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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한솔 Sep 13. 2023

<창경궁> 힐링 탐방기 2편

관천대~숭문당~함인정~경춘전~환경전~통명전~양화당

https://brunch.co.kr/@greatpine7/128

 1편에서는 창경궁의 외전이 중심이었다면, 2편에서는 내전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탐방기를 나눠보겠다.







6. 관천대, 궐내각사 터, 종묘 연결 공간

정전 명정전과 편전 문정전을 보고, 가까이 있는 숭문당과 내전 공간들을 보기 앞서 문정문을 통해 남쪽 숲길로 향했다. 숲이 주는 힐링과 맑은 공기, 아름다운 경관은 말해 뭐 하나. 스트레스가 잊히는 공간이다. 숲 가운데에는 보물 관천대, 동쪽 수인문 및 버들나무와 궐내각사 터가 있으며, 가장 남쪽 경계 지역은 종묘와 연결될 공간이 나온다.


관천대(觀天臺)

천문을 관측하던 소간의를 설치했던 시설로 보인다. <서운관지>에 “관천대는 천문 기상을 관측할 때 소간의를 그 위에 설치하므로 소간의대라고도 한다” 는 기록이 있어 간의를 설치한 시설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시간을 측정하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를 설치했던 시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제 때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 것을 창경궁 정비 사업 때 제자리로 옮겼다. 1985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숲과 보물의 조화라니! 보기 전까지는 덩그러니 동떨어져 있는 보물인가 했는데, 숲을 배경 삼은 단연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조금 단조로울 수 있는 숲길의 볼거리이기도 했고.


궐내각사 터

관천대 동쪽과 남쪽의 빈터에는 왕실 관련 관청. 즉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도총부를 비롯한 권내각사가 있던 곳이다. 내사복시는 왕실의 수레와 말을 관리하던 내사복시는  마구간과 사료 창고 등 여러 건물들로 구성된 대규모 복합 시설이었다고. 이 일대가 바로 일제에 의해 헐리고 동물원으로 운영되었단다. 지금의 모습은 1980년대에 복원사업으로 꾸며진 것.


 1980년 대면 조성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40년이나 된 것이다. 비록 궐내각사 건축물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대신 궁궐과 조화로운 힐링의 숲 공간으로 탈바꿈돼 좋았다.


닫혀있는, 종묘 연결 공간

원래 창덕궁과 그 동궐로 불린 창경궁, 그리고 종묘는 연결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일제가 1932년 창경궁-창덕궁종묘를 갈라놓기 위해 지금의 율곡로인 종묘 관통 도로를 개설하면서 길이 끊겼다. 그러다 10년이 넘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 끝에 율곡로를 지하화 됐고 그 위로 도보로 통할 수 있게 됐다. 90년 만에 연결된 공간으로 거듭났지만, 23년부터 25년까지는 나무 및 숲 가꾸는 등 궁궐숲 복원을 위해 통제 돼있다. 2년 뒤를 기약하겠다.


7. 문당과 빈양문

숲길 힐링을 마치고 다시 돌아올 때는 문정문이 아닌 창덕궁 인접의 길로 내려왔다.  우측에 18세기 초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목이 이목을 끌더라. 정면의 아름다운 함인정은 잠시 후 보기로 하고, 아까 안 봤던 숭문당으로 향했다.


숭문당(崇文堂)

글자 그대로 문(文)을 숭상한다는 의미. 국왕의 경연(經筵)을 벌이던 곳으로, 특히 영조는 성균관 유생이나 종친들을 접견하고, 유생들을 시험했다.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며, 순조 때(1830년) 화재로 불탄 것을 그 해 가을에 재건하였다. 숭문당 현판과 내부에 걸려있는 일감재자(日監在玆)라는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일감재자는『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유생들이 드나들던 공간. 건물외관만 봤는데도 저기 들어가면 왠지 학문을 갈고닦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더라. 양 쪽 계단이 있는 마루에서 한시를 읽는 유생들의 모습도 상상이 되었다. 


빈양문(賓陽門)

국왕의 공적 공간인 명정전과 사적 공간인 내전을 연결하는 문이다. 빈양(賓陽)은 ‘밝음을 공경히 맞이한다’는 뜻으로, 밝음인 양은 국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문을 지나면 왕의 사적 생활공간으로 통하기 때문에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지금의 빈양문은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던 것을 1984년 발굴을 통해 1986년 중건 공사 때 재건한 것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 비 오는 더 운치 있을 듯 한 여기 공간을 걸어 나가 문을 통과하면, 꽃-나무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전각 및 담장 풍경을 볼 수가 있다.



8. 함인정(涵仁亭)

함인(涵仁)은 ‘인을 간직한다’라는 뜻. 1633년(인조 11)에 건립되었고, 1830년(순조 30)에 불타 없어졌다가 1834년(순조 34년)에 중건되었다.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하였으며, 영조가 문·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건물 사방이 벽체 없이 시원하게 개방된 모습인데, 19세기 궁궐기록화인 <동궐도> 에는 지금과 달리 삼면이 막혀 있다. 내부의 사면에는 사계절을 노래한 중국 진나라 화가 고개지의 사시(四時)라는 시가 걸려있어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에 운치를 더해준다.

"Simple is best"라는 영어 문구가 떠올랐다. 함인정의 외관은 여느 정자와 크게 다른, 특별한 모형은 아니었지만 특별했다. 동-서-남-북 어느 방면에서 함인정을 보아도 조화로운 미가 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소나무가 주변에 있어 더욱 돋보였다.

밖에서 함인정을 볼 때와 같이, 함인정에서 사방 어디를 보아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풍경을 볼 있다. 특히 창덕궁 방면, 계단 형식의 화단이라고 할 수 있는 담장에 접해 있는 화계와 소나무, 담장 너머로 빼꼼히 보이는 창덕궁 누각의 지붕까지의 전경은 일품이다! 창경궁 하면 떠오르는 누각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았다.



9. 환경전과 경춘전

우측이 환경전, 좌측이 경춘전이다.

함인정 너머 왼편에는 궁궐의 생활공간 두 거처가 인접해 있다. 내부 문은 닫혀 있어 둘레를 돌며 외관과 주변 경관을 감상했다.


환경전(歡慶殿)

환경(歡慶)은 '기쁘고 경사스럽다'라는 뜻으로 창경궁의 내전(內殿) 건물 중 하나로 세자나 국왕이 생활하던 곳이며, 중종과 소현세자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성종 때(1484년)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1616년(광해군 8)에 중건되었다가, 1830년(순조 30)에 화재를 당한 후 1834년(순조 34)에 다시 중건되었다.

왕의 침전 공간으로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느낌을 받아 생활공간으로 적절해 보였다. 또 한 명의 비극적 인물 소현세자가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경춘전(景春殿)

경춘(景春)은 '햇볕 따뜻한 봄'이라는 뜻이다. 1484년(성종 15) 창건 당시에 건립된 침전 건물로 주로 왕대비, 왕비 또는 세자빈 등이 거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에 중건되었다. 편액의 글씨는 순조의 어필이다. 이곳에서는 22대 정조와 24대 헌종이 태어났고,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즉, 인수대비 한 씨와 숙종비 인현왕후 민 씨, 정조의 생모 헌경왕후, 즉 혜경궁 홍 씨 등이 승하하였다.

왕비들이 거처했던 경춘전. 정조와 헌종이 태어났으며 혜경궁 홍 씨가 승하한 이곳은, 위엄 있는 정면보다 아름다운 화계(꽃 계단)가 있는 뒤뜰이 매력적인 곳이다. 영춘교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봄꽃이 피는 봄에 꼭 와야 하는 곳이다.



10. 통명전과 양화당

좌측이 통명전 우측이 양화당이다


통명전(通明殿)

‘통달하여 밝다’라는 뜻이며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통명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월대 위에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을 깔았다. 이곳에서는 희빈 장 씨의 인현왕후 저주사건이 있었다. 1694년 (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희빈으로 강등된 장 씨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처소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파묻었다. 희빈 장 씨는 이로 인하여 사약을 받게 되고, 희빈 장 씨의 시신은 정문인 홍화문 남쪽에 있는 선인문을 통해 나가게 된다. 통명전 뒤뜰에는 샘이 있는데, 1757년(영조 33)에 ‘샘물이 맵도록 차다’고 하여 열천(冽泉)이라 하였다. 통명전 서쪽의 연지는 샘이 마당으로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1485년(성종 16) 만들었다.

위 설명과 같이 내전의 으뜸가는 곳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먼저 월대가 조성돼 있고, 양 끝에는 화재 예방을 위해 정전 등 위신 높은 전각에 존재하는 드므도 있었다. 통명전의 높은 위상이 직관적으로 보였다. 용마루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연지와 화계

무엇보다도 뒤뜰에는, 창경궁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지가 조성돼 있다. 지금도 리버뷰의 아파트는 워너비 집이지 않은가? 뒤뜰에 연못이라니! 여기서는 이것이 무엇이고 저것이 무엇이구나 하는, 즉 관찰보다는, 오직 감상에 집중했다. 그 옛날 왕비가 이곳을 거니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디 연못만 있는가. 화계가 여기 뒤뜰에있다! 정말 아름답다. 봄꽃이 피는 시기에 환상적 경관을 보일 것이지만, 나는 녹음 가득한 지금도 참 좋더라.  힐링 포인트 지점인 이곳에서 , 무상무념하며 잠시 머물렀다.


양화당(養和堂)

‘조화로움을 기른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렀다. 이후 인조는 청나라 사신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 씨가 간병을 받다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 화재로 불탄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

대비의 침전이었지만 병자호란 후 인조가 머무르기도 한 양화당. 상대적으로 다른 전각에 비해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건물이긴 했다. 




 순서를 바꿔 소개했지만, 이날 동선상 양화당을 먼저 들르통명전 뒤뜰을 보았다. 다시 돌아 나오는 과정에서 영춘헌 방향이 아닌, 발걸음이 연지의 가운데 길로 향했다. 뭔가에 홀린 듯 정면의 계단을 올랐다. 그다음 이야기는 3편에서 계속된다.


https://brunch.co.kr/@greatpine7/134





위 지점에서 벌어졌던 여러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를 보다 더 알고 싶다면, 도서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창경궁>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필자의 도서 <한양도성으로 떠나는 힐링여행>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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