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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Jun 09. 2023

우리는 더 많은 우영우를 만나야 한다.

에필로그 우영우를 보면서 딸을 이해했다.

나의 헬스선생님은 성인 ADHD다.  3 개윌 전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작고 마른 체구지만 당차 보이고 발랄한 여자 선생님이었다. 시간도 꼼꼼하게 체크해 주고, 자세 영상도 찍어 보내주며 열심이었다.


좀 엉뚱하기는 했다. 시범을 보여주려고 매트에 누워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면 도라에몽처럼 주머니에서 물건들이 쏟아졌다. 작은 빗, 립밤, 종이 그런 것들이었다. 하나씩 주워주면 씩 웃으며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스마트폰을 어디에 둔지 몰라 자주 찾아다니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더 자주 찾고 더 덜렁댔다.


가장 신기한 건 타투였다. 처음에는 손목에만 살짝 나비가 보였다. 날이 더워지면서 상의 소매가 점점 짧아진 때마다 여러 가지 타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장난감 판박이를 한 건가 싶었다. 보통은 글씨를 이어 쓰거나 연결되는 큰 그림을 넣거나 포인트 타투를 하지 않던가? 선생님의 타투는 우주에 물건들이 중력 없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손목에서 겨드랑이 근처까지 열맞춤도 없이 다른 색과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다. 


"나비, 동그라미, 사람, 이건 뭐예요? 거북이?

볼 때마다 타투가 달라지는 느낌이에요."


"고양이예요.

이 타투들은 젊을 때 재미로 한 건데 소매 길이 따라 달라 보여요. ㅎㅎ"


개인의 취향이니까 이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고 재미있었다.


2개월쯤 되었을 때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는 성인 ADHD에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회사 다니면서 자꾸 일 못한다고 하고,  까먹고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집중력이 떨어지고 좋아하는 거만 하는데요. 다행히 저는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만 죽어라 했어요."


"진짜요?

우리 딸도 그런데요. 우리 딸은 그림이요.

선생님은 시간 체크도 잘하시는데요. 프리랜서라 체크가 더 어려울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메모광이에요. 약도 먹고요. 약 안 먹으면 운동도 수업도 집중 못해서 안 돼요."


"우리  나중에 직장 다닐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선생님을 보니까 걱정이 덜어지네요. 선생님 너무 잘하시잖아요."


딸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그 말들이 이해가 되고, 열심히 살아가는 선생님이 대견하고, 안심이 되었다.






딸은 자퇴서를 내고 진짜 자신의 세상으로 걸어갔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아빠가 우영우를 키우면서 외로웠다고 말한 부분이 이해가 되었다. ADHD 딸은 어딘가에 몰입하면 가족도 상황도 모두 잊고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여행 가서 그림만 그리는 딸. 어느 날은 가족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늦은 밤 2시간 거리를 선물을 사들고 나타났다.  같은 타이밍에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아이와의 시선은 자주 엇갈렸고 뒷모습이 더 익숙해졌다.





얼마 전 박은빈 배우가 대상을 받았다. 수상소감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영우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가 자폐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랐습니다. 세상을 달라지는데 한 몫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를,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다름이 아니라 다채로움으로 인식하기를 바라며 연기했는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알아도 남들은 모르는, 남들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이상하고 별난 세상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생각하라고 영우가 말하는 것 같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어렵더라고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포용하면서 힘차게 내디뎠던 영우의 발걸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배우 박은빈 백상 예술 대상 수상 소감에서 -


드라마에서 우영우의 마지막 대사가 참 오래 남았었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끊임없이 탐색해야 하는 세상.

세상과의 연결점을 찾는 노력.

자신의 발 디딜 틈을 찾아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삶이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말은

마음의 시선을 바꿔줬다.



마음 편한 시선

자폐증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장애인 직원 80%를 둔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한다는 기사를 봤다. 자폐아를 자녀로 키우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세상. 면밀한 행동을 사랑으로 대하며 부족함 보다는 안에 숨겨진 그 아이만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기지 않았을까.


보통과 다른 길을 가는 아이를 키우고 보니 같은 시공간에 특별한 세상을 사는 아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조카를 만나고 나니 입학식에 장애아 돌봄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와 눈이 맞았을 때 손을 흔들며 웃어줄 수 있다.


행동틱을 하는 조카를 보고 나니 눈을 갑자기 깜빡이는 아이, 팔을 반복적으로 뻗는 아이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이어갈 수 있다.


ADHD 딸을 만나고 나니 산만한 아이, 집중이 어려운 아이를 보며 어떤 몰입의 능력을 갖고 있을까 기대할 수 있다.



마음에도 불편한 시선이 있다.  필터를 끼면 그렇다. 편견이라고도 하고 선입견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눈보다 마음으로 세상을 더 많이 보며 이해하고 판단하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덮이는 필터가 거둬지도록 더 많은 우영우를 만나면 좋겠다.


마음의 시선이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도록.

다르다는 이유로 평범함에 맞추려 노력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고유함 자체로 가치 있다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고유한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 이상하고 별나도 마음 편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는 더 많은 우영우를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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