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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육아시 2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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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Apr 30. 2024

도크


 겨울의 도크는 한기와 깡깡이 소리로 가득했다. 수리를 위해 진해 도크에 정박한 함선은 따개비와 녹으로 엉망진창이었고,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배 수리가 시작되었었다. 망치와 롤러를 들고 2달 남짓 거대한 철덩어리를 갈고닦았다.


 선외 작업을 할 때는 차가운 바람에 실린 소금기에 얼굴이 쩍쩍 갈라졌고, 선내 작업을 할 때는 그라인더가 만든 미세먼지와 사라지지 않는 페인트 냄새로 하루종일 목과 머리가 아팠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동료는 샤워를 할 때마다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배고픈 젊은이들을 한껏 갈아 넣은 배는 몇 달 후, 다시 힘차게 항해를 시작했다.


 "큰 배가 될 아이다."


 점과 사주를 믿지는 않지만 어떻게 좋은 기회가 생겨 아이의 삶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큰 배. 큰 사람이 되어 넓은 세계로 떠나는 삶은 모두가 바라는 길이건만, 이를 듣는 부모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다. 나 또한 이전의 세상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도착했다. 아기는 작은 아빠보다 조금 더 멀리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배는 튼튼한 상태로 떠나 초췌해진 다음에야 도크로 돌아온다. 멀리 떠날수록, 배가 오래될수록 도크 위에 올라가 있는 시간도 길어진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이별할 시간도 같이 길어진다. 어느새 몸을 휙휙 잘 뒤집는 아기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지금 이 상태에 머물렀으면 싶은 이기심이 불쑥 솟아오른다.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부모의 삭은 노는 도크를 지을 삽이 되었고, 우리의 홋줄은 아기를 지지할 안전망이 되었다. 우리는 아기의 출항과 귀항을 모두 기다릴 것이다. 너의 당당함에 슬퍼하고, 너의 초라함에 반가움을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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