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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애 Jan 28. 2022

마음으로 책을 한 권 내고도 남았다.

마음으로는 책을 한 권 내고도 남았다.     

     

작년 한 해 동안 한 일은 강의와 여행 그리고 쉼, 세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코로나로 잠깐씩 강의가 멈출 때 외는 쉬지 않고 일했다. 고관절 수술 후에도 며칠 만에 강의했다. 수술 3일 후에 약속되어있던 진해 해군 간부 리더십 강의는 온라인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제외하고 모든 강의는 줌으로 변경해서 윗옷만 바꾸어 입고 멀쩡한 것처럼 강의했다. 강의 의뢰해주신 분들은 입원 중에 강의를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우리 대학원생들은 수술 후 휴강 없이 강의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열정과 긍정성에 감동하며 나를 꽤 괜찮은 선생으로 착각했고 그 후 학생들과 아주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수술한 상태로 일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마음은 어느 때 보다 행복했고 강의하는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 목발을 뺀 후에도 몇 시간씩 서 있기가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걸을 수 있을 때는 강의하기 위해 날아다녔다. 한 해가 강의로 시작해서 강의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수강자와 마음을 나누었던 한 해였다.     


사람 심리가 참 이상했다. 멀쩡할 때는 ‘여행 갈 수 있으면 가고 아님 말고’ 이런 마음이었는데 수술 후 움직임이 불편해지니 간절히 떠나고 싶어졌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야 한다. 목발을 짚고 제주도와 거제도 외도, 통영, 제천 등을 돌아다녔고 목발을 떼자마자 대관령, 선유도, 장자도, 강릉, 세종 등 전국을 틈만 나면 돌아다녔다. 동행이 있기도 했고 혼자이기도 했다. 함께하면 마음을 나누어서 행복했고, 혼자는 사유할 시간을 가져서 좋았다. 예전에는 머리가 복잡할 때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고는 했는데 지금은 즐기기 위해 혼자 떠난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 간절함이 왔듯이 노년의 시기에는 활동 영역이 좁아지고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는 놀고 싶지만 놀 수 없어서 얼마나 절망적인 마음일지 짐작이 간다. 나는 그 순간이 오면 지금의 추억을 그리며 웃으며 미소 지을 수 있기 위해 시간만 나면 떠나려 한다. 수술 경험이 없었다면 움직일 수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쉼..

참 좋아하는 단어이다. 강의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지만 쉼을 참 좋아한다. 좋은 말로 쉼이지만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게으름이다.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은 날은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 이불 속에서 뒹굴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폰을 갖고 논다. 이런 날은 대부분 이불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밥도 커피도 간식도 침실에서 해결하고 한 곳에 앉아서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데까지 피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작업실에서 쉼을 즐기지만, 늦가을부터 지금 같은 겨울이면 이불 밖은 위험한 사람이 된다. 이리 게으름을 피우다 강의 날이면 멀쩡해지고 딴사람이 된다. 게으름을 통해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라 게으름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사느라 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글쓰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강의에 미치고 여행에 미치고 게으름에 미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브런치에 글을 쓴 게 전부다. 마음으로는 책을 한 권 내고도 남았지만 쓸 수가 없었다. 글쓰기도 습관이라 쓰지 않으면 쓰기가 힘들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않는 이 게으름을 어찌해야 하나?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쓰시는 우리 작가님들도 이런 마음일 때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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