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겹 더 들춰보는 연애 이야기 (10)
너무 힘든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어디서든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고 싶어 믿을만한 친구나 지인에게 상황을 털어놓곤 했다. 하루는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두 사람은 건강한 관계가 아니네요.”
총체적이고 결정적인 선언이었다.
건강하지 못하다
곪을 대로 곪아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무척 속상했다.
굉장한 열등감이 몰려왔다.
나의 연애는 왜 건강하지 못할까? 남들은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까? 나는 왜 이 연애가 병들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과감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연애는 끝이 났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덕에 끝낸 건 아니다.
내 경험상 연애의 끝은 다 때가 있다. 어차피 안될 관계라고 해도, 또 그것을 본인이 알고 있다고 해도, 누가 옆에서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결별을 앞당기지는 못한다. 해볼 만큼 해봐야 때가 온다. 그때 헤어져야 아무 미련도 남지 않고 속이 시원하다.
헤어지고 나니 날아갈 것 같았다. 물론 갈등은 많았지만 좋은 순간들도 있었으니까 연애를 지속했을 텐데, 끝내고 나니까 그야말로 새롭게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면서 동시에 강해진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뭐지? 오랫동안 열탕에서 버티다가 냉탕에 뛰어들 때 느끼는 일시적인 상쾌함인가?'
그즈음 <동의보감>을 공부하다가 그 기분이 단지 기분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의 몸은 이물질이 침입하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염증이 생기고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고 열이 나고 콧물을 흘리고 가래가 끓는 증상들은 모두 내 몸에 침투한 생소하고 낯선 생명체에 반응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흔하게는 감기가 그러한데, 이런 현상을 큰 범위에서는 ‘병’이라고 일컫는다.
같은 이치로 내 삶에 낯선 존재가 들어오는 사건도 일종의 병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열병’이란 말은 시적인 은유에만 그치는 것 같지 않다.
‘타인’이라는 이질적 존재는 내 삶의 체계를 마구 흩트리고 공격한다. 완전히 생소한 한 생명체와 사귀는 일은 일종의 ‘투병’이다.
그런데 병에 걸리지 않는 게 꼭 최선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병은 면역체계를 훈련시키고 강화시킨다.
치명적인 정도가 아니라면 병을 겪으면서 우리의 몸은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에너지의 흐름이 재편되면서 더 건강한 몸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까닭에 어떤 분은 오랫동안 감기에 걸리지 않으면 찬물에 몸을 담그거나 찬바람을 쐬어서 일부러 감기를 겪는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몹시도 고단하고 힘겨웠던 연애를 끝냈을 때 나는 조금이나마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
이질적인 광기와 무절제와 결핍과 편견의 어지러운 침투에 맞서 싸우며 나의 내면의 힘은 조금씩 자라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앓는 게 두려워서 예방주사를 맞는다. 연애의 팁과 남녀관계의 정석과 경험자의 노하우를 미리 공부하고 연구하여 신중하게 준비한다.
안전한 방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직접 앓고 난 다음 나의 삶 속에 형성된 면역체계는 그만큼 더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허약할 때는 병에 자주 걸린다. 건강하지 못한 연애를 겪게 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건 내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힘들지만 병을 잘 치르면 된다. 호되게 앓고 나면 그 문제들은 하나씩 치유될 것이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혹은 병에 걸린 줄도 몰랐다면, 잠복해있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병을 겪어서 점차 강해지면 병에 잘 걸리지 않게 된다.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온 생명체는 싸워야 할 이물질이 아니라 나를 도우러 오는 또 다른 ‘나’가 된다.
그러니 병든 연애도 괜찮다. 다만 같은 병에 걸리지는 말자. 아픈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불치의 병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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