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제주의 시간
목요일 오전 강의 후 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브런치 작가님의 제주도 왕이메오름에 관한 글을 읽고 간절히 가고 싶었지만, 토요일 강의로 마음만 제주도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 호텔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강의 의뢰를 받으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일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느낄 만큼 일을 좋아하니 행복한 건 당연하고 좋아하는 일 하면서 경제적 여유까지 가지니 감사할 일이다.
제주도에 간절히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날 오후에 토요일 강의가 취소되었다.
“앗싸!” “앗싸!”
강의 의뢰가 올 때보다 더 기뻐서 날뛰었다. 간절한 순간에 강의가 취소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곧 입대할 아들에게 “추억 쌓기 제주여행 어때?” 물었더니 함께 가겠다고 했다. 비행기 표를 끊고 호텔을 예약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표는 끊지 않았다. 월요일까지 여유 있으니 오고 싶을 때 올라오면 된다.
이번 제주여행은 여유롭고 느릿느릿 평온한 상태로 서울시민이 아니라 제주도민처럼 있다 가려 한다.
작년 제주여행은 일주일 동안 제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관광했다. 그때는 그 재미로 다녔지만, 이번 제주여행은 호텔 주위를 산책하거나 재래시장이나 바닷가에 가서 바다 구경 실컷 하거나 호텔 방에서 글 쓰며 여유롭게 지내려고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을 본 아들 “엄마, 이번 여행 완전 무계획이구나.”
나는 “빙고”를 외치며 무계획 속에 계획이 다 있다고 답했다.
제주공항 근처에 숙소를 얻었고 도착하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동문재래시장에 갔다. 시장 구경하다 불쇼하는 곳에 정신 팔려 랍스터와 오징어버터구이 세트를 샀다. 그 광경을 오래 구경했다면 랍스터 안 사면 양심 없는 사람으로 보일 듯하다. 그만큼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서 쇼했다. 최근에 만난 사람 중 자기 일에 최고의 열정과 몰입을 보인 분이다. 저런 열정이라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분을 보고 강의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분처럼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나?’
부끄럽다. 난 그 정도는 아니다. 가끔은 습관처럼 강의할 때도 있고 힘들 때는 에너지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빼고 하기도 하며 몸 상태에 따라서 꼼수를 쓰기도 한다. 업에 대해 완벽한 몰입도를 보인 그분에게 존경을 보내며 나의 강의상태를 점검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을 제대로 느끼려면 시장만 한 곳은 없다. 살아서 건강하게 숨 쉬는 곳인 동문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며 나의 업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고 제주항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커먼 밤바다에 떠 있는 배들이 한 폭의 수채화같이 정적이다. 어둠 속에 아들과 나만 살아 있는 듯 움직인다. 조용한 우리들의 움직임 속에 많은 마음이 오가며 제주도의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