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1월 5일 아빠의 일기

by 윤자매

84년 1월 5일 추운


기온 하강

종일 집 가서 전화. 대여차 기사한테 와서 대화하다. 처남과 같이 성은으로 해서 평택 가서 기사 친척 내려놓고 온양 가다. 차가 고장. 평택 와서 수리 후 온양 정신병원 가서 빙모님 모셔 오니 2시 30분경 도착. 처가에 가서 식사 후 나무하는데 도와주고 말미 담배집으로 해서 월경 곗돈 돼지고기 값 갖다 주고 오다.


아빠가 빙모라고 기록했으나 외할머니가 맞는 것 같다. 장모를 아빠가 빙모라고 잘못 기재한 것 같다. 엄마는 오래도록 외할머니 얘기를 하시면 꼭 우셨다. 외할머니는 오랜 지병으로 병원에 가셨는데 의사가 더는 해줄 것이 없으니 집으로 가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그 후로 정신병을 앓으셨다고 한다. 난폭한 정신병을 앓으셨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50세 후반의 나이의 할머니가 과연 정신질환이셨을까 싶다. 80년 초반에 정신질환과 치매를 구분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삶은 당연히 평탄하지 않으셨거든.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외에 두 명의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의 남동생 보증을 서주다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리하여 딴살림을 더는 차릴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는 그 내연녀를 집안에 들이셨다. 아니 외할머니가 진정 제정신으로 사실 수 있었겠냐고. 운수업을 할 정도로 잘 나가던 집안이 바람난 남편도 열받는데 내연녀로 인해 집은 홀랑 다 말아먹고 그 여자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왔으니 속이 썩어 문드러지지. 아니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냐고. 그런데 병원에 갔더니 더 해줄 게 없다는 거야.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거야, 아니 제정신에 살 수 있겠어. 얼마나 충격이고 얼마나 억울했을까. 엄마는 할머니가 화병도 가지고 계셨다는데 없는 게 이상하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시고 외삼촌은 일을 하러 가야 하고 집에는 아무도 없고, 그래서 할머니는 정신병원에 모신 것 같은데 당시에 정신병원에서 학대가 있었나 봐. 그래서 뒤늦게 알고 할머니는 모셔오셨다고 한다. 그러니 엄마는 그게 얼마나 죄송했겠어. 우리 엄마는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우신다. 나 좀 데려가 달라고 그 모습이 너무 선해서 엄마는 말을 더 잇지도 못하셨다.

못한 것만 생각난다고 하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못한 것만 생각난다고 하는데 그런 날들이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신 : 엄마, 그치만 외할머니가 몇 년생인지 모르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아니 살기 팍팍해서 까먹었다고 하시기에는 좀 많이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동생이 26년생인 것으로 기억한다고. 아니 동생은 할머니 살아계실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