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향수병을 이기는 방법
독일에 사는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독일 생활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독일 좋아요, 그렇지만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정도로 대답을 마무리한다. 독일은 나에게 좋은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 빠르게 서두르기보다는 다소 답답하더라도 느긋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생활이라는 점에서 힘든 부분도 참 많다.
‘타향살이’라는 말만큼 내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단어가 있을까? 향수병은 내게 자주 찾아오는 정서적 도전 중 하나이자, 오래된 내 친구다. 그리움은 곧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곧 괴로움이 된다. 이런 순간, 나는 글을 쓴다. 처음엔 한국과 독일의 시차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독일이 어두워질 때쯤이면 한국은 모두가 잠든 시간이기에, 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게 서러웠던 어느 날, 팔이 저려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쓰고 또 썼다. 나는 그렇게 아무도 들어주지 못한 나의 내면과 깊게 소통했고, 그것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 경험 이후에 마음이 힘들 때마다 작은 노트를 찾아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곤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기에 편안하게 아무렇게나 힘든 나의 마음을 휘갈겨 썼다.
2021년, 나는 개인 블로그에 ‘나는 외로울 때 글을 쓰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 이 글과 동일한 제목이다.) 한참 코로나 시기였으므로, 나는 지금보다 더욱 외로웠다. 그리고 도대체 이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던 것 같다. 그곳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외로움은 저 깊은 곳에 있는 어떤 결핍을 깨닫고,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막막함에서 오는 당혹감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감이나 슬픔과는 다르다.” 여전히 비슷하게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꽤나 행복한 편에 속한다. 우울하다거나 슬프지 않다. 그러나, 확실히 매우 외롭다.
상담 때 선생님은 나에게 종종 1부터 10까지의 숫자 중에 골라보라고 말한다. 내가 ‘꽤,’ ‘많이,’ ‘매우’라고 말할 때마다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나에게 지금 얼마나 외롭냐고 선생님이 물어본다면 9에서 10 정도라고 말할 것 같다. 더 이상 외롭기 힘들 정도로 외롭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슬프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 2에서 3 정도로 그다지 슬프지 않다. 만약 어느 정도로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5에서 7 정도다. 꽤 행복한 편이다. 물론, 지금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글을 쓰면 참 편안하다. 때로는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재밌었거나 특별했던 에피소드가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 시간에 함께했던 친구나 가족들과 다시 연결된 듯하다.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인데,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마치 그 모든 시간들이 내 곁에 있는 것 같다. 정말이지 외롭다는 말은 그립다는 말과 몹시 닮았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오돌뼈 사건’이 있다. 2020년 설날이었다. 근처 한인마트에서 오돌뼈볶음이 냉장 완제품으로 팔길래 너무 반가워서, 곱창에 떡국거리, 잡채까지 바리바리 쇼핑을 마치고 집에 왔었다. 차가워진 청하를 신나게 흔들어 온도 체크를 마친 뒤, 오돌뼈를 프라이팬에 볶으려고 집어 들었다. 그때 포장지에 적힌 이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친구가 생각나는 이 밤, 그리움 하나 오돌뼈 하나>
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온 켄은 영문도 모른 채 온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딘가를 크게 다쳤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놀라 내 몸 여기저기를 살피는 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겠기에 ‘다친 게 아니다’를 힘겹게 천천히 내뱉고 또 울었다. 켄은 이번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냐며 나를 다급하게 껴안고 묻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너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힘겹게 내뱉었다.
나는 그날 밤 오돌뼈를 차마 먹지 못했다. 궁둥이를 흔들며 신나게 사온 모든 음식을 입에도 대보지 못하고, 그렇게 서럽게 울다 잠이 들었다.
이 사건은 내게도 충격이었다. 제법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상 안에 거대한 결핍이 모습을 드러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절에 외딴곳에서 홀로 있다는 생각이, 또 내가 필요하다는 친구의 서운함도 애써 모른 채 했던 것이, 내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조심스러웠던 말이 한꺼번에 떠올라 나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외로웠고 죄책감에 괴로웠다. 그러나 내가 한 선택이니 마땅히 참아야지,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척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괜찮은 척할 필요는 없었다.
독일에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여러 글을 읽었었다. 독일 생활이 어떤지, 할만한지 궁금했다. 다들 한결같이 ‘외롭다’고 써 놓았더라. 그때 당시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이기에 막연하게 서울에 첫 자취방을 떠올렸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여러 외로웠던 날들을 곱씹어 보면, 나는 아무래도 ‘외로움’에 강한 편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젠장, 약골 그 자체였다. 나는 ‘외로움’에 매우 취약한 타입이며 심지어 사랑을 강하게 갈구하고, 미움을 받을까 봐 벌벌 떠는 쫄보였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혹여나 내 진짜 모습에 실망할까 봐 애써 더 좋은 모습을 연기한다. 내 곁에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주기를 고대하며 항상 밝게 웃는다. 그것이 부담이 될 정도로 넘치더라도 나는 멈추는 법도 모르고 끊임없이 관심을 필요로 한다. 고립되어 외로움에 죽어갈지도 모른다고, 그런 공포가 내게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독일에 오고 나서야 ‘외로움에 강한 편’이라는 내 말이 허풍 그 자체였으며, ‘외로움’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하룻강아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나에게 외로움 극약 처방제처럼 효과가 좋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쓰고, 누가 읽어준다면 더 감사해하며 글을 쓴다. 답글이 달리거나 반응이 있다면 기쁘고 행복하다. 숲 속에서 혼자 큰 소리 내 울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은 후련해지지만, 누군가 두 팔로 안아준다면 더없이 큰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