없더라.”


 형님이 부르신다며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끝으로 미자는 꿈에서 깼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만큼 살아보니, 세상 일엔 다 때가 있더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꿈에서도 19살의 미자가 할 줄 아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우는 일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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