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입학할 때 한글 떼고 가야 하나요?

초기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

by 릴리포레relifore

교사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해 마다 이 즈음(입학 시기 전)이면 많이 듣는 질문이 있어요.


그건 바로,

"선생님, 입학할 때 한글 떼고 가야 하나요?"

, 라는 질문입니다.


교육과정에서 초반 한글교육에 할애되는 시수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어느 정도 한글을 알고 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솔직한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00 학습지로 공부하고 가는 게 좋을까요? 라고 후속 질문이 들어오면 한참을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초기문해력을 자세히 공부하게 되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이제는 조금은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아이가 어느 정도 학습할 준비가 된 다음에 읽기 지도를 하는 것이 좋다는 성숙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발생적 문해력이라는 획기적인 관점이 대두된 다음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발생적 문해력의 은유적 표현으로 문해력의 뿌리라는 말도 사용되고 있는데, 식물의 뿌리가 흙 아래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문해력의 뿌리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점진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이런 문해력의 뿌리는 유아기에 굉장히 중요한데, 여기에는 가정 문해환경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다양한 문해 환경에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의미있게 성인과의 문해활동하는 경험들이 모여 지속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라일리(Riley, 1996)의 연구 결과를 보면 입학 직후 만 5세 아이들의 교실에서 5년 정도의 발달 격차가 발견된다고 보고 되었습니다. 이런 격차는 계속적인 읽기 발달 격차를 낳게 되는데 그것을 읽기에서의 '마태효과'라고 표현해요. 이 용어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에서 따온 말로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말합니다. 교육에도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 참 안타깝고 슬픈 현실입니다.


기존의 패러다임 대로라면 8세가 한글 교육(읽기 교육)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아까 말씀드린대로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문해력의 뿌리가 자라기 때문에 사실 8세는 초기 문해력(유아시기 문해력)의 완성 단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초기문해력 시기에서 알아야 할 것들을 완수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용이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더욱 중요하죠.


그렇다면 한글 교육을 넘어 초기문해력을 가정에서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을까요? 00학습지로 ㄱ부터 ㅎ까지 단모음에서 이중모음까지 쓰고, 파닉스로 한 글자씩 책을 읽어낸다면 안심할 수 있는 걸까요?

사실 이렇게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현재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이가 이런 것을 힘겨워 한다면 오히려 읽기에 대한 반감과 학습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공부 방법입니다.(아이가 하고 싶어하고, 즐거워 한다면 아이가 힘들어 하지 않는 정도는 괜찮겠지만요.)


읽기는 음소인식, 글자-소리 대응, 유창성 등의 해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이해인 독해로 나아가야 하는 복잡한 과정입니다.(이미 자동화 단계에 이른 우리 어른들은 그 초기 읽기 단계의 어려운 과정을 모두 잊었겠지만.) 여러 광고에서 한글 낱말 카드를 파닉스적으로 빠르게 읽는 아이들이 나와서 여러 어머니들을 불안감에 빠뜨리곤 하죠.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진정으로 읽기를 잘 하는 것인지는 그 어휘들을 확실히 아는 것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광고에 나오는 아이가 의미있는 의사소통도 잘 하고, 집에서도 책을 즐겨 읽는 능숙한 독자로 잘 성장하고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기존의 우리가 어려서부터 했던 방법을 제외하고 여러 연구에서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유아기 읽기 교육의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일단은 집에 아이 수준에 맞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책이 많고(사는 것 외에도 도서관 대출 등을 통해), 그 책을 집에서 자주 읽어주시기만 해도 아이들의 문해력은 자라납니다. 아이들은 이런 경험들을 통해 책 표지, 책을 읽는 방향, 글 덩어리와 띄어쓰기 부분을 구분하며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스스로 상상해서 지어내 보기도 하고, 그것을 엄마 혹은 아빠 등의 의미있는 어른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해 환경과 소통이 문해력 발달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 가면서 글을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의 이름을 적고, 글자를 반대로 쓰기도 하고, 그림처럼 그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도 문해력 발달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이들이 글자를 자유롭게 쓰고 그리도록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세요. 무조건 정확하게 라든지, ㄱ에서 ㅎ순으로 문자교육이 이루어질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이름이나 엄마, 아빠의 이름,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름 등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맞는 흥미로운 문자 교육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스스로 끄적이고 글자를 거꾸로 적기도 하고, 새로운 글자를 창조해 보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문자에 대한 인식이 자라납니다. 형식적으로 학습지 같은 교육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할머니 어떻게 써?'했을 때 쓰는 법을 보여주고, 아이가 따라 쓰고나서 ‘할머니 내가 이렇게 썼어!’라며 할머니께 칭찬도 받고 하면서 긍정적인 학습 경험들이 쌓이게 되죠.


아이들은 자주 사 먹는 상표, 로고 들을 그림처럼 인식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브랜드 글자를 읽기도 합니다. 로고나 포장지, 메뉴판 등 평소에 접할 수 있는 인쇄물에 자주 노출되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인쇄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인쇄물을 가지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 지와 같은 부분도 중요합니다.


또, 아이의 읽기가 유창해지고, 해독을 벗어나 진정한 독해로 이르게 되기 위해서는 단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이 쌓여 있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마'를 읽을 수 있어도 '하마'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마를 직접 보거나, 그림책에서 그림을 보는 등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집의 문해 환경 조성도 중요하지만 여러 여행이나 체험 등을 통해아이와 다양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주세요.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 만으로도 부모님의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그런 경험과 소통들이 모여 문해력의 뿌리도 자라납니다.


오늘은 자녀의 초등입학을 준비하며 혹은 유아기 문해력 교육을 고민하시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여러 학습지를 찾아 보고, 매일 몇 장씩 아이가 힘들게 글씨를 쓰는 것 보다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함께 고르고 잠자기 전이나 시간 날 때 옆에서 함께 읽어 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읽을 줄 아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엄마나 아빠가 소리내어 읽어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엄마나 아빠처럼 아이에게 의미있는 어른이 보여주는 좋은 읽기 시범과 그들과의 따뜻한 소통이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과 정서를 따뜻하고 쑥쑥 자라게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런 유의미한 시간들이 튼튼하게 모여 학교라는 낯선 공간에 첫 발을 내딛는 아이들이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게 도와줄 거예요. 이렇게 뿌리가 튼튼한 아이들이 학습에서도 가속화된 발달을 이룰 수 있습니다.


문해력 교육을 고민하는 부모님들이시라면, 아이들과의 의미있는 시간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 보세요. 저도 새로 산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러 가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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