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 김상옥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by 여산희

어느 날 / 김상옥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겠네



봄바람을 등에 엎고 사뿐사뿐 걸어가면 좋으련만. 사나운 찬바람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인생길에는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니까. 누구나 살아온 세월만큼 사무치는 경험을 한다. '사무치다'라는 말, 깊이 스며들어 멀리까지 미치는 것을 뜻한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한 가지 일에 사무친 적이 있다. 20년 넘게 그 일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두루 볼 수 있었다. 더구나 사랑하는 일이기에 언제나 즐거웠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고 있고 또 다른 기쁨을 맛보고 있다. 그래도 어쩌다가 사무쳤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시인에게는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키운 딸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시집을 가는 딸에게 예쁜 구두를 장만해 주었으리라. 언제까지나 자신의 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간다. 시인은 넋이 나간 듯이 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딸과 나눈 시간들이 스쳤을 것이다. 오랜 세월 끔찍히 사랑했을 테니 얼마나 슬프고 허망할 것인가. 그렇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무쳤던 일도 세월의 격류에 쉽사리 밀려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시인은 딸과 작별한 뒤 그리움에 사무치고 또 사무쳤을 것이다.


무엇인가에 사무치는 것은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살면서 무엇에 사무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자연에, 그리고 책과 글에 내리 사무치고 싶다.

2024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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