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냥의 5분 소설
그런데도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계속 책만 보더군요. 그러는 동안에도 놈은 계속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흘끔흘끔 아내를 훔쳐보았습니다. 안 되겠어, 조금만 더 하면 이번에는 꼭 한마디 해야지, 저는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마음을 알았을까요? 아내를 바라보다 잠시 후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은 사라졌습니다. 제풀에 지쳤나 봅니다. 거머리 같은 놈, 드디어 꺼졌군. 후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드디어 책을 다 골랐고 우리는 계산대로 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까 그 녀석이 책을 계산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녀석은 값을 다 치렀으면 빨리 꺼질 것이지 어쩐지 미적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지갑에 카드니 잔돈이니 이런 것들을 챙기는 척하면서, 산 책을 봉지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꾸물거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아내를 흘깃흘깃 곁눈질로 쳐다보기 바빴습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죠. 이럴 때 다른 남편들은 어떻게 합니까? 제가 버럭 화를 내는 것이 옳았을까요?
이쯤에선 아내도 어쩐지 불쾌함을 느꼈는지 그 예쁜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서렸습니다. 제가 잘 아는 표정이었습니다. 남자들의 뜻하지 않은 집요한 시선을 받을 때의 불유쾌한 그 감정..... 어쨌든 아내와 저는 빠르게 서점을 나왔습니다. 그랬는데 그 녀석이 이번에는 자기가 산 책을 가방에 넣기 위해 서점 문 앞에 주저앉아 가방을 열더니 정리를 하지 뭡니까! 겉으로 보기엔 가방을 싸고 있을 뿐인데 저는 녀석의 뻔한 속셈을 한 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내 아내를 뒤에서 훔쳐보고 싶은 거겠지! 어처구니없는 놈!' 제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녀석은 가방을 싸고 운동화 끈을 매는 척하더니 결국 우리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아내와 나란히 계단을 오르기 싫었습니다. 아내의 짧은 반바지. 아내의 다리. 아내의 엉덩이... 이런 것들을 녀석이 뒤에서 바라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내 뒤에 서서 계단을 올랐습니다. 녀석이 아내를 볼 수 없게 말이지요. 그런데도, 뭐랄까요. 녀석의 뜨끈한 시선은 제게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 이 계단만 끝나면 너란 놈과도 끝이다.... 조금만 참자 싶었습니다.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서점을 나와 얼마쯤 갔을까요? 이제는 녀석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거머리가 드디어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식료품을 사려고 슈퍼마켓에 들렀습니다. 한 십 오분쯤 지났을까요? 장을 다 본 후 슈퍼마켓에서 계산하려 돌아서는 순간, 저 멀리서 어떤 남자가 황급히 건물 벽 뒤로 숨는 게 보였습니다. 아아, 그놈이었습니다. 녀석은 거리를 두고 우리를 따라온 게 분명했습니다.
저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슈퍼를 나오며 결국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저놈 좀 봐, 아까 서점에서부터 계속 따라온 모양이야." 아내는 몹시 놀라더니 "정말? 왜 저래… 쳐다보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계산대에서 나 쳐다보던 사람 맞아?"라고 묻더군요. "계산대에서만 그런 게 아니야! 당신을 서점에서 내내 쳐다보고 있었다고!" 저는 씩씩거렸지요. 아내는 저를 달래며 미친놈이니 상관 말고 가자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기분이 몹시 상해서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녀석에게 뭐라 말이라도 하려고 성큼성큼 그쪽을 향했지요. 순간 아내가 제 팔을 꽉 붙잡았습니다. "가지 마. 모른 척해. 저러다 말겠지. 저런 놈들, 사이코야 건드리지 마." 아내의 눈은 몹시도 피곤해 보였습니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