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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Jun 20. 2021

미니멀 라이프는  유행하는 옷이 아니었다

미니멀 라이프,백신 맞으며 걱정한 살림

미니멀 라이프는 흔히 유행  이라고 한다


유행流行
한 사회 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유사한 문화양식과 행동양식이 일정 수의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사회현상.
유행은 지속 시간에 한계가 있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계속하는가 하는 것은 사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유행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형태는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한 유행이 일시적으로 그치지 않고 일반적인 문화로 정착되는 경우, 빠르게 등장했다가 단기간에 소멸하는 경우, 비교적 장기 지속하는 경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우 등이다.
유행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양하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의상과 스타일의 유행이지만 문화 상품의 형태나 장르, 디자인, 특정한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테크놀로지, 브랜드 등 다양한 문화양식이 유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실패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가 딱 유행에 발맞춰 시작할 때쯤이었다.

꽃무늬가 유행하고, 가죽재킷이 유행하고, 와이드 팬츠가 유행하듯 난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쫒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작은 휴대폰 속 다른 사람들의  집은 너무 예쁘고 따뜻하고, 하얗고, 깔끔하고 고급스럽고 하나 같이 어쩜 그렇게 잘 꾸며 놓았을까 싶은 집들과 살림들만 있었던 건지 보는 대로 나에게 입력이 되고 아! 미니멀 라이프는 이런 것이구나 라고  이렇게 하면 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겠는데 라는 1차원적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집을 돌아보니 한숨,두숨, 숨만 쉴 수 있는 미니멀과는 정말 먼 집이었다.

내 집이 아니니 벽지를 바꿀 수는 없고 , 바닥공사를 다시 할 수는 없고 , 그렇다고 몰딩을 화이트로 싹 다 갈아엎을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물건들을 바꾸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한참 잘못 입력된 미니멀 라이프



 유행에 민감할 정도로 초감각이 적이지 않은 나인데 유독 미니멀 라이프는 나를 자극했다.

전업주부여서 일까? 마음의 허기짐을 어떤 것으로든 채워야 해서였을까?

입력이 되어도 한참 잘못된 입력은 오류를 범하게 되었고, 그 과정은 내게 상처만 남았다. 그리고 경제적 손실도 생겼다. 그때는 이런 것조차 뼈저리게 느끼지 못했고 미니멀 라이프는 나랑은 먼 이야기이구나 싶었다.


내가 사는 곳이 이런데. 나의 살림이 이런데 어떻게 그 인터넷 속 세상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싶어 포기를 했다. 그리고 더 많아진 살림살이들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가야 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했었다고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며 지금처럼 사는 것도 잘 사는 거라고 태연한 척 나를 위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가끔 집에 방문하면 집이 왜 이렇게 깔끔하냐고 칭찬할 때가 많았다 그건 눈에 보이는 주방 거실 등은 그래도 제법 치우고 살았으니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땐 내게  이런 생활방식이 유행에 불과했던 것 같다 삶의 액세서리 같은 것인데  진심을 다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가족들도 지금의 생활에 큰 불만 없이 살고 있는데 나 혼자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왜 다시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되겠다고 결심했을까 생각해보면 순간순간 들었던 많은 생각들도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가 한 가지가 있다.


김완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 읽고 나서였다



자식 없이 두 사람만 살았다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세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이 머물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협소했다.
- <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 중에서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저장되었지만, 그중 제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은 내가 만약에 죽고 나면 내 가족들이 이 많은 물건들을 정리해야 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을 읽으즈음 매일 차로 다니는 길가 5층 건물에 대형 간판이 눈에 띄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런 간판이 많다는 걸 알아챘다


유품 정리 대행
물건을 정리해 드립니다
물건 처분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간판이었는데 읽고 난 뒤에는 수없이 다닌 이 길에서 어떻게 한 번도 못 봤을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끝이 있고, 그 끝이 나를 포함 누구도 언제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늘 준비하며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마지막을 위한 준비를 갑작스럽게 숙제하듯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삶 자체를 바꿔둔다면 사는 동안 편안하고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가족들이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건 결코 경건하거나 슬픈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와 함께한 물건들이 내가 떠나고 난 뒤에까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짐덩어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동안 나와 가족들을 편하게 해 준 물건들이라면 그 이후에도 버리거나 처리해야 될 물건이 아닐 수도 있으니깐 떠난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모두 신경 써야 할 숙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나와 가족을 위한 미니멀 라이프가 필요했고, 빠른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 같은 정리정돈이 아니라 느리지만 가족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느린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했다. 천천히 하면 정리되는 모습을 가족들이 모두 알아챌 수 있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어디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다. 어느 날 갑자기 변한 집의 모습, 물건의 위치, 등은 가족들에게 혼란을 준다.





지난주 난 백신을 맞았다. 맞기 전까지 많은 걱정을 했고, 제일 큰 걱정은 갑작스러운 백신 후유증에 내가 갑자기 의식을 잃거나 혼수상태가 된다면  난 어떻게 하지가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을까 라는 걱정이 더 앞섰다 그래서 최대한 살림살이를 제자리에 두고, 눈에 보이는 살림살이 말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정리를 약간 해두었다 대체로 라벨링을 해두었지만 혹시 보관하고 있지만 가족들이 모르는 것들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기도 했다

백신을 맞은 날 밤  몸살이 오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만약에 혼수상태가 되면 당신 아이들이랑 같이 살림할 수 있겠어?


남편은 내게 빠른 속도로

-응


이라고 했다 겉으론 뭐야 ~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잘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 라이프를 시작하며 많은 부분 남편에게 이렇게 바뀌었어, 어디에 보관해두었고, 그건 이쪽에 있고 등등

세세히 말하는 편이었고, 자주 사용하는 것들에 대해선 아마 거의 다 알거라 생각했다

아직 많은 부분 안된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정리해야 될 물건들이고 사용하는 것들은 정돈이 되어있는 편이다 완벽하게 보다 가족들이 알수 있게 그것이 더 중요한다


지금도 난 집안 살림을 메인으로 하는 내가 어느 날 혹은 어느 순간 할 수 없는 날이 올 때 가족들이 허둥대지 않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고 내가 휴가를 받아 홀로 2박 3일 여행을 가거나, 장기간 비워야 할 날 들이 온다면 나의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게 모든 물건들을 스스럼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되려면  한 순간의 유행 같은 예쁘 기만 한 라이프가 아닌, 충분히 스며들 수 있는 느린 미니멀 라이프가 가장 현명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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