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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Mar 11. 2023

열여덟 불효녀, 엄마 생일에 떠난 일본 여행

생일 선물

"엄마!"


 월요일 저녁. 딸이 부른다.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아이곁으로 와서 정확한 발음으로 나를 부르면 각오해야 한다.


'엄마가 허락해 줄까? 꼭 허락받아야지.' 하는 엉뚱한 제안을 할 예정이라는 신호다. 중학교 2학년 때 혼자 부산에 가겠다고 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다.


"엄마! 나 일본 여행 가도 돼?"


"언제? 누구랑?"


"이번주 금요일. 3박 4일. 트친(트위터 친구) 언니들이랑. 숙소도 다 예약했고 세 명 언니들 같이 가는데 나도 같이 가도 된대. 지난번에 우리 집에서 잔 언니들이야. 일본에서 10년 산 언니도 같이 가."


최대한 엄마를 안심시킬 말을 골라 준비한 멘트였다. 적중했다. 얼마 전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예의 바른 언니들. 일본을 잘 아는 언니도 있다니.. 안 된다고 하면 왜 안되는지 따라다니며 설득하다 울다 침울하게 방으로 들어갈 테고 나는 결국 지겠지. 이왕 보내줄 거면 쿨하게 보내주마.


"그래, 다녀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보내고 싶은 마음 반, 말리고 싶은 마음 반이 오락가락했다.


"여권 유효기간이 남았을까?"


만료기간. 2022년 10월. 3일은 여권을 재발급받기엔 촉박한 시간이다. 내심 반가웠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포기하면 내 딸이 아니지.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손과 눈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엄마! 긴급여권이 있는데 이건 하루면 나온대. "

"미성년자도 발급해 줄까?"

어디도 미성년자는 안된다는 말이 없었다.

"여권사진은 있어?"

"응 전에 찍어놓은 파일 있어."

외교부 사이트, 구청, 온라인 서치가 시작되었다. 어디는 가족관계서류가 필요하다 하고, 어디는 필요 없단다. 긴급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도 하고, 유효기간 만료면 가능하니까 괜히 이상한 긴급사유 만들지 말란다. 이런 때는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제일이다. 다음날 구청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음날 11시, 딸과 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영종대교를 올라타고 있었다.  


아침 9시 주민센터에 들러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고 동네 구청으로 갔다. 구청 앞 사진관에서 여권사진 8장을 현상하고 다시 구청으로. 나는 동의서, 딸은 신청서를 작성하고 접수처에 내밀었는데 긴급여권은 구청에서 발급하지 않는단다. 인천시청이나 인천공항으로 가란다. 역시 쉽게 되는 일이 없다. 오기가 발동해서 이번에는 내가 더 나섰다.


"여기서는 공항이 더 가까우니까 공항으로 가자."

 

공항으로 가는 길.  아침에는 갑자기 생긴 일정에 짜증이 나더니 영종대교의 바다를 보니 또 기분이 좋아졌다. 해야만 하는 일들은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도 많더라. 딸이 여행 갈 수 있도록 돕는 엄마가 나중에 생각하면 더 마음에 들 것 같았다.


딸과의 수다타임.


"엄마는 요즘 참 좋아. 직장을 안 다니니까 이렇게 갑자기 생기는 일정에 너랑 공항도 가고. 엄마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해. 전에는 엄마는 내향적이라 사람들이랑 오래 일하는 게 힘든 적응이 어려운 사람인가 생각했는데. 지금은 혼자 일하는 게 좋은 사람도 있는 거지 싶어."


"나도 엄마 닮아서 혼자 일하는 거 좋아. 나는 완전 외향형인 줄 알았거든. 사람들 많은데 가면 어색해서 과잉 행동을 하는 거더라고. 조용한 게 어색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하고. 막 웃긴 행동하고. 오히려 친한 사람들이랑 있으면 아무 말 않고 조용히 폰 하고 있어. 그러다 할 말 있으면 또 막 떠들고. 친한 사람들이랑은 같이 폰만 하고 있어도 '참 재밌다.' 그러는 거 같아."


"나 동생이랑도 낯가리잖아. 영욱이를 오랜만에 보면 어색해. 대화가 뚝뚝 끊겨. 그래서 좋아하는 간식 하나씩 사다 주면서 '이거 먹을래?' '응.' 그러잖아."


다시 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다 딸이 다시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일본어 배우고 있어. 파파고 번역기 성대모사 엄청 잘한다. 곤니찌와. "

파파고 번역기에서 자주 듣던 소리가 나왔다. 

"정말 똑같다. 또 해봐."

"오이시이데스. 사람들이 발음이 왜 그래요? 하면 파파고에서 배워서 그래요. 그럴라고. 웃기겠지. ㅍㅎㅎㅎ"


"진짜 재밌겠다. 그런데 너 출발하는 날 엄마 생일이다."

"아~~~~ 그렇네. 이런 불효녀. 완전 불효녀네. 미안해. 엄마 생일인 거 알았는데 그런 거 있잖아. 또 생각이 따로 도는 거. 내가 엄마 생일선물 사 올게."

"불효녀라고 생각해 주니 고맙네."


곡선이 날렵한 은빛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H라인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나의 차림새가 문득 신경 쓰였다. 생얼에 급하게 운동복 바지에 니트하나 걸쳐 입고, 머리는 질끈 묶고.


"와~~ 엄마가 이러고 공항에 오다니. "

"엄마, 딱 공항패션이야. 니트에 검정일자바지. 겨자색 코트까지. 딱 독일에서 유학하다 지금 막 입국한 사람 같아."

내심 미안한 걸까. 


몇 번의 위기가 더 있었지만 딸은 마침내 여권을 손에 들었다. 이제 여행 전날 PCR검사만 하면 된단다.




여행 전날. 여행패션을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자기 옷과 엄마옷이 바닥에 장판처럼 깔렸다. 

"엄마, 엄마 나 어때?"

크림색 반 목폴라에 어깨가 끈으로 된 진한 라떼색 원피스를 입은 딸이 방으로 들어왔다. 

"예쁘다. 예뻐."

"너무 예쁘지. 이건 첫날 패션. 아~~ 뭘 입어도 예쁘네."

"그래. 이쁜 모습 사진 좀 찍자."

찰칵. 찰칵.

우리 집 온도 23도. 딸의 온도 38도. 얼굴이 발그레해서 오른쪽, 왼쪽, 머리를 쓸어 올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씽긋 웃는 표정까지 엄마 스마트폰에 담아주고 둘째 날 옷을 입으러 돌아갔다. 그렇게 속옷, 양말, 속바지 하나씩 찾으러 나타났다. 옷 만 잔뜩 싸고 있나. 딸 방으로 갔다. 역시나 한달살이 가는 것처럼 짐을 싸고 있었다. 같이 가기로 한 언니들과의 스피커 통화 소리. 


"다 챙겼어?" 

스피커에 대고 외쳤다. 

"우리 딸 데려가줘서 고마워요. 잘 부탁해요."


"네~~~~ ㄱ ㅈ ㅁ..." 뒷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잘 다녀온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겠지. 이후에도 여권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여행 가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배고프다는 말에 주방으로 나왔다. 


"양배추 쪄줄까?"

"좋아."


양배추 두덩이 썰어 찜기에 넣어 불에 올리고, 작은 종지에 간장 세 스푼, 참기름 반 스푼, 깨 통통 넣어 젓가락으로 저었다. 


"5분쯤 있다가 양배추 불 끄고 한 숨 식혀서 먹어. 엄마 잔다."

어설피 잠이 들락 말락 말소리가 들렸다.

"누나 어디가?"

"일본. . . 불닭볶음면 먹을래? 양배추에 싸 먹으면 진짜 맛있어."

"그래."





새벽 5시. 

식탁 위 한가운데 뻘건 양념만 둘러진 웍이 보였다. 딸 방이 바쁘다.

"잠은 좀 잔 거야? 벌써 가?"


출발은 12시인데 벌써 나간단다. PCR검사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영문확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걸려 나가야 한다며 짐을 끌고 나왔다. 가관이다. 


큰 캐리어하나. 

빵빵한 백팩.

어깨에는 입구가 오픈된 큰 숄더백(그림그릴 노트와 펜을 넣어야 하니 포기할 수 없단다.)

지갑 넣고 다니라고 준 하얀색 크로스백까지.


전쟁에 나가는가. 

가방들이 애를 끌고 가는가. 

하나 없어져도 모를 짐 사이로 한쪽 어깨가 흘러내린 후드집업까지. 


이대로 아이를 보내도 되는 건가 싶은 모양새에 갑자기 불안해졌다. 어려서부터 유독 문제해결능력이 또래에 비해 떨어지는 아이였다. 평생을 데리고 다니며 챙겨줄 수 없으니까 많은 경험으로 혼자만의 해결방법을 터득하기를 바랐다. 미성년자라는 건 아직 문제가 생겼을 때 뒤에서 보호해 줄 보호자가 있다는 거니까. 그 시기동안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가기를. 경험으로 배우는 일이 타고난 순발력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딸을 보며 알게 되었다. 어느새 딸은 또래보다 많은 문제 해결능력을 갖고 있는 '애어른'이 되어있었다. 부작용은 너무 용감해졌다는 것.


열여덟 딸을 혼자 해외여행 보낸다고 하면 태평한 엄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권을 잃어버리고 못 돌아오면 일본으로 데리러 갈 계획까지 해 놓고서야 보내는 마음이다. 만나는 모든 경험을 통해 자신을 지키는 방법, 장애물을 뚫고 나가는 용기, 그 뒤에는 부모가 함께 한다는 든든함 까지 배우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내내 마음은 공항을 따라다니며 PCR검사를 하고, 짐을 부치고, 들어가는 모습까지 상상하느라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들썩일걸 알지만 몸은 현관문 앞에 딱 섰다.


"잘 다녀와."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생일 축하 합니다."


나를 안아줬다. 그게 뭐라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릿저릿 물이 아랫눈두덩이를 치고 올라온다. 딸이 떠났다. 완전하지 못한,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불완전한 모습으로. 지갑을 흘리지는 않을지, 캐리어를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일행을 놓치고 길을 잃지는 않을지,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지 무수히 많은 걱정을 엄마에게 선물로 안겨주고 가는 불효녀.


어설피 가방을 메고 "잘 다녀올게" 하는 딸이 가장 큰 선물인걸 알까.





다음날.

"재밌어? 잘 지내는지 사진이라도 보내봐."

보낸 톡에 그토록 좋아하는 간식 사진들.

오물오물 먹으며 웃고 있을 너는 엄마가 상상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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