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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어떤 책을 골라 줘야 할까요?

찍게 하지 말고, 선택지를 주자!

by 릴리포레relifore


많은 독서 교육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고른 책이 독서 동기를 높입니다.'


00학년 권장도서나 추천 도서 목록에 의지해서 아이에게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이를 책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이지요.


저도 역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림책을 주로 읽는 유아 시기, 아이를 도서관이나 서점에 데리고 가면 아이는 모든 것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한 권 골라 오는 것은 아이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지요. 그리고 나면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아이는 부담 없이 즐겁게 책을 고르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여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책을 골라 왔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그림책을 스스로 고르고 재미있게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그림책의 세계에 발을 담글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그림책은 시리즈를 더 고른다거나 해당 작품을 쓴 작가의 다른 그림책을 읽어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림책의 선택지를 늘려 갔습니다. 그렇게 그림책을 열심히 읽어(엄마와 함께)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서 충분히 둘러보고 함께 표지를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어렵지 않게 그림책을 골라 왔습니다. 역시 스스로 고른 책은 끝까지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고, "엄마, 이거 내가 골랐는데 재미있지?" 하면서 으쓱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가정에서의 독서교육이 성공적으로 흘러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동화책에 입문시키면 알아서 스스로 잘 읽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동화책을 스스로 읽는 시기가 되어서는
다른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그림책을 읽을 때처럼 도서관이나 서점에 데려가 스스로 책을 골라보라고 하면 책의 일러스트만 보거나 캐릭터 위주로(그림책 고를 때랑 비슷한 선택기준으로)만 동화책을 고르더라고요. 그렇게 고른 책이 글밥이 생각보다 많거나 안에 그림이 많이 없으면 읽으려는 동기가 사라진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 권을 완독 하는 일 자체가 힘들어졌죠. 성공 경험이 쌓이지 않으니 스스로 하는 독서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동화책에 대해서 잘 모를 때는 아이에게 선택지를 주기가 어렵더라고요. 도서관의 아동을 위한 동화책 코너는 그림책 코너보다도 훨씬 방대했고, 서점에 가면 캐릭터 위주의 동화책만 잔뜩 진열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인 저 조차도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상황에
아이를 홀로 던져 놓는 것은
그야말로 망망대해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격이었습니다.



이때, 독서교육 연구자인 김은하 작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에서 저자는 스스로 고른 책이 읽기 동기를 높인다는 데에는 역시 동의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읽기 목적이나 수준에 적합한 책을 고르지 못하는 경우를 들며 '찍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선택하도록 돕자'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선택은 선택지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선택할 책이 무엇으로 담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아야 고르는 일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 배우 오디션을 하는데 처음 본 신인배우의 이름만 보여 주면, 누가 연기를 잘하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보지 못한 채, 이름이 주는 인상만으로 가늠할 따름입니다. 감으로 찍는 거죠. 반면에, 그들의 연기 몇 장면을 볼 수 있다면, 이들의 연기를 봐 왔던 누군가가 이들을 소개해 줄 수 있다면, 영화감독은 이들 가운데 누가 내 영화에 적합한지 바로 선택할 수가 있지요. 선택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 비로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의미 있는 선택은 정보에 바탕을 둔 선택"이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책의 저자와 제목만 열거해 주며 이 가운데서 읽어 보라고 하는 것은 선택보다는 찍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가 아무거나 찍지 않고 원하는 책을 선택하게 하려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정보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엄마인 제가 먼저 동화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제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정보를 바탕으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죠. 그야말로 다양한 추천 도서들이 마구잡이로 퍼져 있지만, 처음 스스로 읽기를 시작하는 아이가 재미를 찾을만한 목록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1학년을 위한 추천이었는데 글밥이 3학년 이상 수준인 추천 도서 목록도 있었고, 너무 오래된 동화책이라 우리 아이의 흥미를 잡아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권위 있는 기관 등에서 추천 도서 목록을 여러 개 찾아서 종이에 적어두고, 신간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저만의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이에게 추천 도서 목록을 다 읽게 함이 아니라, 이 가운데에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제가 먼저 읽어서 아이에게 자세히 정보를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아무거나 찍어서 실패하지 않고, 책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흥미와 책의 정보를 비교하며 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죠. 그렇게 되자 완독 하는 책의 권수가 늘어가고, 그에 따라 성공 경험이 쌓이며 읽기에서의 자기 효능감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읽기도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의 '매튜 이펙트'가 작동하는 영역이라,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더 책을 많이, 잘 읽게 됩니다. 그렇게 선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1학년인 둘째 아이뿐 아니라, 5학년인 첫째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더군요. 제가 고학년인 아이의 특성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기 시작하자 첫째 아이도 잠시 잃고 있던 책의 흥미가 다시 살아난 듯 보였습니다.

"엄마가 추천해 준 책 재미있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골랐어."

그렇게 첫째 아이의 성공적인 독서 경험도 다시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연재에서 앞으로 18년 차 초등교사이자 초기 문해력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는, 제가 먼저 읽고 추천하는 도서를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부모님들은 편하게 아이에게 선택지를 제공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읽는 책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추천 도서 목록을 억지로 읽게 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책을 훨씬 재미있게 성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기정사실과도 같은 연구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때 스스로 아무거나 선택하게 만들면 결국 독서 실패로 이어진다는 것을 제 경험에서 실제로 많이 느꼈어요. 위에서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거나 찍게 만들면 결국 읽기는 실패로 이어지고, 결국 많은 부모님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됩니다.


"우리 아이가 0000과 같은 학습만화만 읽고 있는데 이것도 괜찮은 건가요? 독서는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스스로 선택을 하라고 하니까 아무것도 선택을 못해요."


성공적인 읽기 독립을 위해, 우리 아이를 자발적인 독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가 흥미를 느낄만한 좋은 동화책 선택지들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 안에서 안전하게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독서 동기를 유의미하게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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