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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아이가 학습 만화만 읽는데 괜찮나요?

학습 만화에만 빠진 아이들을 위하여

by 릴리포레relifore
선생님, 학습 만화만 읽는데 괜찮나요?
선생님, 학습 만화 읽혀도 되나요?


위의 질문들은 작년과 올해 초등 1학년 담임을 하면서, 혹은 다른 초등학교에서 문해력 강의를 하면서 만난 양육자분들께서 가장 많이 하신 질문 중 하나입니다.


알라딘, yes24와 같은 인터넷 서점 유아동 베스트셀러만 살짝 훑어보아도, 초등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이 실제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만 봐도 정말 많은 아이들이 ‘흔한 남매’ 시리즈와 같은 학습 만화류를 읽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제가 다른 책을 슬쩍 권해 보아도 “이게 재미있어요! “하면서 같은 시리즈 책만 선택하는 친구가 꽤 많았거든요.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재미있어하면서도 스스로 책을 읽는 시간이 오면 학습 만화만 펼치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양육자분들이 이런 현상이 괜찮은 건지 걱정을 하고 계시는 것에 공감이

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왜 이토록
학습 만화를
좋아하는 걸까요?

우선, 그 이유로 재미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학습 만화는 이미 유튜브 등으로 친숙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 개그 코드나 유행어 등이 나와 직관적인 재미를 유발합니다.

또, 이해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스토리 구성이 단조로우면서도 글뿐만 아니라 그림이 제공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용을 이해하기가 용이합니다. 제가 교육 대학원에서 ‘초기 문해력(탄생~초등 저학년까지의 문해력 발달 시기)’을 공부하며 만난, 읽기 발달이 또래에 비해 느린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 본 경험을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책 읽기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로 인기있는 학습 만화의 제목만 대곤 했습니다. 제대로 보면 글을 읽는 대신 그림만 보며 재미를 찾은 것이었는데, 학습 만화는 글자를 읽으며 제대로 글을 이해하지 않아도 그림으로 대충 의미 넘겨 짚기가 가능하거든요.

이렇게 학습 만화는 재미를 흠뻑 느끼면서도 책을 읽었다는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으니 아이들이 쉽게 빠져드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학습 만화의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크라센의 읽기 혁명>의 저자 유명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 교수는 "만화책만 읽어도 어느 정도 언어 기능과 리터러시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라고 전합니다. 또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의 저자 나민애 교수도 학습 만화를 읽으면서 쉽게 배경지식을 쌓기 좋다는 이점을 들며 "얕은 지식이라고 해도 그것이 관심의 불씨가 되어주면 긍정적이다."라는 학습 만화에 대한 절충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독서 교육 연구가 김은하 작가도 저서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에서 학습 만화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화책은 대사, 생각, 느낌이 대개 구어체로 표현됩니다. 구어체는 문어체와 달리, 비교적 길지 않은 문장으로 일상의 표현들을 주로 담으며 리드미컬한 특성이 있지요. 따라서 정보 전달력이 높습니다."


이런 여러 독서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학습 만화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림이 같은 프레임 안에 글과 대응되기 때문에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 다양한 배경 지식을 쌓기에 용이하다.
- 책장을 넘기는 것, 책을 읽어나가는 방향 등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문해력의 뿌리를 쌓을 수 있다.
- 다양한 글자체, 글자의 크기, 진하기, 기울기, 배치, 색깔, 그림 등의 만화 표현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현대 사회에 필요한 다중 문해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 책의 재미를 찾을 수 있고, 읽기 동기를 유발한다.
- 좀 더 어려운 읽기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학습 만화만 읽으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앞서 알아본 것처럼 학습 만화는 일상생활 속의 구어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 책을 읽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입니다.", “~있습니다.‘ 등 딱딱한 책의 언어(문어체)에 익숙해지기 어렵다는 뜻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학습 만화와 같은 만화책에만 익숙한 친구들은 긴 문장, 복잡한 문장이 문어체로 적혀 있는 줄글책은 낯설고 어렵게 느끼게 됩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림만 보며 그 책에서 얻어야 하는 의미마저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익살스러운 그림이나 개그 요소 정도만을 가지고 재미만 찾을 뿐 제대로 책을 읽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데요.

'좀 더 어려운 읽기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화책의 장점을 잘 살려 줄글책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 친구들은 괜찮지만, 학습 만화 읽기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아이들은 결국 윗 단계의 문해력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문해력 발달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면서, 만화책만 계속 찾는 편독의 늪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습 만화만 읽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엄마표’ 독서 교육을 하면 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만화책과 줄글책(동화책)의 읽기를 비교했을 때, 줄글책의 비율이 훨씬 높은 독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습 만화를 여가 시간에 보는 것은 허용하되, 동화책과 같은 줄글책을 만화책에 비해 많이 읽어야 높은 줄글책 읽기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학년이 보는 동화책엔 그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글밥도 적지만, 3~4학년이 보는 동화책부터는 그림도 적게 나오고, 책의 두께도 두꺼워집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 개념, 어휘도 좀 더 어려워지며 문장의 길이도 길고 복잡해집니다. 학교에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서에서 어려운 어휘와 개념이 등장하지요. 이런 책들을 나이에 알맞게 읽어 나가려면 저학년 시기 다양한 어휘와 문어체가 등장하는 동화책의 재미에 빠지고 문해력을 그 시기에 맞게 발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다양한 책의 재미에 빠지면서 숙련되고 능동적인 독자가 된다면 이후에는 학습 만화를 어느 정도 읽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를 위해 만화책처럼 재미있는 줄글책을 소개해주세요(재미있는 동화책은 이후의 연재에서 소개됩니다).


둘째, 학습 만화의 질을 양육자가 평가해서 추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직관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학습 만화의 탈을 쓴 만화책이 아닌, 만화의 내용이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을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든지, 이후 읽기를 위한 배경지식을 쌓기에 적합하다든지, 표현 방식이 다채롭게 펼쳐진다든지 하는 만화책을 다양한 주제로 추천해 주시면 좋습니다. 신화, 한자, 과학 지식, 어휘, 속담, 관용어 등의 주제를 잘 담고 있는 만화책은 재미와 배경지식 쌓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웬만큼 잡을 수 있습니다.


셋째, 아이에게 그래픽노블을 소개해 주세요. 언뜻 만화책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그래픽노블은 만화와 동화의 중간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나아가는 데 쉽고 재미있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초등 교사인 이시내 작가는 저서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동화책 200>에서 "그래픽노블은 문학적 가치가 높고, 서사의 중심이 뚜렷한 작품을 말한다."며 만화와 그래픽 노블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데, 해외 유명 문학상에서 다양한 그래픽노블이 수상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문학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그래픽노블에는 에런 블레이비 작가의 <배드 가이즈> 시리즈, 김경수 작가의 <코드네임> 시리즈 등이 있으니 아이에게 소개해 보세요(자세한 책 추천은 이후 연재에서 이어집니다).


결국, 학습 만화도 독서가 되게 하려면
저학년 시기
양육자님의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아이가 학습 만화를 보며 다양한 지식을 뽐낼 때 무작정 칭찬만 하게 되면, 이후 읽기에 독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기만 했던 아이가 스스로 읽는 독서의 단계로 접어들 무렵,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나아갈 무렵, 학습 만화와 같은 만화책 읽기는 분명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학습 만화만 주야장천 읽는 아이는 늘 제자리의 문해력 수준을 가지고 또래의 읽기를 따라가기 힘들어집니다.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나아가는 통로, 줄글책을 읽다가 잠시 재미와 정보를 찾는 용도로 영리하게 학습 만화를 활용할 수 있도록 양육자분들이 꼭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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