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시기 그림책 읽어주기의 힘
저는 두 아이 모두 그림책으로 육아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었어요. 돌 전부터 시작해서 7살때까지는 매일 아이가 골라온 그림책을 잠자리에서 읽어 주었습니다. 그덕에 두 아이 모두 책의 역할이나 읽는 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익히고, 집에서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한글을 웬만큼 안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제가 경험으로 알게 된 가정에서 그림책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문해력 지도에 대해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하며 이론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학교에서 만난 1학년 아이들과는 매년 그림책을 100권 넘게 함께 읽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림책 육아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요즘도 계속 집과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답니다. 요즘은 맨땅에 헤딩하듯 오랜 기간 배우고 익힌 그림책 육아의 지식과 경험들을 <문해력 그림책 100>이라는 그림책 육아서적과 한겨레 '그림책 읽어주는 선생님' 연재 기사를 쓰며 많은 가정에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 하나 시행착오를 하며 어렵게 익혔지만 다른 부모님들은 쉽게 익히고 그 덕에 많은 가정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문해력 성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그림책은 주로 유아시기 아이들을 대상으로 펴낸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을 말합니다. 요즘은 청소년, 나아가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철학적 가치가 담긴 그림책들도 많긴 하지만, 시중에서 팔리는 그림책의 대부분은 유아기 아이를 위한 구성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영아 시기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책 겉표지부터 책장 하나 하나 딱딱하고 두껍게 만든 보드북이나 다양한 소리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헝겊 그림책, 목욕을 함께 할 수 있는 방수 그림책이 있고, 그 이후의 유아들은 판형이 크고 표지만 딱딱한 양장본 그림책들을 읽으면 됩니다. 그림책은 그림이 많아 아이들이 직접 글을 읽지 못해도 양육자가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충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이 시기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나 주제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유아 시기 아이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랍니다. 그러니까 결국,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곁에 장난감처럼 놓아주어 아이가 물고 빨고 만지며 함께 놀 수 있고, 양육자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 보고 함께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재미있게 유아 시기 문해력을 성장시키는 책이 그림책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이의 유아시기 그림책이 중요한 걸까요?
제 전작 <문해력 그림책 100>에 그 내용을 다루었는데, 그 일부를 가져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그림책은 아이 스스로 '독해'를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으로 의미를 구성하는데, 그림이 많은 구성을 차지하기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도 양육자가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가끔은 글에 없는 정보를 그림이 담고 있거나 그림이 글과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그림책도 있어서, 아이들은 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용도 파악하며 숨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지요.
둘째로 그림책에는 다양한 어휘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어휘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는 환경에 꾸준히 노출되어야 합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 만으로 아이들은 아주 많고 다양한 어휘에 노출되게 됩니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낱말 외에도 의성어나 의태어,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도 그림책에 다채롭게 등장하게 되니까요. 아이들은 양육자와 그림책을 읽으며 다양한 어휘에 노출되며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신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림책에서 어휘를 배우는 것과 따로 떼어서 공부하는 것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를 한 번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 같아요. 이를 위해 영어 단어를 따로 공부하고 외우는 것도 도움을 받지만, 막상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게 되면 문장이 아닌 단어만 튀어나오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다양하게 읽은 아이들은 그림책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어휘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필요한 상황에 알맞게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책 안 맥락이 있는 상황에 어휘가 등장하는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익혔기 때문이죠.
셋째로 다양한 배경지식을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는 자기 머릿 속에 있는 배경지식이라는 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배경지식이 많은 사람은 글을 훨씬 잘 이해하고 빨리 읽을 수 있어요. 한번 야구 경기에 관한 전문적인 기사를 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야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과 야구에 관심이 많은 분이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누가 더 이해를 잘 하게 될까요? 이미 다양한 야구 규칙, 용어나 선수들을 머릿속에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빠르게 읽으면서도 이해를 잘하게 될 겁니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는 것들을 그림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보며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답니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유아 시기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문해력 발달에 중요한 뿌리를 만들어 주게 되는데요. 지금까지 아이에게 그림책을 잘 읽어주신 양육자 분들이라면, 아이가 8살~9살이 되었을 때쯤 동화책의 세계로 조금씩 발을 넓혀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제대로 그림책을 맛보지 못해서 아직 그림책의 맛에도 빠져보지 못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마 좀 더 글밥이 많은 동화책을 먼저 주었다가는 재미도 느끼지 못한 채 도망을 칠 확률이 커질 거예요. 그래서 무턱대고 8살이라고,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갑자기 동화책으로 시작하는 것은 조금은 위험한 방법일 수 있어요. 그림책에 비해 글밥이 많고 내용도 조금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본 과정 없이 심화 과정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그림책에 빠져보지 못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는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져 보는 경험을 먼저 추천합니다. 재미있는 그림책은 제 전작이나 한겨레 '그림책 읽어주는 선생님' 기사에 많이 소개해 놓았어요(다른 그림책 추천을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하나 하나 함께 읽어주시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눠 보세요. 그림책을 단순히 100권, 200권 읽는 경험보다도 양육자의 곁에 앉아서 조근조근 그림책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대화를 나눠보는 경험을 많이 하길 바랍니다. 이런 양질의 문해 경험들이 모여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의 바탕을 튼튼하게 해줄 수 있어요. 그렇게 문해력의 뿌리가 자란 상태에서 동화책의 세계에 입문하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