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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06. 2022

학습된 가면을 쓰고 사느라
힘들었어

사춘기,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시기다.

기능이 양호한 대상들은 아동기부터 ADHD를 충족하는 증상이 있었지만 자신만의 대처방법으로 증상을 커버해 오다가 결국 성인기에 대처하기 어려워 진단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ADHD라는 질환 자체가 신경발달장애로써 만성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기능이 양호해서 좋은 대처 기술을 만들어온 진단 사각지대에 있는 일부에서는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고 자주 우울 불안을 심각하게 시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잘 내다가도 자살, 중독, 우발적 사고에 휘말리는 경우도 일반인 군에 비해 높다.  


"엄마!

나는 어릴 때 내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어. "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해왔는 줄 몰랐다. 어릴 적 하연이를 생각하면 사람들을 좋아하고, 먼저 가서 말을 걸고, 잘 웃는 아이였다.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과 수다를 떨다가 교장선생님실에 가서 간식을 나눠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상점 집집마다 들러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떠들다가 붕어빵 하나 얻어 입에 물고 들어오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아빠의 친구를 처음 만나도 삼촌~!! 하며 끌어안고, 무릎에 앉기도 하니 오히려 걱정이 될 정도였다. 주변에서는 아이가 사교성이 좋아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어른은 너무 지나치게 애정표현을 하니 아이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애정결핍이 아닌가 라는 말도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 마음도 상해서 아이에게 관계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애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 행동들이 사람들과 같아지려는 자신만의 대처방법이었다니. 


"내가 하는 말, 행동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더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고, 어른들도 나를 싫어할까 봐 칭찬받는 행동을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 했어. "


이제서 가끔 보이던 아이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사촌이 집에 놀러 오면 "네가 너무 좋아" "와~진짜 재밌다.""가지 마. 나랑 더 놀자."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다가도 돌아가면 바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사촌은 집에 가서도 더 보고 싶다고 울고 조른다는데, 정작 온갖 애정표현으로 사촌을 홀린 딸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딸은 명랑함, 사람에 대한 관심 어린 말과 행동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4학년이 되었고, 여자아이들의 예민한 감수성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학습된 행동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생각과 문화였다. 아이들이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고, 관심사가 달랐다. 하연이는 친구들의 은근한 따돌림을 놀이라고 생각했고, 점차 이유는 모르지만 슬퍼지는 마음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하연이는 그림에 과몰입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


"엄마,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렇게 사람들 눈치 보고, 행동을 만들어하면서 참 힘들었어. 이제는 내 모습 그대로 살고 싶더라고."


하연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돌변한 것은 변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어쩌면 나조차도 아이의 밝고 사교성 좋은 모습에 반응하고 더 칭찬한 게 아닐까. 갑자기 예민해지면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울기만 하면 모진 소리도 많이 했다.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딸은 학습된 가면을 벗고 자신처럼 살기로 하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권위로 누르는 비난의 말에 상처받았고, 무기력한 자신을 이해받지 못했다. 우울과 불안이 깊어지고, 그런 자신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살고 싶다고 말하기 위해 약을 먹었다. 지진이 난 것처럼 온 가족이 흔들리고 나서 서로를 위한 진정한 학습을 시작했다.


하연이는 자신이 ADHD가 아닐까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진단을 받으면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멈추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었다. ADHD 진단을 받은 후 딸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공상을 많이 하는 자신을. 이해력과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과 잘 지내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우는 동생을 달래준다. 동생의 생일에 선물을 사 온다. 얼마 전 얼음통을 쏟았는데 하연이가 휴지를 들고 와서 같이 닦아주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던 아이가 주변을 돌보고 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몰랐다. 아이도 사람임을 몰랐다. 더 성장하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세상에 부모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욕구를 가진 사랑받고 싶은 본능을 가진 인격이라는 것을. 오히려 아이라 그 본능에 더 충실함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춘기는 자기중심적인 시기라고 했다. 그래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버릇없다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릴 때 거부당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 , 자신의 정체성이 뿌리째 뽑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방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사춘기 아이들의 시선회피,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이 없는 아이들. 무기력하게 누워 자는 아이, 핸드폰에 멍하니 집중하는 아이들이 그 안에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이 만들 수 있는 단단한 가면을 만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세상. 이제 막 아동기를 벗어나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에 벌써 성인으로써의 도덕을 강요받고 상처를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사춘기.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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