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의 일기
98년 1월 3일 보통(할아버지 돌아가시기 하루 전)
부친 밥 갖다 드리니 말도 못 하신다. 부친 방 이동. 머리 감겨 드리고 옷 갈아입혀 드리다.
대전 형께 전화, 울음이 나온다.
11시 50분 차로 나가 50만 원 찾고 돈육, 오징어, 귤 사고 1시 30분 차로 오다. 윤택이 왔다 갔다고 한다.
전도사님 오셔 예배 후 가시다. 기일 형님께 전화.
아빠의 일기를 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기록을 보았다.
1월 4일은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하루 전의 기록이다.
사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많이 울지는 않았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예뻐했던 기억이 없다.
용돈을 받아본 기억이나 무엇을 사주신 기억은 없다. 경로당에 다녀온 할아버지가 먹다 남은 과자들을 싸 오면 좋다고 받아서 먹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할아버지에게 받은 유일한 것이었다.
할아버지 품에 있던 그 담배 냄새 진득하게 베인 그 과자를 좋다고 먹었다.
그것도 매일은 아니었고 안주가 매일 남을 일은 없으니까. 엄마는 먹다 남은 걸 가져와서 싫은 기색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라도 먹는 과자가 좋았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으니까 대전 큰아버지께 전화를 드렸구나.
대전 큰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다.
우리는 큰아버지가 두 분 계시는데 한 분은 부산에, 한 분은 대전에 계셨다.
대전 큰아버지는 정확히 말하면 재혼한 할머니가 데려온 아들이었고
할아버지와 재혼한 할머니는 부산 큰아버지, 우리 아빠, 고모를 낳으셨다.
그러니까 아빠와 대전 큰아버지는 동복 관계, 친부가 달랐다.
그럼에도 아빠는 대전 큰아버지를 좋아했다.
부산 큰아버지는 평생 일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그런 큰아버지를 싫어했고 전화해서 화를 내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부산 큰아버지 대신 차남인 아빠가 할아버지를 평생 모셨고
아빠 입장에서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게으른 큰아버지를 굉장히 싫어했던 것 같다.
사실 객관적으로 따지면
평생 일을 하지 않은 큰아버지가 나쁠까, 평생 보증의 아이콘으로 사신 우리 아빠가 나쁠까.
우리 자매들은 모두 아빠에게 표를 행사했다.
98년 1월 4일 약간 추운
順(우리 엄마) 출근 후 다시 오다.
9시 15분경, 소천하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을 기억한다.
겨울방학이라 모두가 집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빠는 흰 천을 가져와 덮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하셨다.
상여가 나가는 날에는 눈이 엄청 내렸고
사람들은 우리가 부자가 될 거라고 했다.
상여 나가는 날 눈이 많이 내리면 부자가 된다면서 말이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에 할아버지의 상여가 나갔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담요를 펴, 화투 짝을 맞추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친할머니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하고
나는 조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
그게 대체 어떤 사랑의 감정인지를 전혀 알지를 못한다.
그럼에도 아빠의 일기장에 적힌
소천하시다, 그 문장에 가슴이 먹먹했다.
잊지 말자,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아빠가 아니었다면
너 여기 없었다.
그건 절대로 잊지 마라,
너의 시작은 거기 있으니
너 절대로 잊지 마라.
그리고 늦은 밤 찾은 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