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만 있어서 무기력할 때 뭐하면서 보내는지 공유해주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구글 포토가 말을 걸었다.
‘작년 오늘을 살펴보세요.’
작년의 오늘(2019년 10월 8일) 사진에는 토끼가 있다.
퇴근길에 집 앞 놀이터에서 토끼 한 마리를 만났다. 작은 고양이쯤 되는 크기였고 멀리서 봐도 뽀송하고 건강한 모습에 잠시 산책을 나온 집토끼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며칠 후에도, 일주일 후에도 토끼는 아파트 주변을 맴돌았다. 여전히 건강한 모습에 다행이다 싶었고 그 골목을 지나갈 때면 오늘도 행운의 부적처럼 토끼를 만나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마 그렇게 한 두 달을 떠돌던 토끼는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바로 뒷 산에 사는 산토끼가 잠깐 내려온 것이 아닐까 싶다. 토끼가 겨울잠을 자기 전에 지금쯤 먹이를 찾아 내려오진 않을까.
그리고 50장 넘게 그린 스케치 사진이 있다. 생각해보니 쿠팡 이츠를 론칭하고 회고 글을 쓴 게 이때쯤이라니.
돌아보니 작년 이맘때는 고군분투하며 신규 서비스를 론칭하고 떨리고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재작년의 오늘(2018년 10월 8일) 사진에는 큰 개를 쓰다듬는 친한 동생이 있었다.
전 회사 근처로 놀러 온 전, 전 직장동료 동생과 함께 카페에 놀러 갔다. 그 시기에 다니는 회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시간이 맞으면 종종 밥을 먹으며 일상을 나누었다. 회사 근처에 사무실의 아래층을 카페로 쓰는 공간이었는데,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서인지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지인이 놀러 오면 나의 아지트 같은 그 카페를 소개해주었다. 벌써 잊은 지 2년이 되었는데 그 카페가 아직도 있을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3년 전 오늘(2017년 10월 8일) 사진에는 푸르게 빛나는 바다가 있었다.
꽃보다 누나 이후 모녀의 크로아티아 여행 붐이 일어났던 해였다. 엄마와 함께 큰 맘을 먹고 크로아티아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허도 없는 길치 뚜벅이가 배낭여행을 계획했고, 기차와 버스를 타고 짐을 끌고 다녔다.
역시나 역경도 많았지만 크로아티아의 푸른 바다를 보면 항상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다. 그런 바다를 지금까지 본 적 없었는데 물고기떼와 바닥이 보일만큼 투명하고 푸르렀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시간도 끝없이 흐르곤 했다. 만약 그때 가지 않았더라면 작년에도 올해도 어려웠을 것 같다.
덕분에 엄마는 가을 즈음이 되면 함께했던 크로아티아 여행이 떠오른다고 했다.
사진을 잘 남기지 않는 편인데, 기록했던 과거의 오늘 날들 덕에 이렇게 추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일도 없는 코로나 일상이지만 이것도 추억일 듯 기억하고 싶어 창문 밖 사진을 하나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