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 사는 35세 여성입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매일 살림과 육아를 하며 주부의 일상을 살아갑니다.
평범한 자기소개이다. 라디오 방송 오후 2시 퀴즈쯤에 참여한, 2번 참가자의 자기소개 정도 되겠다. 이것이 만약 공적인 자리에 제출하는 서류라면? 보나 마나 광탈 각이다. 이 심심한 사람은 얼마나 특징이 없으면 자기소개에 사는 곳, 나이, 가족관계를 언급했다. 정~말 촌스럽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진심이라면? 이 소개가 누군가를 말하는 데 딱 알맞다면?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위 소개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너무나 뻔하고 개성 없지만 이러한 표현이 지금의 나에겐 가장 알맞다. 오전 10시,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친 헐렁한 옷차림에 유모차를 끄는 A처럼. 오후 4시, 비슷하게 헐렁한 옷차림으로 유아용 킥보드를 들고 걸음을 재촉하는 B처럼. 이것은 보편적이고도 완벽히 알맞은 100% 사실의 나의 이야기.
한국에서는 보통 자기소개를 할 때 직업을 밝힌다. 현재의 나는 9 to 6로 출퇴근하는 고정적인 일터가 없고, 따라서 직함이 찍힌 명함이 없기에 그저 현재의 상황과 하는 일을 소상히 밝힐 뿐이다. 또 굳이 소개에서 나이를 드러낸 것은, 그게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꺼란 확신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이면서 나이 빨로 얘기를 시작한다. 이것이 마음이 편한 나는, 역시 조금은 옛날 사람, 젊은 꼰대가 아닌가 싶다.
밀레니얼은 보통 80년~9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하며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대표적으로는 양성 평등한 환경에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으며 자랐고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10대에는 IMF를 겪으며 부모님께서 고생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치열한 입시경쟁, 취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접한 디지털 기기 덕분에 온라인 세상에는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이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숨 쉬며 살아간다. 밀레니얼은 나의 가치와 취향이 존중받길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가치와 취향도 존중해줄 줄 안다. 그리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낼 줄도 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고,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 많은 노력을 한다. 소유보다는 공유와 경험, 그리고 자유를 중시한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며 조금 더 '나답게 살기'를 그리고 '성장하며 살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위의 설명에 전부다 공감하지 않을 수는 있다. 각자의 삶에서 겪은 저마다의 경험이 모두 다를 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6~7차 교육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이야기에 최소 7번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럼 충분히 맞다. 당신도 밀레니얼이.
그리고 나도 바로 당신과 같은 '밀레니얼'이다.
잠깐! 위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밀레니얼은 자유와 취향, 개인의 가치를 매우 중시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결혼한 여자 사람, 그리고 엄마이다. 한 인간으로서 수많은 타인에게 자유를 제한받을 수 있는 결혼을,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온전한 희생을 요구받는 임신과 출산을 택했다. (연애와 결혼, 임신과 출산, 모두 다 자의로 택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나는 '내가 소속된 세대의 특징과 가치관에 철저히 동떨어져, 시대착오적인 선택을 한 특이하고 괴상한 인물'인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나는 절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위와 같은 선택을 할 때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을 뿐이다. 아니 특별히 바란 것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 그 길을 걸었다. 30살 무렵엔 결혼을 하고, 그 후 2년쯤 후엔 아이를 낳고.
그런데, 막상 그 길을 걸어 현재의 자리에 놓이니 참으로 많은 문제와 질문에 부딪혔다. 그 전엔 상상도 못 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육체의 고통을 넘어 정신적으로 굉장히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왜 나는 현실의 내 자리를 어려워하는가. 왜 나는 계속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가'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 30대 여자'의 삶에 대해 미리 이야기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이 길에 들어오기 전 그 무게와 고민들을 알았다면 나는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당연한 듯 똑같이 이 길로 들어왔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순도순 가정을 꾸려 우리 부모님처럼 사는 것'이야말로 30년 동안 생각해왔던 당연한 정답이었으니까.
10대와 20대를 모범생, 그리고 사회가 바라는 바른 학생의 모습으로 살아왔다. 그러니 당연히 30대 이후의 삶 또한 기성 사회에서 알맞다고 습득해온 '단란한 핵가족의 삶'이었다. 배경이 이러한 혹여 누군가 '요즘 세대의 엄마의 현실'에 대해 시시콜콜 자세히 얘기해줬다 하더라도 나는 그 정도와 깊이는 하나도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나의 현실이 아닌 타인의 삶이라며, 별다른 관심도 없었을 테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결혼과 육아의 굴레에 같인 여성의 삶을 자각하여,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깨닫고 그 진리를 세상 사람들과 논하고 싶은 것인가?
아쉽지만 이번에도 아니다. 지력이 미약하여 그 깊은 역사와 추구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틈틈이 동네 도서관을 찾는 애엄마일 뿐이니, 그 깊은 공론은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지식인의 글을 읽으며 오늘도 세상을 찬찬히 배워갈 뿐이다.
나는 그저 내 삶과 고민을 풀어내며 나와 비슷한 '우리 세대의 여자 사람'들이 처한 현실(현실이라고 말할 것 까지도 없다. 그냥 오늘내일이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을 한 번쯤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떤 사회적 문제와 현상까지는 못 되더라도, 아마도 서로가 상당히 비슷할 일상과 환경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려는 마음으로.
'82년생 김지영'도 '90년생이 온다'도 아닌, 나는 그 사이에 끼인 어중간한 출생연도의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도 '주부의 삶’, ‘엄마의 삶’에서, '밀레니얼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매일이 바쁘고 낯설고 힘든 육아 일상, 하지만 이는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를 보며 마음 깊이 뿌듯함, 충만함, 사랑을 느끼는 삶이다. 따라서 그 무게감은 상당하나 엄마로서의 내 모습, 새롭게 받은 이 이름을 지금의 나는 꽤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족함, 불안함, 조급함에 옅은 눈물이 난다. 그래서 막막하고 답답하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의 자리는 무엇인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과 가치를 전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아이는 정말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오늘도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에게 밥 먹이고 목욕시키고 기저귀를 간다. 그러다 잠시 짬을 내어 책을 읽고 생각을 한다. 평범한 엄마의 일상이다.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평범하고 현실적이니 생각의 깊이도 얕고 단순해서 더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치열한 매일의 육퇴 후, 떠오르는 작은 일상과 생각을 끄적인다. 모쪼록 나와 비슷한 시절 한국에서 나고 자라 당연한 듯 홀린 듯(?) 결혼하고 아이 낳아 살고 있는 엄마들에게 조금은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이 방황의 길을 함께 걸으며, 잊고 있던 당신의 이름도 생각해보기를. 그리고 끝으로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성장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이렇게나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 세상에서도 우리는 자유와 공유, 성장과 의미, 나와 타인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애까지 키워낸다. 우리는 세상 멋진 '밀레니얼 엄마'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