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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아 Jul 22. 2023

프리랜서, 회사로 돌아가다

다시 회사 문을 두드린 사연은?

“최근 2년 동안 프리랜싱을 하셨네요?”


면접 볼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았다. 면접관은 왜 프리랜서가 됐는지, 그 생활은 어땠는지, 왜 지금 다시 회사로 오려 하는지 궁금해했다. ‘혹시 회사에 안 맞는 사람인 걸까?’ ‘금방 퇴사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섞인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1. 왜 프리랜서가 됐는지


20대에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하고 30대에 프리랜서로 살기 시작했다. 


7할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퇴사했고, 한국 생활을 정리했고, 해외로 떠났고,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 생각 못하고 다시 해외로 나갈 계획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돈이 필요했고 뭐라도 해야겠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번역은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정규직 경력이 더 많아 정규직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조직생활에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순전히 내 경험에 기반한 판단으로 회사 생활의 특징을 나는 아래처럼 보았다.


1. 연차 서열이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된다 

- ‘연차가 높은 사람이 하는 말’이 옳다.

- 업무의 배분이 연차 순으로 이루어진다. 중요한 업무는 높은 연차가 하는게 ‘맞다’. 

- 업무 뿐 아니라 생활 면에서도 ‘연차에 맞는 모습’을 지켜야 한다 (신입이라면 응당, 대리라면 응당,..)


2.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

- 소위 ‘까라면 까’ 문화. 상사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 

- 자유롭게 의견을 내기보다는 명령하고 그에 따르는 방식.


3. 보여주기식 성과 문화

-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보다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남들이 알게/믿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았다. 

-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만드느라 정작 실무에 쓸 여력이 없다. 


4. 업무 분장에서 오는 혼란

- 상사가 자신의 일을 후배에게 떠넘긴다 거나, 1인이 너무 많은 업무를 맡게 된다거나, 자신이 한 일의 크레딧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일들이 발생한다.


5. 업계 특성상 워라밸을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곳이 있다.


6.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대우를 받는다. 6번 관련해 비정규직은 야근 수당, 성과급 등에서 제외된다. 


7. 내가 열심히 하는 일이 나의 일이 되는 게 아니라 회사를/상사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나의 일로부터, 노력한 나 자신이 소외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8. 그래서 결국 ‘돈 받는 만큼 일하자’ ‘잘리지 않을 만큼 일하자’ 마인드로 일을 하다 보면 그것도 그것 대로 현타가 오는 때가 있다. 


이런 모습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조직 사회의 특징 같았다. 쉽게 해결될 수 없어 보였고 내가 해결할 수 없을 문제였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번역 프리랜서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정직하고 진실되어 보였다.


1. 번역 프리랜서는 나이, 출신 학교, 출신 지역, 성별 등으로 차별 받지 않는다. 번역 실력과 영업 능력, 클라이언트 관리 능력이 중요하다


2. 번역 프리랜서는 내 일을 온전히 내가 하고, 내가 책임진다. 업무 분장으로 인한 혼란이 없다


3. 번역 프리랜서에게 어느 누구도 명령하지 않는다. 물론 일을 주는 사람이 (에이전시, 기업 등) 무언가를 요구하고, 밤 늦게 연락을 한다거나, 새벽에 번역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회사에서의 군대식 상명하복이라기 보단 고객의 요청 사항 정도다. 물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번역 형태에서는 다를 수 있겠다


4. 번역 프리랜서의 워라밸을 번역가가 직접 정할 수 있다. 일하는 만큼 돈을 번다. 아플 때 쉴 수 있고, 원한다면 며칠간 일을 쉴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일이 몰릴 땐 한달 내내 하루에 12시간씩 일하기도 했다. (자진해서)


5. 보여주기식 문화가 없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모습으로 나의 업무 몰입도를 판단 받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나은 번역 결과물을 내는 게 나에게, 클라이언트에게도 이득이다. 내가 한 번역을 숨길 수 없고 더 있어 보이게 만들 수도 없다.  


6. 보고서를 안 만들어도 된다. PPT도.


7. 오로지 번역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 1번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지만, 나의 업무 성과가 회사에서는 수많은 다른 요인들 (소위 ‘정치력’, ‘라인’이라고 말하는 인간관계 등)로 결정되는 데 비해 번역가는 번역 실력으로만 평가 받는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나는 이런 이유들에 매력을 느꼈다. 정직하게 일하고, 공정하게 평가받고 싶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번역 프리랜서를 선택했다. 

프리랜서 생활은 내가 예상한 1-7번 그대로였다. 상사도 없었고 매일 재택이 가능했다. 보고를 위한 보고나 원치 않는 회식도 없었다. 


아 그런데 인생의 복병은 꼭 예상 못한 곳에서 터진다고 했던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프리랜서 생활의 특징과 한계가 나타나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 저녁과 주말, 휴일에 일이 가장 많았다.

- 클라이언트가 해외 곳곳에 있다 보니 새벽 2시에 울리는 클라이언트의 연락에 꼭 답장을 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일이 많은 건 그래도 괜찮았다. 저녁과 주말은 이전에 일할 때도 없었으니까.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주말 내내 일하면 월요일에 자체 휴가를 낼 수도 있었다. 일감이 몰리는 연휴에 2주 내내 쉬지 않고 하루 12시간씩 번역을 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뿌듯했고,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와 하나 하나 관계를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꼼꼼히 확인해서 더블체크, 트리플체크를 해서 번역 결과물 “전송”을 눌렀을 때의 희열. 그리하여 클라이언트에게 만점에 가까운 피드백을 받을 때의 기쁨. 번역하는 중간 중간 몰랐던 영어 단어의 뜻, 표현의 의미를 알게 되며 느끼는 배움의 즐거움.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일의 양도, 강도도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업무 환경이 그리웠다. 마침 코로나와 맞물리면서 혼자 일하는 삶이 계속되다보니 더 그랬다. 외로웠다.

- 피드백과 회의가 그리웠다. 내 업무에 대해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번역을 하면서 같은 단어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클라이언트에게 최종 제출하기 전에 이것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 집에서 일을 하니까 일과 삶의 구분이 더 없어졌다. 자는 곳, 일하는 곳, 밥 먹는 곳과 생활하는 곳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거의 일하는 기계처럼 한 공간에서 계속 머물면서 일을 하니까 (게다가 코로나라 나가지도 못하고) 정말로 많이 힘들었다.


스스로 놀라웠던 것은, 회사를 나와 프리랜싱을 하는 동안 가장 재미있던 일이 오래 거래한 클라이언트의 인하우스 팀에 프리랜서로 “소속”되면서 그들과 같이 정기적으로 화상 회의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업무를 진행한 일이었다.


어느 날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직장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을 돌아봤다.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일할 때 나는 행복하기도 했다.

밤새 같이 야근하고,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하는 일들이 좋기도 했다. 


혼자서 고독하게 방에 틀어 박혀 일하는 삶의 한계를 느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성과과 잘 나오고 행복한지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서 나의 근무 성향을 더욱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내 일과를 말해주니 누군가는 자기는 평생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단 하루도 그렇게 (집에서 혼자 8시간 동안 아무 말없이 번역만 하는 삶) 못 살 것 같다고 했다.


프리랜서 번역일을 하면서 강약 조절을 내가 잘 하지 못했다. 일을 더 받으려고, 조금이라도 클라이언트를 더 확보하려는 마음에 무리하게 일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비교해서 말해 보면,


1. 회사원으로 사는 것과 자영업자로 사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  지옥철을 안 타고, 편하게 집에서 일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부차적일 요소일 뿐. 국세청과 은행, 부동산 등이 연결되면 정말로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고정적인 급여가 정확하게 들어오느냐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2. 회사 생활의 특성은 곧 조직 사회의 특성이고 이는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회사 생활이 싫다고 해서 무인도에서 혼자 살 수는 없다. 사람 사는 곳 거의 비슷하다. 

3. 프리랜서에겐 환경, 시스템, 사람이 정말로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 이런 이유들이 내가 다시 회사원이 되기로 선택한 이유다


그래서 나는 결국 다시 회사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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