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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Sep 26. 2022

미용실에서 머리 하던 딸이 사라졌다.

ADHD 사춘기 딸과 살고 있습니다.

"하연아, 미용실 가자."


하연이가 긴 머리를 하겠다고 머리를 기른지도 6개월이 넘어간다. 한동안 숏컷트에 남자아이처럼 옷을 입고 다니며 여자 후배들에게 선물을 받아왔다.


"엄마, 애들이 나보고 잘생겼대. 아이돌 같다며 자꾸 선물을 줘."




내 중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1980년대 후반 이미연의 가나초콜릿 광고는 중학생이던 내 마음도 설레게 했다. 여자중학교 3학년 축제 퍼레이드가 있던 날. 아이들은 저마다의 콘셉트로 분장을 하고 행진을 하며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숏컷에 얼굴이 하얗고 키가 컸던 같은 반 노**과 그 절친은 가나 초콜릿 광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노**은 화이트 셔츠에 검은색 슈트를 입고 야리야리한 몸매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그 품에는 긴 생머리의 절친이 옷깃을 열었다 닫으며 수줍게 웃었다.


언덕 꼭대기, 산아래 위치한 여자 중학교에  잘생긴 남학생 구경이 힘든 사춘기 중학생의 마음에 불이 붙었다. 축제 이후 노**은 대스타가 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여자 후배들이 복도 창문을 기웃기웃하고, 초콜릿과 편지가 책상 서랍, 사물 함장에 쌓였다. 그 이후 노**은 그 상황을 즐기는 듯 걸음걸이도, 옷도, 행동도 더 남자아이 같았다. 나도 그때는 살짝 그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친한 친구였는데도 나를 보며 피식 웃으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마도 첫 짝사랑이 아니었을까. 



하연이의 말을 들으니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랬던 하연이가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자신을 꾸미기 시작다. 화장을 하고, 긴 머리 가발을 썼다. 긴 머리에 화장을 한 자신의 모습이 거울로 보기에도 예뻐 보였나 보다. 어느 날


"엄마 나 머리 길러야겠어."

 

커트머리를 긴 머리로 기를 때 귀 길이를 넘기는 게 가장 어렵다는 건 머리를 짧게 잘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다. 머리카락이 귀 윗볼사이를 파고들다가 앞머리는 귀 앞으로, 뒷머리는 귀 뒤로 길을 잡고, 가운데 머리카락은 귓불을 동산 삼아 넘기 시작한다. 삐죽삐죽 귓볼의 꼭대기를 넘어갈 때 머리카락이 후크선장의 수염처럼 양쪽으로 솟아오른다. 하연이는 어느 정도 머리가 길 때 까지는 미용실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 사자가 된 머리를 한동안 움켜쥐고 다니다가 드디어 때가 되었다며 미용실에 가자고 한 것이다.


" 내일 미용실 예약 1시니까 오늘 일찍 자."


낮과 밤이 바뀌어 새벽 5시에 잠이 들었다가 오후 3시가 넘어야 일어나는 시간이 반복되고 있던 때였다. '병원 가는 것도 아니고, 자느라 미용실 못 가면 돈 아끼고 좋지 뭐.' 하는 생각으로 일찍 잘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5시에 일어나 보니 방불이 환히 켜 있었다. 그 전 같으면 약속을 하고 또 어겼다며, 미용실 가지 말라며 한 바탕 난리가 났겠지만 이해해보려 애썼다.


'가고 싶어 하던 미용실 가는 거니까 일찍 자보려고 했겠지. 또 어떤 그림에 푹 빠져 조절이 어려웠나 보지. 어차피 벌어진 일 야단쳐봐야 감정만 상하니까 오늘 다니면서 힘들어보면 나아지겠지. 결국 경험하면서 스스로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가겠지.' 했다.


"하연아, 너 미용실 갈 수 있겠어?"

"응, 안 자면 돼. 버틸 수 있어."


하연이는 진짜로 잠을 안 자고 11시까지 버티고 있었다. 점심을 같이 자고 미용실 옆 식당에 갔다. 밥도 잘 먹었다. 안 자면 예민해져서 짜증을 많이 내는데 조잘조잘 말도 잘했다. 드디어 미용실. 3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슬슬 걱정이 되었다. 미용실에 데려다주고 근처 카페에 있으려다가  나도 염색을 하기로 하고 옆 의자에 앉았다.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머리를 기를 거니까 최대한 길게 잘라주세요. 손질 편하도록 펌도 해주시고요."


하연이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미용실 언니와 조잘조잘 수다를 하며 머리카락을 다듬고 펌 약을 발랐다. 우주비행선 같은 기계가 달이 지구를 돌듯 하연이 머리를 큰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윙~~~~~~~~~'


미세하게 반복되는 소리가 들렸다. 불안하다. 신생아도 재운다는 ASMR. 하연이도 버티기는 힘들 것 같다. 지구가 중력의 힘으로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만 중심을 잃었다. 하연이 머리가 자꾸 인사를 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하연아, 일어나."


옆 의자에서 이름을 부르면 지구는 다시 자리를 찾았다가 이내 더 무시무시한 힘에 이끌려 아래로 떨어졌다.


"괜찮아요."


미용실 언니가 말했다. 달이 회전을 마치고, 나는 머리를 감으러 들어갔다. 적당한 온도의 물이 머리카락 사이사이 스미고, 손가락 지압으로 두피를 꾹꾹 누르니 시원했다. 


딸랑, '다른 손님이 왔나?'


"영양제를 발랐으니 좀 누워 계세요."


밖이 조용했다. 10여분 정도 지나 머리를 헹구고 밖으로 나왔다. 하연이가 안 보였다.


"손님이 사라졌어요. 아까 화장실 간다고 갔는데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안 와요. 무슨 일 생긴 걸까요?"

"화장실이요?"


아까 띵동 소리는 하연이가 나간 소리였다.  '아주 안락한 잠자리를 찾았겠구나.'


"아마 자고 있을 거예요."

"화장실에 잠을 어떻게 자요?"


이 언니는 아직 결혼을 안 했겠구나. 화장실에서 나는 잠들어봤다. 육아, 일, 대학원을 다닐 때 하루 3시간을 못 자고 며칠이 지나면 앉거나 머리를 기대는 곳이면 어디든 잘 수 있다. 하물며 화장실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혼자 있는 공간이다. 2시간마다 깨서 젖 달라고 울는 아이를 달래본 엄마라면 화장실에서의 꿀잠을 이해하지 않을까? 공용화장실인 게 문제이기는 했다. 위생도, 치안도 그랬다. 


"아마 맞을 거예요. 제가 찾아올게요."




화장실을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가 어둑하고 화장실 문도 무거웠다. 몸을 기대어 문을 힘껏 밀며 순간 여기도 없으면 어쩌나 불안감이 올라왔다. 재빨리 이름을 불렀다. 


"하연아~~~~!"

"어, 엄마~!"

"잤어?"

"엉. 금방 나갈게."


신기하다. 다른 때 같으면 


"잠을 안 자니까 화장실에서 잠이 들지."

"여기서 잠들었다가 이상한 사람이라도 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엄마가 있으니 망정이니 너 안 깨웠으면 밤까지 잤을 거 아내야."


먼 미래의 걱정까지 데려와 잔소리를 했을 텐데 그냥 피식 웃음이 났다. 화가 나는 걸 참으려면 솟구치는 화 덩어리를 침을 꿀꺽 삼키며 누르느라 진이 다 빠졌을 텐데 화가 안 났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 많이 버텼네.' 이해가 되었다. 단잠 후 목소리가 맑아진 하연이와 다시 미용실로 돌아왔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니 미용실 직원들도 별일 없었다는 듯 다음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우주비행선 모양에 인형 뽑기 집게를 닮은 집게와 꼬불꼬불 스프링이 달린 기계였다. 사자처럼 뻗은 머리카락을 잡아 안으로 말고, 뿌리 볼륨을 주기 위해 집게가 잡아 들면 스프링 전선을 타고 강한 열이 세팅 파마를 해줄 거다. 잠이 깨서 얼마나 감사한지. 이때 잠들면 아마도 복구가 불가능한 폭탄머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용실 나들이는 작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후크선장 수염은 안으로 잘 말렸고, 눈을 가려 삽살개 같던 앞머리도 커튼처럼  열렸다. 나도 하연이도 아주 만족스러운 헤어가 되었다. 자칫 별일도 아닌 일에 또 큰소리 내며 서로 맘 상해 돌아올 수 도 있었을 텐데, 딸의 ADHD 증상을 이해하는 일이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하연이는 잘 세팅된 헤어에 아주 만족해하며 셀카를 찍었다. 예쁘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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