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돈을 벌기 위해?
회사 다니는 이유 1위가 ‘생계유지’, 2위가 ‘이직’이라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다. 3위는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였다.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3)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 10명 중 7~8명이 직장인이라는 건, 회사에 다니는 게 보편적인 생계 유지 수단으로 자리 잡아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회사에 왜 갈까?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공부해서 대학가서 취직하는 게 당연한 삶의 시나리오니까?
회사원에서 프리랜서, 다시 회사원으로 된 경험을 통해 회사라는 곳에 대체 왜 가는지 뼈저리게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 나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회사에서 할 수 있다.
2. 업무 환경이 내 집이나 방보다는 대체로 좋다 – 집 구하기 힘든 현실을 생각해 보자. 사무실도 비싸다.
3. 9-6 고정 출근은 생활 루틴을 잡아준다.
4. 회사 업무를 통해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다 -> 쌓여서 나의 능력이 된다.
5. 서로 다른 사람들과 공적으로 교류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6.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 이건 정말 중요한 얘기이므로 뒤에서 더 얘기하도록 하겠다.
내가 가진 기술로 프리랜싱을 할 수도 있다고 할 때, 회사에 가는 가장 확실한 이유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회사에서는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상대로 무역을 하거나, 고층 건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제작비가 10억원이 되는 작품을 만드는 것 등을 혼자서 하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돈이 아주 많다면 할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아주 많다면 굳이 그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회사에서는 나 혼자서는 알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에 건설될 신재생 에너지 데이터 센터에 들어갈 배터리의 수명에 대해 알아보는 일을 혼자서는 아마 대체로 할 일이 없다. 물론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것을 알아볼 수 있겠지만 업계에서 일하지 않는 한 쉽게 알기 어려운 정보다.
그래서 한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업계 인사이트, 노하우 등이 생기고 이건 중요한 자산이자 경력이 된다.
- 혼자서 수주하거나 수행하기 어려운 규모의 프로젝트,
- 그 프로젝트에 관련된 수많은 행위자 (정부, 국내외 회사, 등)와의 협업
- 현장에서 나오는 꿀 같은 지식과 정보들
-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는 프리랜서로는 얻기 힘들다.
특히 정부의 발주가 필요한 프로젝트에 한 개인으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는 확실히 좋은 경험, 자양분이 된다.
세상을 보는 시각,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행위자와 그 이해관계 등을 보는 시각도 길러지고 말이다.
또 데이터가 중요한 시대, 회사가 누적한 데이터는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데이터를 축적하고 관리할 수 있다. 나도 번역일을 하면서 몇 월 며칠 얼만큼의 일이 누구에게 들어왔고, 어떤 분야의 번역이고,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었으며,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항상 기록했다. 만약 번역 회사라면 이 기록이 더 많을 거고, 글로벌 회사가 가진 데이터의 양을 생각하면 회사가 가진 데이터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미치지 못할 규모다.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의 의미뿐 아니라 업무에 도움 되는 통찰력을 주기도 한다. 만약 번역가 개인이 번역에 관련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면 어떨까? 특정 단어가 어떻게 번역되는 지에 대한 현황, 기업 별로 어떤 도착어(번역된 언어)를 선호하는 지에 대한 자료 등을 알 수 있다면 일하는 데에 훨씬 수월할 것이다. 번역가 개인이 이런 데이터를 혼자 힘으로 확보하려면 일일히 조사를 하고 기록하며 오랜 시간이 쌓여야 한다. 하지만 회사에 나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 선배들이 쌓아온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있고 내가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면 나의 언어 선택 작업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복지’를 제공한다.
식사 제공, 건강검진, 제휴, 대출 지원, 경조사 지원 등 무수히 많은 복지들. 좋은 복지는 많은 이들이 대기업을 희망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나와 맞는 회사, 나를 잘 키워줄 수 있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다면 그만큼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행운은 없을 거다.
소중한 나의 노동력을 회사에 제공해서 회사가 더 성장하도록 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도 하루 하루 더 발전해갈 수 있다면
가장 완벽한 스토리일 것이다.
그런 기대를 나도 어느정도 품고 재취업에 임했다.
다음 화에서는 '30대에 처음 취준해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