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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석 Oct 24. 2021

서울이 예전같지 않을 때

후천적으로 발현한 면역결핍증

나는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이사를 자주 다닌 탓에 초중고 모두 다른 지역에서 나왔고, 덕분에 친구들도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나의 생활반경은 서울특별시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부모님 일 때문에 경기도로 이사를 했고, 1년 반 정도는 통학을 했다. 그러나 지하철을 타고 하루에 3~4시간 왕복한다는 건 쌩쌩한 대학 새내기 시절에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대학에 입학하면, 특히 1, 2학년 때는 학점관리나 취업 준비에 바로 돌입하는 대신 대학 생활을 누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캠퍼스에 소위 '낭만'이란 게 남아있던 마지막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막차 시간을 계산하여 서둘러 일어나 집으로 향하기엔 하고 싶은 것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넘쳐흐른 나머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학교 앞으로 기어나오게 되면서, 나의 서울살이는 계속되었다.


서울,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도시. 고향이자 삶의 터전. 해외생활을 하면서는 예상 외로 향수병에 젖어들지 않던 나 자신을 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그건 서울이란 도시에 한정된다기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나는 두말할 필요 없이 '서울사람'이지만, 국경 밖에서는 '한국인'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정체성이 나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하게 된다. 답답한 한국사회, 반도국가의 탈을 쓴 섬나라를 벗어나고자 했던 나의 의식과 무의식은 힘을 합쳐 한국을 내 마음에서 밀어내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그 반작용이었을까, 내 나라에 돌아온 이후 한국사회는 물론 서울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기 때부터 나와 살을 부대끼던 예전 그 도시가 아니었다. 표정이 없는 얼굴은 삭막함을 내뿜을 뿐, 더 이상 나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다. 주변을 채우던 사람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일까. 해외에 머무는 몇 해 동안 내가 그랬듯, 나의 주변 사람들 역시 각자의 삶에 몰두했다. 대부분 가족을 꾸리고 육아에 바빴기에 예전처럼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나에게만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빛의 속도를 돌파한 우주여행을 다녀오기라도 한 것마냥, 나의 시간만 더디게 흘러 오직 나만 그대로인 채 변해버린 세상에 홀로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어쩌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더 빠르고 각박해져 버린 걸까. 한국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나 역시 어릴 적부터 남들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살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외국에서는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특별히 그러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남들과 비교하는 대신 나의 삶을 살아야지 다짐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 내 나라로 돌아오기 무섭게 다시 나를 타자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한국 밖에서 내가 자유로웠던 것도, 한국 안에서 다른 이들을 의식하며 나 자신을 구속하는 것도 모두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걸 보면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실재하긴 하나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고통의 강도가 예전보다 심해졌다는 점이었다. 


서울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비틀비틀, 술기운을 빌리지 않고도 흔들리며 걸었다. 작년에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오면서 그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제주의 속도와 삶의 방식, 그리고 바다가 주는 안온함 덕분이었다. 김포공항에 내려 집으로 오는 길, 모든 것이 왠지 모르게 과했다. 지나치게 빠르고 복잡한 느낌에 현기증이 났다. 며칠 있지도 않았는데 서울에서의 삶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없지 않았다. 대학 때 전북 고창에 있는 농악전수관을 내 집처럼 드나들곤 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시골에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를 머무르고 올 때면 강남고속터미널에 내리기 전부터 눈이 피곤했다. 서울에는 차가 너무 많고, 사람이 너무 많고, 그들 모두는 과도하게 빨랐다. 그러나 증상은 하루이틀만 지나면 이내 가라앉았다. 어쩌면 그 역시 어떤 시그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의 삶이 나에게 맞는가, 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서울은 여전히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다.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도시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이 도시에 대한, 그리고 이 도시를 이루는 여러 사회적 구성요소에 대한 면역세포의 결핍을 감지한다. 서울은 나에게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1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한 건 나일까 아니면 이 도시일까. 내가 변했든, 서울이 달라졌든, 다른 이들과 한국사회가 두루 변한 탓이든,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둘러싼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테다. 


내 마음 아랑곳하지 않은 채, 너는 속절없이 아름답구나


주거지를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떤 곳이 좋을까, 조건들을 하나씩 추려보았다. 이왕이면 바다가 가깝다면 좋겠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지만 (서울 토박이니 당연하지) 여행도 많이 다니고 바다를 낀 도시에서 살아보고 하며 바다를 향한 나의 사랑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서해보다는 동해나 남해가 나을 것 같다. 너무 작은 도시는 곤란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도시사람이니 서울만큼은 아니어도 기본적인 인프라는 갖춰져 있어야 한다. 동시에 서울 접근성이 나쁘지 않아야 한다. 가급적 KTX가 있는 곳이 좋겠다. KTX가 정차하는 바닷가 도시라면 후보가 몇 남지 않는다.


따숩고 여유로운 남해안이 좋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통영이지만 기차가 없는 게 결정적 단점이다. 직접 차를 운전하자니 너무 힘들고 버스 역시 오래 걸린다. 여수나 부산은 어떨까. 여행에서 얻어 온 좋은 기억이 있다. 아니면 역시 서울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동해안이 나을까? 강릉에는 KTX가 있고, 속초나 양양 역시 자차로 접근하기 편해졌으니 심리적이나 정서적으로 이쪽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지방으로 이주한다는 게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아무리 노마드 생활에 익숙한 나라도, 모든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남아 있는 곳을 두고 아무 연고 없는 지방에서 삶을 꾸려나간다는 건 심히 막막하다. 어떤 면에서는 해외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서울살이에 낯섦이 침범해들어올지라 해도 어쨌든 내게는 가장 익숙한 환경이다. 서울이 아니고서는 한국의 그 어디도 나의 도시라 할 수 없다. 기간의 정함 없이 아예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건 정체성을 변경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다면 몰라도.


그러니 별 수 있나, 당분간은 어쩔 도리가 없다. 후천적으로 갖게 된 면역결핍증을 끌어안아 품고 살아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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