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메르 가는 길에 광고가 특이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알메르는 암스테르담 북쪽에 위치한 신도시로 간척 사업을 통해 만들었다.
수도로 편중되는 인구와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된 위성도시다.
인구는 이십만 명이 조금 넘는다.
네덜란드 건물의 특징은 디자인과 색상이 예술적이라는 것이다.
입간판 하나를 세워도 절대 대충 만들지 않는다.
딸이 네덜란드에서 알게 된 예술가가 알메르에 산다고 했다.
북쪽으로 갈수록 숲이 울창하고 가로수로 심어진 자작나무가 장관이다.
불에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자작나무.
스무 살 무렵부터 이름과 은빛 줄기에 반했다.
문우 마기영 작가의 '자작나무의 눈'이라는 수필을 읽고 더 좋아하게 되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마차가 지날 것 같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예술가의 집은 작은 운하가 있는 알메르 외곽에 있었다.
작가 8명이 의기투합하여 작업실 딸린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화가, 조각가, 공예가가 다 모였으니 말하자면 예술인 촌인 셈이다.
예술가 부부는 딸을 굉장히 반가워했다.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우유 저장통과 깔때기를 떠올렸다.
네덜란드는 예부터 낙농국가였으니 목장에서 사용하던 소품들이 작품 오브제가 될 수도.
고뇌하는 인간 군상.
인간 세상이 곧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장에 매달려있는 작품은 몇 년 전 네덜란드 항공우주센터에서 주문받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거절당했다고 했다. 예술가는 시간이 지나 지금은 늘어졌지만 아주 멋있는데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혼탁한 세상에 물이 잔뜩 들어서 그런지 나 같았으면 창피해서 입도 뻥끗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 솔직하고 순수하다.
인자한 얼굴에 강인한 생활력을 암시하는 튼실한 하체.
예술가는 그런 의도가 아니겠지만 저절로 제주 해녀가 떠올랐다.
예술가는 실을 엮어 야심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대된다.
색감도 좋고 표정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 누구 작품이냐고 물었다. 예술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막내아들이 장난 삼아 만들었는데 자신보다 훨씬 낫다고. 차와 쿠키를 맛있게 먹고 작별인사를 했다. 예술가는 마땅히 선물할 게 없다며 작품 하나를 급히 포장해 딸 손에 들려줬다. 우리나라 시골 정서와 꼭 같아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똑같다는 생각을 또 했다.
예술가의 집 앞에 조랑조랑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 이름은 모르지만 베리류의 과일나무 같았다. 크면서 길고 긴 건물 뒤는 그대로 잔디가 깔린 드넓은 정원이었다. 여덟아홉 살쯤 되었을 남자 어린이 여럿이 웃통을 벗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정원은 그대로 우거진 숲으로 이어졌고 산책로가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딸이 말했다. 예술가의 작품을 서울에서 전시할 계획이라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긴 하지만 과연 누가 살까 싶어서다.
"저 예술가 네덜란드에서 아주 유명하거든요. 우리 스튜디오에서 전시한 한국 작가 작품이 완판 되니까 자신감이 생기네."
딸은 나하고 다르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반대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를 잔뜩 걸었던 산책로는 여기저기 말똥이 흩어져 있어 17세기 시골길 같아 얼마 걷지 않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