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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Oct 22. 2023

멀리서 바라보기

어느 날, 작은 일에 쉽게 흥분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애엄마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 엄마는 아이가 고작 바지에 쉬를 했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빽빽 거리며 불을 뿜어 댔다. 


아까도 분명히 변기에 쉬 하기로 약속했는데 왜 자꾸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냐며, 이렇게 자꾸 엄마를 화나게 할 거냐며, 고작 3살 난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 댔다. 아이에게 네가 직접 수건을 들고 가서 바닥을 닦으라고 바지는 알아서 빨래통에 넣으라고 소리를 쳤다.


아이는 엄마의 분노에, 괴물 같은 엄마의 눈에 놀라면서도 죄송하다며 앞으로는 약속을 잘 지키겠다며 안아 달라고 엄마를 좋아한다고 울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엄마는 이렇게 계속 약속을 안 지키는 어린이는 앞으로 절대 안아주지 않을 거라고 호되게 으름장을 놓았다.


무정한 엄마는, 바로 나였다.


아이의 30개월 무렵 나는 폭발했다. 이렇게 쉽게 화를 내고 소리를 쳤던 건 내 안의 조급함이 또다시 터졌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치 않고 언제나 ‘우리 아이 고유의 속도’를 존중해 주리라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은 그동안, 우리 아이의 성장이 알맞았기 때문에 (오히려 언어의 측면 등은 조금 빠른 편도 있었기 때문에) 꽤 여유롭고 허용적인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이가 어떤 알맞은 속도보다 늦어지는 상황에선 걱정과 분노가 나를 덮쳤다. 아이에게 소리치며 닦달을 했다.


아이와 비슷한 월령의 친구들은 이미 다 기저귀를 뗐다고 했다. 그런데 30개월의 우리 아이는 아직까지도 자꾸 장난만 치며 도망가고 피하기에 바빴다.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으론 "평소에 아이가 어른들 말씀을 잘 알아듣는 걸 보면 배변 훈련쯤은 충분히 잘하고도 남는데, 평소에 엄마가 아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많은 것을 허용해 주니 아이가 이것을 알고 자기가 편한 대로 하려는 거 같다”라고 하셨다.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배변 훈련 속도가 늦다는 사실을 확언받은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동안은 허용적인 부모가 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맞은 훈육을 미뤘던 게 아닐지도 몰랐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 나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었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자 내 안의 조급함, 불안함이 또다시 기어 나왔다. 나는 곧 '낮은 분노 역치'를 장착하게 되었다.


아이의 성장 과정, 어떤 특이점에 대하여 조금은 삐뚤어진 시선으로 고착화시키는 단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십팔십팔 18개월, 미운 네 살, 미운 일곱 살...) 이것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가 커가며 나와 충돌이 생기는 지점을 만날 때마다 ‘아~ 그런 단어들이 있었지. 그러니까 아이가 이러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분노하는 나를 다독였다.


그래서 30개월의 아이를 마주하고 분노하는 나를 보며 그런 단어를 찾아 끼워 맞추려고 했었다. 그런데 응? 30개월에 해당하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30개월의 아이는 크게 잘못한 것이 없었다. 바지에 쉬를 할 수도 있고, 엄마한테 깐족댈 수도 있고, 잘못해 놓고도 씩 웃으며 안 혼나려고 장난칠 수도 있다. 늘 그렇듯 가랑이를 붙들고 시도 때도 없이 안아달라 매달릴 수도 있다. 그런 거였다...


돌아보면 30개월의 엄마가 조급했다. 그래서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2년이 더 흘렀다. 


늘 그렇듯 그때나 지금이나 매일의 육아엔 수고로움과 힘겨움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자랐고, 언젠지 모를 어느 시점에 아이는 자연스레 기저귀를 떼었다. 이제는 내가 언제 저런 고민을 가졌나 싶을 정도로, 늘 불안해하고 불같이 화내던 과거의 내가 민망하고 우습다.


왜 그때는 '중요한 것들을 알지 못했는가'... 과연 인생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낫겠다. 


조급함과 불안함에 휩쓸리며 아이의 순간순간, 사랑스러움을 놓치지 말자 생각한다. (그러나 물론 나는 또 눈앞의 작은 것에 목숨 걸고 매달리고 있겠지...)


돌아보면 그때, 그 30개월의 아이는 정말 스윗했다.


어느 날, 내가 무언가를 떨어뜨리며 실수했을 때였다. 아이가 굉장히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실수하니까 좋아? 왜 그런 거야?” 하고 물었다. 당연히 답은 “엄마가 웃겨서”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는 말했다. “엄마가 웃어서~”. 엄마가 무언가를 떨어뜨린 후 호들갑을 떨며 웃고 있으니 아이는 그게 좋았던 것이다. 


아이는 나의 실수가 아닌 웃음에 집중했다. 그랬다. 아이보다는 성숙한 엄마가 되어야지. 나도 아이의 실수보다 웃음에 집중해야지 싶다. 실수가 많은 아이, 속도가 느린 아이를 보며 불안해하기보다, 그 순간 찾을 수 있는 우리의 사랑스러움과 행복에 집중해야 하지 싶다. 엄마가 아이를 믿고 키워주면, 아이는 어쨌든 스스로 잘 자랄 테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다보면, 그 시절도 또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간들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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