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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Oct 26. 2024

육지여인과 섬집아기

방사탑. 2022


"잠녀는 아 낳구 사흘이면 물질해수께."


 제주도의 오래된 속담에는 바다와 아이에게 단단히 얽힌 어미의 애환이 넘쳐흐를 만큼 가득 담겨있다. 오랜 진통 끝에 엄마가 된 잠녀는 사흘 동안 몸을 추스른 뒤, 아기를 구덕에 올려두고 바다로 떠나야 했다. 섬사람에게 바삐 찾아오는 철을 놓치는 일이란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일과 다름이 없었다. 집에 남겨진 갓난아이는 구덕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잠에 빠져든다. "제주도는 섬이라 흔들흔들거려 아기들을 구덕에 담아놓안." 아기를 돌봐준 제주 토박이 산후도우미님은 산에서 직접  통통한 고사리를 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미신이 짙게 남아있는 돌과 바람과 여인들의 섬에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미혹의 힘이 존재한다.


 국민 자장가인 <섬집아기>를 흥얼거리다 보면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채 잠든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런데 직접 아기를 키우며 자장가를 부르기 전까지는 몰랐던 2절에는 1절과는 전혀 다른 시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물질할 채비를 마친 잠녀는 한라산을 보며 설문대 할망에게 자신과 아이의 무탈을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바다의 시계를 따라 엄마가 물질을 하러 갈 때, 아빠는 태양의 일주를 쫓아 밭으로 목장으로 떠난다. 배가 고픈 아이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할 즈음 아빠는 구덕을 한 손에 쥐고 잠녀들의 쉼터인 불턱을 향해 털레털레 걸어간다. 아이가 먹을 것이라곤 어미의 젖이 전부였던 시절에는 모두가 부지런히 엄마의 꽁무니를 쫓아야만 했다. 불턱에는 막내 해녀가 피워놓은 모닥불로 이미 온기가 돌고 있었을 것이다. 아비와 자식은 손과 발을 녹이며 자맥질하는 어미를 바라본다. 모두가 똑같은 작업복을 입었지만 잠녀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가라앉고 솟구친다. 마지막 날숨이라 불리는 숨비소리가 살아나고 부서지는 파도를 타고 희미하게 들려온다.


 어미는 깊은 바다에서 아이의 울음소리 듣는다. *수애기 소리는 아니었을까? 자맥질을 할 때마다 고무 잠수복과 수압에 짓눌린 가슴에서 젖이 힘차게 소용돌이 침을 느낀다. 테왁이 반도 채워지지 않았지만 무거운 몸을 육지를 범하는 파도에 맡긴다. 현무암으로 대강 가려진 수유실에서 몸을 녹이며 젖을 먹인 어미는 다시 바다로 떠난다. 아비는 구덕을 들고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다시 노동이다. 변화무쌍한 바다는 잠녀들이 홀로 남아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가끔은 어린 추억이 잡념처럼 찾아와 호흡을 놓치기도 했을 것이다. 영영 푸를 바다를 헤엄치며 백발이 된 잠녀는 이전에도 그래왔듯이 테왁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간다. 테왁은 이제 바다로 가득 차있다. 잠녀의 아기는 진작에 섬을 떠났고 올레에는 뜨거운 아스팔트가 깔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찾아 바다를 건넌 남자와 여자는 삭아버린 홋줄의 끝자락으로 가득한 섬에서 가족을 꾸리게 되었다.


*수애기 : 돌고래를 이르는 제주 방언.


 아기 엄마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아내는 의학적 개입을 최소화 한채 나의 품에서 우리를 조금씩 닮은 아이를 낳았다(아이를 받아 준 원장님이 아빠와 붕어빵이라고 하긴 했지만). 간헐적으로 몰아치던 통증이 게으른 태풍이 되었을 때, 쉼 없이 신음을 토해내던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환히 웃었다. 태풍의 눈 속에선 천연덕스러운 바람과 햇빛이 커튼을 가볍게 흔들며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분만장에서 유일하게 찔끔찔끔 눈물을 흘린 나는 아이를 가슴팍에 올린 채 직접 탯줄을 잘랐고 아기의 첫 신생아실 입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기 엄마와 약속했던 대로 태반에 물감을 묻혀 여러 장의 판화를 찍어냈다. 그리고 하나의 수저로 식어버린 미역국을 나눠먹었다.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이주민 집안의 유일한 제주 토박이인 아기는 이곳 엄마들의 육아 노하우를 이리저리 이어 붙여 기르고 있다. 다행히 정이 많은 섬에서는 마을마다, 가게마다 엄마가 한 명씩 있었다. 도움의 손길들이 닿지 않은, 여인만이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짐들은 우리에게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모유 수유를 선택한 아내는 깊은 밤에도 1시간 이상 푹 잘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젖을 먹이는 아내의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아기는 쉼 없이 먹고 울고 싸고 오줌을 나의 얼굴에 갈겼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아이를 품은 채 녹초가 되어 있었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함께 바라보며 하루가 아닌, 다음 수유까지 남은 1시간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바다와 땅에서 멀어진 현대의 날품팔이 부모들은 직장-지옥에서 탈출하여 육아-전쟁에 참전한다. 육아를 시작하며 우리는 새로운 바다에 뛰어들었음을, 이전보다 크게 호흡하고 잡념을 거세게 떨쳐내야 제 때에 숨을 들이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새벽수유를 끝낸 엄마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면, 아빠는 아기를 품에 안고 유일하게 아기 의자가 있는 동네 카페의 2층에서 아기의 아침밥을 먹인다. 그리고 마지막 수유를 마친 아기와 엄마가 입을 벌린 채 깊은 잠에 빠져들면, 설거지 거리로 가득 쌓인 주방 구석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잡은 펜과 붓은 자꾸 눈물을 그렸다. 문득, 아내의 고단함이 나의 마음속으로 몰아칠 땐 생쌀을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아침잠이 많고 요리가 서툰 아내는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 새벽 5시에 삼신에게 음식을 바쳤다.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신이 찾아오기를, 그리고 아내의 음식을 먹으며 삼신이 아이를 축복하길 기다렸다. 아기가 배속의 어두운 바다에서 홀로 헤엄칠 때 열심히 불러주었던 노래는 이제 아기의 자장가가 되었다. 이제 아기는 아비와 어미의 품에 온몸을 던진다. 앞으로는 전 재산을 품에 안고 길을 걸어야 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신의 징벌은 끝나지 않는 노동이었다.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을 흘려야만 소산을 얻어 가족을 먹일 수 있었고 뱀에 꾐에 넘어간 와는 출산의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 전지전능한 신이 내린 징벌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미묘한 기울기가 존재했다. 남자가 이르게 떠나버린 땅에서는 여자가 모든 죗값을 온전히 치러야 했다. 따듯한 햇살과 바다를 사랑하던 아내조차 엄마가 되면서 나의 죄를 함께 짊어지게 되었다. 잠녀는 죽을 때까지 바다에 몸을 던져야 했고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남해 바다에 제주도를 쌓아 올린 설문대 할망은 자식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그 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슬피 울다 돌이 되어버린 영실의 오백 장군은 지금도 짙은 안개에 숨어 인간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아비로서 노력을 했을지언정 진통을 참아낸 아내처럼 명을 걸어본 적이 없기에, 나는 그녀가 몸을 던진 바다의 깊이를 헤아리기만 할 뿐이다. 나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넓은 해변을 지나 다시 바다로 뛰어드는 그녀를 바라본다. 여인은 자유를 잃었고 이곳 사람들이 원담이라 부르는 돌무더기 안에 갇힌 부레를 잃은 물고기가 되고 말았다. 다시는 심해와 원해로 떠날 수 없는. 


 아기도 부모가 되어 깨달을 것이다. 가난한 부모의 바구니가 가득 찰 수 없었던 이유와 거친 파도가 모래 위에 남겨진 숨 가쁜 발자국을 지워버렸음을. 우리처럼 바다를 건너며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때, 파도가 불러주던 자장가가 끝이 났음을.


빛이 들어오던 분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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