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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Oct 22. 2023

외동이 첫째가 되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아기가 울었다. 거실에서 놀고 있는 첫째에게 '아기에게 가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는 가지 않았다. 결국 내가 손에 묻은 주방세제를 다 씻고 물기를 탁탁 털어낸 후, 우는 아기 곁으로 갔다. 아기를 달래고 다시 재웠다. 야속한 마음에 첫째에게 물었다. 왜 아까 (엄마를 도와) 아기에게 가지 않았느냐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기는 아까 옆에 아무도 없어서 운 것 같아. 그런데 나도 아기도 어른이 아니라 둘이만 있기에는 무서웠어. 그리고 엄마... 나 아기가 우는데 내가 뭘 해줘야 할지 몰라..."


맞는 말이었다. 5살 아이와 신생아. 병원과 조리원을 거치며 이미 출생 2주가 지났던 터라, 자매가 만난 지는 이제 갓 열흘이 된 무렵이었다. 아이는 이제 막 외동에서 첫째가 되었던 것이다.


당연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작디작은 4살의 아이였는데, 불쑥 나는 이 아이를 첫째이자 큰 아이로 단정 지었다. 당연하게 요구했다. 동생을 잘 돌보아 줄 것을. 심지어 한 번도 동생을 돌보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준 적이 없으면서도 말이다. 


아이와 아기가 처음 만나던 날, 첫째는 아기를 보며 정말 신기해하고 반가워했다. 자기가 매일 오일을 발라주던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 그 동생을 만났다는 사실에 설레며 인형처럼 작은 아기의 모습에 '어리다 어려~'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는 평화로운 둘의 만남에 안도하였다.


그런데 결국 그날, "엄마는 동생만 돌봐주고! 나랑은 안 놀아주고!"가 일어났다.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오늘 계속 눈물이 나는 날이야... 나 엄마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그랬다. 첫째 아이는 엄마의 출산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냈다. 지난 2주 동안, 아이는 목 놓아 울고 엄마를 본다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서러워하고 체념하다가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렵게 만났던 엄마였는데, 낯선 아기에게 집중하는 엄마에게 그리고 함께 하게 된 아기와 이 생활에 어려움과 질투가 나게 마련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주자 다짐했다. 아이를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아이가 그림을 그렸다. 가족을 그렸다는데 동생이 없었다. 동생도 함께 그려달라 하니, 겨우겨우 아기를 그린다. 그런데 그게 사람이 아니라 마치 번데기처럼 속싸개에 싸인 채 본인을 그린 그림 한쪽 손에 엄청 작게 들려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에 엄마의 팔도 없었다. 그림 속 온갖 가방은 본인 그림의 손에 들려 있었다. 


왜 엄마의 팔이 없냐고 하니 그냥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그렇게 말했었다! 안아달라는 첫째에게 엄마는 아기를 안아야 한다며, 그리고 엄마는 짐이 많다며 너를 안아줄 팔이 없다고 했다. 나의 그 말을, 아이는 그림에 담았던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는 힘드니까 자기가 동생도 안아주고 엄마의 가방도 다 들어주겠다고... 졸라맨처럼 보이던 어설픈 그림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아기를 예뻐한다. 동생을 아끼며 매일 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그러나 가끔 누군가가 동생의 성장과 성취를 축하하고 박수를 칠 때면 굉장한 서운함을 느낀다. 서글프게 울어버린다. 그동안 나는 우리 아이가 질투를 내지 않는다, 동생을 사랑해 준다며 아이를 착하다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먼저 아이 마음을 알아주리라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질투가 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을. 우리 아이가 그 부러운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어루만지는지 앞으로 더 잘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예뻐해 주는 아이의 마음에 늘 감사하겠다고 다짐한다.


"엄마. 나 빨리 키가 크고 싶어~"

"왜?"

"키가 크고 찌찌가 커져서 우리 아기(동생)한테 쭈쭈 주고 싶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동생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나의 첫사랑에게, 나는 늘 커다란 고마움과 깊은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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