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녀는 아 낳구 사흘이면 물질해수께."
엄마는 너를 낳고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단다. 한라산이 보이던 원룸은 너의 첫 집이자 방이었고 우린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살았어. 엄마는 자연주의 출산, 의학적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여 너를 낳기로 결정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너와 엄마 모두 건강했다. 엄마가 참으로 강한 게 너를 낳자마자 요란하게 울어대는 너를 품에 안고 환히 웃었단다. 너를 따라 아빠도 울었어. 엄마 홀로 울지 않고 너를 보며 웃었지 뭐냐.
너를 받아주신 원장님은 너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빠 붕어빵이네!"라고 말씀하셨고, 아빠가 분만실에 걸어놓은 그림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다 사진에 담아 가셨단다. 호숫가에서 처음 만난 수녀님이 너를 축복해 주실 때도 "아빠 붕어빵이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어. 너를 아기때부터 지켜보았던 작가님은 어느 날, 너를 붙잡고 아빠의 이름을 불러버렸단다. 캐나다에서 놀러 온 처형이 너를 보며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너는 아빠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니?
아빠는 네가 태어날 때까지 그다지 한 것이 없었단다. 진통이 시작된 날, 아빠는 밤 10시에 일이 끝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어. 하필 출산 준비를 돕기로 했던 둘라는 일이 있어 서울에 있었고. 헐레벌떡 짐을 챙기는 와중에도 아빠는 물감과 도화지를 빠뜨리지 않았어. 그런데 출산을 하는데 웬 물감이냐고? 너의 태반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엄마랑 미리 약속했거든. 지금 너의 방문 앞에 걸려있는 3장의 판화는 네가 태어난 직후에 아빠가 직접 찍은 것이란다.
어두웠던 병실, 커튼과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너는 우렁차게 첫울음을 터뜨렸단다. 양막이 늦게 터지는 바람에 엄마는 정말로 힘들어했어. 모두가 엄마를 돌보는 사이에 아빠는 너를 품에 안고 탯줄을 잘랐지. 너의 첫 생일도 출근을 해야 했지만 아이를 둘이나 낳은 보스가 배려를 해준 덕에 엄마와 너의 옆에 남아있을 수 있었어. 열 달 만에 홀로 잠든 엄마는 길고 깊은 낮잠에 빠져들었고 일어나자마자 한동안 먹지 못했던 초코 크림빵을 찾았단다. 배속에 있는 너의 체중이 쑥쑥 불어나는 바람에 한때 '수박 금지령'까지 내려졌었거든.
"제주도는 섬이라 흔들흔들거려 아기들을 구덕에 담아놓안."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제주 출신인 너를 키우기 위해서 우린 이곳저곳에서 육아 노하우를 동냥해야만 했어. 정이 많은 섬이고 마을과 가게마다 너의 엄마를 자처했던 고마운 인연들이 있었어. 그럼에도 네가 신생아일 때 엄마는 1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고, 너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빠에게 시원하게 오줌을 갈겨주곤 했지. 그래도 우린 행복했어. 우리는 하루살이도 아니고 한 시간 살이를 하며 네가 충분히 자라길 버티고 버티며 기다렸단다. 육아는 낯선 바다의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어.
네가 일어나면 아빠는 너를 들고 카페로 가. 네가 이유식을 먹는 동안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셨고. 밤이 되어 너와 엄마가 입을 벌리고 잠들면 아빠는 주방 구석에서 빨래 더미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단다.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는 올빼미형 인간이었는데 네가 태어난 이후에는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는 시간이 앞으로 당기고 있어. 아침잠이 많은 엄마가 100일째 되는 날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삼신상을 차렸단다. 우리는 삼신을 맞이하느라 추운 날씨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고 네가 축복을 받을 때까지 방 밖에서 조용히 기다렸지.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자장가를 듣던 아이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아빠가 되었을 때, <섬집아기>가 2절까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어. 우리는 서로를 기다리며 비슷하게 애달파하겠지만, 부모의 심정은 네가 부모가 된 다음에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우리의 바다에 온몸을 던져 뛰어들었고, 엄마와 아빠는 전 재산인 너를 품에 안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가고 있단다. 아빠로서 어느 정도의 노력을 했을지언정 진통을 홀로 참아낸 엄마처럼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기에 엄마의 바다와 아빠의 바다는 깊이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아. 깊이 자맥질을 하는 엄마가 부레 잃은 물고기가 되지 않을까, 아빠는 그것이 큰 걱정이야.
해변에 남은, 숨 가쁜 엄마의 발자국은 파도가 지워버렸을 테니 너의 눈엔 텅 빈 바구니만 보일지도 모르겠구나. 너의 눈에 보이지 않고 기억에 없다 하여 엄마와 아빠의 헌신이 사라지진 않겠다만, 그럼에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하나 남겨두려고 해. 엄마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 다가온 바람에 함께 맞설 가족이 생겼을 때 파도 소리에 흩어지던 오래된 자장가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