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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Dec 07. 2023

동백

 "집 안에 불이 환하게 켜진 기분이다."


 아빠들은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한 집을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사랑스러운 불빛이 분노로 가득 머금은 사이렌으로 돌변할 때가 많긴 하다만, 집에 나를 기다리는 귀여운 아기가 있다는 사실은 현관에서 숨을 고르며 오늘의 한숨을 모두 뱉어내는 어린 아빠의 구부러진 어깨를 빳빳하게 펼쳐준다. 아이는 돛을 밀어주는 따듯한 바람이다.  

 

 나는 사시사철 따듯한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사람들의 표현은 거칠지만 온화하고 따듯한 항구 도시에도 이례적으로 큰 눈이 내릴 때가 있다. 그런 겨울에는 동백꽃이 더욱 붉게 물들곤 했다. 바다를 건너 새로운 동네인 제주도에 뿌리를 내렸지만 부산과 비슷한 따듯한 날씨 덕에 동백꽃이 만발한 겨울의 풍경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제주는 어딘가 익숙한 새 고향이었다.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추운 겨울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의 태명도 자연스럽게 '동백'이 되었고 출생신고서 이름란에도 '동백', 이 두 글자를 적어 넣었다. 나의 이름에는 할아버지의 염원이 서려있다. 으뜸가는 재주가 되어라! 나는 아기의 이름에 타인의 염원이 아닌, 오롯이 아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리는 시작을 담기로 했다. 소중한 동백꽃을 잘 피워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이곳에서의 기반을 튼튼히 다져야 했다. 급히 새로운 직업을 찾았고 녹초가 되어 막차에 몸을 싣는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어둠마저 깔린 올레를 빙빙 돌다 보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도어락을 누를 때마다 봄을 두드리는 기분이다. 아기 엄마는 동백이가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귀여운 질투를 한다. 아이의 미소를 볼 때마다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작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태명은 이제 이름이 되었다. 나도 아빠라는 새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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