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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왜 책을 안 읽을까요?

아이가 스스로 동화책을 읽게 되기까지

by 릴리포레relifore

1학년 담임 교사로서 학부모 상담을 했을 때나 여러 초등학교에서 문해력 관련 학부모 강의를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 아이는 왜 책을 안 읽을까요?"

"그림책을 많이 사줬는데 한번 보고 또 읽지를 않아요."

"이제 동화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읽혀야 하는 지를 모르겠어요. 그림책은 읽어주면 되는데 동화책은 마냥 읽어줄 수는 없으니까요."

"흔한 남매같은 만화책만 읽고 줄글책은 읽지 않으려고 해요."

"책을 너무 느리게 읽어요."


이런 질문들을 모아 다시 생각해 보면 학부모님들이 독서에 대해 갖고 계신 '이상향'들이 보이더라고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는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기이다.
-만화책만 읽는 것은 좋은 독서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으면 좋겠다.
-아이가 다양한 책을 읽으면 좋겠다.
-집에 있는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좋겠다.
-책은 빨리 읽는 것이 좋은 것이다.

어떠세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앞으로도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팁을 제공해 드릴 생각이지만, 오늘은 양육자분들의 고민 중에서 아이 독서 교육의 시작이 되는 부분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바로 "우리 아이는 왜 책을 안 읽을까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유아 시기 그림책 읽어주기는 필요한 경험입니다(이전 글 참조). 유아 시기 그림책을 읽어줄 때 '아이가 선택한' 그림책을 '매일'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은 제가 많이 강조하고 있는 책 육아 방법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우선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선택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예요. 매번 수동적으로 엄마나 아빠가 선택해 준 그림책을 듣기만 했던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어도 자신이 책을 선택하는 것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려서 그림책을 '제대로' 생각해서 고른 느낌이 들지 않더라도 아이가 선택한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이는 점차 더 많은 그림책을 골라 오기 시작합니다. 그냥 무심코 집어 들다가 표지도 보고, 책장을 넘겨서 그림도 보고 그러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좀 더 크면 자신이 선택한 그림책의 재미에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점점 책을 고르는 데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또 양육자가 '매일' 그림책을 읽어 준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렇게 유아 시기를 보낸 아이는 매일 책을 읽는다는 루틴에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가서도 동화책을 매일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이지요.


또 동화책을 스스로 읽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한글 해득이라는 글자 해독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글자와 소리를 대응시켜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수 있게 되면, 이후 아이는 그 소리들의 덩어리가 하나의 낱말을 이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자신의 머릿속에서 해당되는 낱말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문장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독해 단계로 나아가며 비로소 읽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어휘에 대한 노출이 적고 양육자와 함께 글을 읽어 본 경험이 적었다면 글자를 읽게 되어도 새로운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 지 모르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죠(우리가 조금 어려운 영어책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파닉스를 통해 영어를 읽어나가기는 하지만, 어려운 어휘가 등장하거나 문장이 길어지면 계속 반복해서 한 문장을 읽게 되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아하!'하고 바로 그 어휘나 문장의 의미가 떠오르지 않지요.).

반대로 어휘도 많이 알고 글의 내용 이해는 잘하지만 글자를 읽어 나가는 속도가 너무 느려도 같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정도는 글자 읽는 속도가 붙어야 자신이 방금 읽은 글자들의 연합이 한 낱말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지요.

그래서 일단 양육자와 그림책과 같은 글을 읽어 본 경험이 바탕이 되고, 그 이후 한글 해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독과 독해를 모두 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가 양육자와 함께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많고 스스로 한글을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더라도, 초등 저학년 동화책 독서는 또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해야만 합니다. 이번에는 '스스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는 건데요. 아무래도 그림책과 다른 크기, 두꺼워진 두께, 책장을 넘겨 보면 더 작아진 글자와 많아진 글밥, 적어진 그림을 보면서 아이는 그동안 읽었던 그림책과 다른 이질감을 느끼고 일종의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아이가 동화책을 스스로 읽는 것에 대한 이질감과 거부감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동화책에 '재미'를 찾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공'적인 읽기 경험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동화책의 재미를 알려주려면, 가장 쉽게 드는 생각은 재미있는 동화책 리스트를 주고 아이에게 읽으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동화책 리스트를 찾아 책을 아이 앞에 쭉 꽂아 놓고 아이가 재미있게 동화책을 읽는다면 참 좋겠죠? 동화책 독서교육을 시작하는 가정에서 많이들 이렇게 접근하십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요? 잘 읽는 아이도 있지만, 몇 장 넘겨 보고 재미없다며 책을 덮어 버리는 답답한 순간을 목격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또 몇 장 넘기는 것은 고사하고 책 표지만 보고 재미없을 것 같다며 손도 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요(제 경험이기도 합니다.ㅠㅠ). 이런 식으로 재미있다는 동화책을 많이 갖다 줘도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펼쳐집니다. (유튜브나 게임이 훨씬 재미있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는 재미를 찾는 것이 더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큰 양육자의 독서지도가 필요하지요.)


그렇다면 아이들은 재미있는 책을 갖다 줘도 스스로 재미를 느끼며 책을 읽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동화책 읽기에 대한 '성공 경험'이 함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권의 동화책을 끝까지 읽어 본 경험을 가진 아이만이 그 책에 대해 제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전 그림책 단계에서는 엄마나 아빠가 재미있는 그림책을 끝까지 읽어주기만 해도 아이들이 쉽게 재미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단계부터는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그 힘든 일을 끝까지 해내야만 합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씨도 책에 재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재미의 진입 장벽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몸에 안 좋고 정신에 안 좋은 재미일수록 처음부터 재미있어요. 상대적으로 어떤 재미의 단계로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재미라기 보다는 고행 같고 공부같은 것일수록 그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신세계가 열리는 겁니다. 독서가 그러한데요, 책을 재미로 느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단위 시간이 있습니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글도 짧아 보이고, 책의 두께도 얇아 보이지만 동화책을 처음 접하는 아이에게는 그림책에서 맛보지 못한 어려움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문제지를 받은 기분이겠지요. 하지만 이 어려워 보이는 문제지를 직접 풀어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감도 생기고, 책을 완독함으로써 그 책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니까요. 그 전에 고행과도 같은 한 장 한 장 책장 넘기기를 반드시 스스로 해내야만 합니다.


사실 독서라는 것이 꼭 완독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모든 책을 다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스스로 책을 읽게 된 후의 이야기이고, 지금 막 '스스로' 독서를 시작하는 아이라면 조금 더 고행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줄넘기에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엄청 느리더라도 줄을 한 번 두 번 넘어보는 경험이 필수적이고, 운전에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도 처음에 엑셀을 밟으며 핸들을 돌리고 여러 개의 거울을 보는 연습이 필수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잘하게 된 일일지라도, 처음 배울 때 고행이라고 느낄만한 것들을 무던히 겪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완독 강요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요구하지 않아도 동화책 읽기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큽니다. 그렇기에 저는 초기 동화책 독서 지도에서 '3, 30 지도법'이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선 한 책당 30쪽 정도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 몇 장만 읽는 것은 그 책이 전하는 이야기의 바다에 발끝도 담가보지 못한 수준이니까요. 선택된 책에 30페이지 정도는 꾹 참고 읽는 노력이라는 선물을 주도록 지도해 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포기한 책이 3권 이상 되지 않도록, 3권 중 한 권은 끝까지 읽는 독서 지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아이는 실패 경험 대신 성공 경험이 계속 쌓이게 되고 책의 재미를 스스로 느끼는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책에게 30페이지는 읽기를 할애할 것,
그리고 고른 3권 중 한 권은 꼭 끝까지 읽을 것

읽기에서의 마태효과(Matthew effect)는 매우 유명한 말입니다.


이 용어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25장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읽기에서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말합니다. 읽기 발달에서 실패를 경험한 아이는 읽기를 싫어하게 되며 이후 읽기에 계속 어려움을 겪고, 성공을 경험한 아이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른 읽기에 도전하게 되고 또 다른 성공을 함으로써 읽기 능력이 계속 자라난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기에 초기 동화책 독서 지도에서 실패 경험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3, 30 지도법'을 적용해서 빠른 읽기 성공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읽기에 재미를 찾기를 바랍니다. 점차 성공 경험이 쌓인 아이는 독서에 재미를 찾아 끝내 스스로 동화책을 찾아 읽는 아이, 능동적인 독자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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