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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Jun 04. 2023

일본에서 울며 온 딸과 단짠맵탕면을 먹었다

모든 경험을 통해 단단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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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글을 쓰고 다시 글을 쓰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원래는 일본을 다녀온 딸의 조잘거리는 소리를 웃으며 듣고, 그중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풀며 딸이 잘 다녀왔다는 글을 쓸 예정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귀국한 딸은 이후 후유증이 생각보다 오래갔다. 딸의 방황에 나도 흔들리며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따라 오늘까지 왔다. 


짜파구리는 내 거라고


남편과 함께 공항에서 딸을 기다렸다. 함께 갔던 언니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밥도 사줄 생각이었다. 서로 말하겠다고 다투어 조잘대는 4명의 소녀를 보겠구나 예상했다.


두 개의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딸의 발바닥이 어기적거린다. 누가 일행인지 모를 정도의 거리를 두고 비슷한 표정의 또래들이 같은 걸음으로 나온다. 스케치북에 웰컴이라도 써서 들고 있었으면 민망했을 분위기다.


딸이 우리 앞에 서자 두 명이 더 와서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 명은 어디 갔지?

분위기는 또...'


밥을 같이 먹자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다. 차에 도착한 딸은 긴장이 풀렸는지 뒷자리에 반 누워 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애써 밝은 척 물었다. 

 "재밌었어?" 

잠깐의 침묵 후 딸은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말하니 무슨 소리인지 이어지지 않는 단어들 사이로


"그 언니가..

나한테...

나는 일본어도 못 하는데.."


일본어 잘하는 언니를 믿고 따라간 일본 여행이었는데 그 언니에게 서운함이 쌓이니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앓이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 결정적인 짜파구리 사건을 말할 때는 폭풍오열을 했다.


사건은 이랬다. 이번 일정의 가장 큰 이벤트는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한국의 짜파구리가 유명해서 자신들도 만들어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고 하는 말에 라면부심 가득한 딸은 집에 남아있던 짜파게티 2개와 너구리 라면 2개를 야심 차게 챙겨갔다. 말이 안 통하는 친구들과 짜파구리를 만들어 먹으며 비법도 전수하고 친해질 계획이었단다. 


드디어 짜파구리를 먹기로 한 날 저녁. 

낮 일정에 지친 딸은 친구들이 모여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아침. 그런데 세상에 익숙한 라면 단내가 솔솔 나고, 캐리어는 열려있고, 검붉은 소스의 흔적만 남은 빈 냄비만 남아있더란다. 심장을 뚫고 목구멍으로 넘어올 서러움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 내가 그걸 끓어주려고 집에서부터 싸갔는데, 어떻게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꺼내 먹을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우니까 착한 언니가 미안하다면서 말해주더라고. 그 나쁜 언니가 잠자는 나한테 물어봤더니 먹으라고 했다고. 괜찮다고. 

말이 돼? 

주인이 자고 있으면 아침에 먹든지 다음에 먹었어야지. 아~~ 아~~ 엉~~ 엉~~ 진짜 너무 서러워서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


같이 화가 나서 말했다.

"진짜 너무했네. 그건 말도 안 되지. 어떻게 그런다니. 진짜 속상했겠다."

진심 편이 들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딸의 짜파구리는 그냥 짜파구리가 아니었다. 그 마음을 헤아렸으면 절대 그렇게 못 했을 텐데 공감이 미숙한 소녀들의 전쟁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쁘다고 말하는 언니와의 크고 작은 불화는 계속되었고, 혼자 집에 올 수도 없으니 꾹꾹 참고 있다가 결국 속병이난 거다. 어쩌면 좋을까. 


딸의 스트레스에는 단짠맵탕면(달고 짜고 맵고 국물 있는 면을 내가 줄인 말)이 극약처방이다. 


"배 안 고파?"

"고파"

"차돌순두부짬뽕 먹을래? 진짜 맛있어."

아빠의 아이디어였다.

"이름도 맛있겠다. 먹을래."

딸의 뒤죽박죽 머릿속에 차돌순두부짬뽕이 순식간에 치고 들어앉은 듯 조용해졌다. 

짐을 대충 올려놓고 집 앞 식당으로 갔다. 


고춧기름이 보글보글 터지는 국물 사이로 숙주가 머리를 들락날락하고, 보드라운 순두부가 탱글탱글 흔들리고, 소복이 쌓인 숯불구이 차돌박이에서 기름이 국물로 쭉 흘러내리는 자태라니.


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진짜 맛있겠다."

뜨겁고 매운 국물을 한 수저 떠서 호호 불어 입에 넣으면 김이 빠지면 깊은숨이 나왔다. 우와 진짜 맛있다를 연발하며 빠른 속도로 숙주를 꺼내어 접시에 펼쳐놓고 차돌을 가운데 얹어 돌돌 말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입이 얼얼할 때 허연 순두부를 아이스크림처럼 퍼서 국물에 살짝 담갔다가 꺼내어 입에 넣으면 매운맛을 싹 거두고 녹아들어 간다. 오물오물 씹으며 언니 흉을 보다가, 어떻게 복수를 할지 작전을 짜다가, 일본어를 배워 기필코 혼자 일본에 가겠다는 잠깐의 각오(그 이후 일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므로)까지 뱉어내고 부산 어묵탕으로 속을 달래며 저녁식사가 마무리되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다시 그림에 빠진 일상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깊은 잠을 꽤 오랫동안 잤다. 좋아하던 웹툰학원을 가는 것도 힘들어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바로 티가 났다. 6시 30분 시작인데 학원 도착 알람이 7시, 7시 30분 늦어지다 9시 30분까지 찍혔다. 여파가 컸다.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에는 '건강 다운! 연락이 늦어질 수 있음.'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엄마! 나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해. 학원가도 집중이 안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찾지 않던 약을 찾았다. 다니던 병원에 가서 항우울제와 불안증 약을 처방받았다. 


"엄마! 우울증은 병이래. 그러니까 약을 먹고 고쳐야 하는 거래.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 


묻지도 않은 말에 답을 한다.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약을 먹은 아이는 다시 깊은 잡에 빠졌다. 입시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하연이 담당 선생님인데요. 요즘 하연이가 너무 늦게 오고 학원에서도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요. 아프다고 들어서 지켜봤는데요. 무단 결설도 하고 너무 늦게 와서요. 어머님은 아시는지 해서 전화드렸어요."


학교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연이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와 이야기해보겠노라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 나 학원 그만두고 싶어. 무기력한데 앉아있는 것도 너무 힘들고, 옆에 앉은 아이는 그림 잘 그리는 거 보면 괜히 자신감도 떨어지고. 너무 힘들어."        


학원을 끊었다. 

학원에 짐을 찾으러 갔다.(언제나 그렇듯 '퇴'는 참 쉽다.) 

온 길에 맛있는 거 먹자고. 

아니 맛있는 거 먹으러 온 길에 짐 찾아가자고. 

그렇게 쿨하게.

짐을 챙기러 들어간 아이는 잘 그려진 미완성 작품들을 들고 학원을 나왔다.


스토리도 잘 짜이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까지 탁월한 컷만화. 

그러나 미완성인.

너를 닮았다. 



긴 동면이 시작되었다. 한 달은 방에서 그리다 자다 먹다 했다. 

우울해지면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모든 자제력이 상실된 듯 물건을 사지만 정리하지 않고 쌓이고,

기분이 좋다가도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다 울고,

모든 일이 불만이고 남 탓.


두 달쯤 지났을까. 

필라테스를 다니겠단다. 여전히 반은 놓치는 시간표였지만 그래도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느 기분 좋은 날. 6학년 남동생과 수다를 떨더니 토요일에 홍대를 구경시켜 준단다. 

토요일 2시. 함께 나간 아이들은 밤 10시가 넘어 돌아왔다. 훠궈를 먹고, 졸업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동생 옷도 사주고, 렌즈도 맞춰 끼워주고 돌아왔다. 졸업사진을 찍는 날 아침. 남동생 머리를 만져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아뿔싸. 초등 졸업사진에 남자아이를 아이돌 메이크업을 해줬다. 


신이 나서 동생을 내 눈앞에 세우고 "엄마 어때?" 하는데 차마 예쁘다고도 멋있다고도 할 수가 없다. 당장 지우라고 하고픈 마음을 꾹 누르고 "무슨 초등 졸업사진에 메이크업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엄마는 생얼이 더 좋지만 네가 좋다면 뭐..." 했다. 아기처럼 칭찬만 받고 싶은 딸은 시무룩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딸 방 문이 열리고 나오더니 한마디 하고 들어가 버렸다.

"자기가 원해서 해줬는데 애 기죽이지 마!"

동생을 빌어 속내를 비친다.




3달이 지나고 지난주 딸과 다시 여권을 만들러 갔다. 이번에는 지난번 마음 맞았던 착한 언니랑만 다시 일본에 간단다. 구청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며 말했다.


"지난번 다녀와서 참 길게 힘들었던 거 알지?

학원도 그만두고 많이 우울해하고.

엄마도 힘든 거 아는데 마음은 자기가 잘 지켜야 하더라. 

마음이 다치고 아물고 반복하다 보면,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잘 들여다보면,

마음이 다치기 시작하는 때를 알 수 있게 돼.

엄마는 그 순간이 느껴지면 상황을 멈추고 마음이 더 다치지 않도록 마음을 돌봐줘.

엄마는 그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너는 좀 더 빨리 마음을 잘 돌볼 수 있으면 좋겠어."


"응.

근데 아직은 힘들어. 그때도 일본에서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이 터지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


"힘든 거 알지. 

그렇게 경험하면서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더라. 

이번에는 마음 다치지 말고 즐겁게 다녀오면 좋겠다."


"응, 그럴 거야."




하루는 빠른데 딸의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간다.


< 엄마가 할 일 >

즉각 반응하지 말 것

그럼에도 노력한 것을 인정해 줄 것

사랑한다고 말해줄 것

소망을 놓지 말 것


나도

딸도 

주기를 지날 때마다 한 뼘씩 자라고 있다.



 우울증 딸과 책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를 쓴 후 딸이 ADHD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딸과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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