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동네에 올해로 개교 52년을 맞는 정겨운 초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23년의 시간을 함께한 병설유치원이 있다. 우리집 5살 꼬마는 이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아이의 4살 11월, 유치원 모집이 있었다. 다양한 선택지 중 3군데의 유치원을 고르고 '처음학교로'를 통해 지원&선발 과정을 거쳤다. 이는 거의 대학 입시를 방불케 했다. 양육자들은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육아관이 다를 테다. 그리고 유치원에 원하고 기대하는 바도 제각각일 테다. 나도 내 기준에 맞추어 유치원 설명회를 다니고 자료를 수집하며 우리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유치원을 선택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또한 부모로서 처음 마주하는 낯설고 새로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유치원 입학을 (당돌하게?) 대학 입시와 견줄 수 있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비록 선발은 모두 뺑뺑이지만) 지망했던 유치원에 모두 불합격하고 대기번호를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웃픈 예가 바로 나였다.
지망했던 3군데 유치원에 모두 떨어졌다. 원서질도 실패했고 운도 없었다. 막막한 대기번호를 받았다. 그래도 맘카페 왈, 2월까지는 열심히 넋 놓고 기다리다 보면, 돌고 돌아 어느 한 곳에서는 반드시 연락이 온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기다렸더니 과연 그 해가 끝나갈 무렵, 두 곳의 유치원에서 등록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나는 사립과 공립 중 공립(병설) 유치원을 택했다.
유치원 선택에 앞서 몇 가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놀이를 중시하는지, 텃밭이 있는지, 야외활동에 적극적인지, 도서실이 갖춰져 있는지 등... 다행히 병설 유치원은 이 모든 게 준비돼 있었다. 거기다 공립이라 학비까지 0원이었다.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조건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통학 버스가 없다는 것. 하지만 나는 나의 튼실한 몸뚱아리로 등하원을 책임질 수 있으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1년, 갓난쟁이 아가와 나는 매일 편도 15분, 오전 오후 2회, 유모차 왕복운행을 성실히 해냈다.
애초에 영어 유치원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다. 이 시기에 우리 아이에게는 사회성과 인성을 키우기 위한 믿음직한 교육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외국어의 노출이나 발달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물론 감당 못할 비싼 교육비도 크고. ^^) 그러나 가끔,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립유치원의 방과 후 수업이 조금 부럽다. 하지만 병설유치원의 '철저한' 놀이중심 교과과정을 비롯하여, 너무나 넓고 쾌적하고 의외로 여유롭고 풍부한 좋은 환경과 시스템 덕분에, 그보다 가장 핵심적인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정말 행복한 1년을 보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누구에게라도 병설유치원을 추천한다. 공교육의 힘을 지지하고 설파하며, 병설유치원 1지망을 백방으로 추천한다. 그러나 병설유치원에도 큰 단점이 있다. 아마도 유일하지만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바로...
이곳은 오동통한 아이들이 뛰어노는 정겨운 초등학교 앞이니, 오렌지 슬러시와 무지개 사탕, 휘황찬란한 뉴진스 포토카드와 베이블래이드 팽이의 유혹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의 발걸음도 붙잡는, 오색찬란한 라떼(나때)의 빛깔이 살아 있는 학교 앞 문방구이다. 이 학교 앞 문방구의 존재가 아주 귀엽고 행복하고 치명적인 병설유치원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