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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5. 2022

열린 꼰대 말고 열린 아빠 "화해할까요?"

자녀에게 배우는 화해의 기술

책이 너무 유명해지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했다. 한참 부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책이 마무리가 되면서 아빠는 꼰대도 그냥 꼰대가 아니라 열린 꼰대가 된 것이다. 국민 꼰대가 될 위기였지만 다행히 그렇게까지 이슈가 되지는 않아서 주변 지인들에게만 꼰대 아빠가 되었다. 덕분에 가는 곳마다 "아이한테 그러지 마"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아빠는 상심했다. 책 내용에 심하게 우울해했다. 책 내용은 이랬다.

우리 엄마의 남편 되시는 분은 꼰대다. 아무리 봐도 꼰대인데, 본인은 되게 열린 마인드를 가진 걸로 아신다. 근데 알아요, 아빠? 아빠의 그 열린 마음은 한정적이라는 것을요. 상대에 따라 열리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요. 왜 꼰대들은 자신이 꼰대라는 걸 모르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꼰대들의 특징은 이렇다.     


1. 된소리를 낸다.

2. 이상한 신조어를 쓴다.

3. 자기 생각을 강요하면서 남을 자기 틀에 맞추려고 든다.

4. 목소리를 크게 내고,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서, 욕설을 한다.

5.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 하고, 실수를 하면 틀렸다고 말한다.

6. 인상을 많이 쓴다.

7. 자신은 꼰대가 아닌 줄 안다. 


뭐 우리 아빠가 욕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혼낼 때는 외려 목소리가 차분해지고 말투도 느려진다. 그래서 더 무섭다. 빠져나올 수 없는 아빠의 논리가 시작된다. 아빠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구시대적인 발상이 너무 많다. 실수는 실수다. 실수할 때마다 “틀렸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면 나는 틀린 인생을 살고 있는 건가?


아빠 때는 아빠 때고, 나 때는 나 때다. 나야말로 “나 때인 지금은 말이죠~”라고 훈수를 두고 싶을 지경이다. 지금의 내 실수가 아빠의 눈에는 틀린 것이나 잘못된 것으로 보일 수는 있다. 어쩌면 아빠 때는 그랬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실수로부터 배우는 거라고들 하지 않나? 그리고 앞으로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열린 꼰대’인 우리 아빠가 자신의 가치관만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수를 무조건 잘못한 것이라고 타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읽어도 우울한만 했다. 책을 출간하면서도 많이 고민했지만, 딸이 적은 글이니 그때의 마음을 그대로 적는 게 독자와 공저인 딸에 대한 예의라 여겼다. 아빠는 예상보다 훨씬 우울해했다. 그럴 만도 하기는 했다. '딸은 모르지만 나는 기억하는' 남편의 모습은 딸바보 자체였다. 어느 집이나 아빠는 딸바보다. 그런 딸바보들을 줄 세워 등급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 집 딸바보는 1등급이었다. 첫 아이, 첫 딸이었다. 10월의 난방이 잘되는 병원에서 태어난 날은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밤낮을 울어대던 아이가 그나마 시원한 곳에 가면 울음을 뚝 그쳤다. 아빠는 너무 조그마해서 닿으면 부서질라 가슴에 폭 안지도 못하는 아기를 겨우겨우 두 손에 올리고 병원 창가나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이렇게 키운 딸이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남편은 그 말을 해도 되었다. 그렇지만 나도 남편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아빠는 딸의 모든 말을 수용했고, 말을 아꼈고, 요구를 받아들여주었다. 무리해 보이는 요구일지라도. 남편은 이따금 아이 어릴 적 사진을 물끄러미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예쁜 우리 딸. 이 때로 돌아가면 좋겠다."


목소리가 슬펐다. 엄마인 나와의 관계는 회복이 되었지만 아빠와는 관계는 또 다른 숙제였다.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책이 출간되고 인터뷰를 빌어 아빠에 대한 마음을 넌지시 물었다.


" 요즘 아빠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 이제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마음인데 아빠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심한 말을 많이 했거든요."


마음이 아물고 난 자리에 다시 싹이 나고 있었다. 아빠가 주었던 사랑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한 행동이 미안했는지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동생 생일을 축하해 준다며 학교를 마치고 한 시간 반을 걸려 늦은 시간 집으로 왔다. 선물을 한 아름 들고.


생일인 동생에게는 로봇 장난감, 둘째 동생에게는 용돈, 엄마에게는 미용 팩, 그리고...


거실에서 딸이 주인공들에게 선물을 안겨주고, 고맙다며 얼싸안고 축하해주는 사이 아빠는 주방에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딸은 종이봉투에 손을 쑥 넣어 작은 선물 상자를 꺼내더니 아빠에게 갔다. 딸이 어색할 때 나오는 과장된 걸음으로 팔을 힘껏 흔들며.


"아빠~!! 이건 화해의 선물이야. 화해합시다."

"무슨 새삼스럽게 화해야. 아빠와 딸 사이에." 아빠가 말했다.

"그래도 화해는 확실하게 해야지."


아빠는 웃고 있었다. 부녀의 어색한 포옹과 토닥임. 그 뒷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눈물이 났다. 선물은 아빠가 좋아하던 향수였다.


"자~화해 기념으로 사진 찍자." 나는 말했다.


부녀는 나란히 포개어 서서 승리의 트로피를 치켜들듯 향수를 든 오른손을 뻗고, 왼손은 허리에 얹고, 턱은 15도 도도하게 들어 올리고 포즈를 취했다. 영락없이 닮았다.


 


 

딸은 말했었다. 싸우면 화해를 먼저 해야 대화가 되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도 싸우면 화해를 먼저 해야 하는 거라고. 자녀가 먼저 사과할 수도 있지만 어른인 부모가 먼저 사과해 주면 좋겠다고. 그랬던 딸이 이제는 아빠에게 먼저 화해의 말을 건네고 있다. 아빠가 행동으로 보낸 많은 사과를, 아니 그 이상의 사랑을 하연이는 느꼈을 거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화해한 겁니다."라고 종지부를 찍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에게 참 많이 배운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거니 하지만 정작 어른들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자녀의 무심한 행동에 오해하고 상처받는다. 딸은 그런 부모를 위해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이건 화해의 선물이야. 화해합시다..."


이 말은 딸이 용기 있게 찍어준 마침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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